MBC가 총선에서 패널조사를 시도한 이유 [미디어 리터러시]

장슬기 2024. 6. 1.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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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전 의원과 유시민 작가의 토론을 지켜보다 잠시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유 전 의원이 MBC를 위해서라도 패널조사를 중단해야 한다며 혹평을 쏟아내던 참이었다.

유 전 의원이 비판한 2월 말 4차 패널조사 결과는 4주 전인 2월 첫 주 실시한 3차 조사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이 결과를 바라보는 유 전 의원의 마음과 데이터 전문기자로서 패널조사를 진행한 나의 마음은 서로 다른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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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대한 반감이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좋은 언론'을 향한 갈구는 더 커지고 있다는 의미이겠지요. 매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 곧 '미디어 리터러시'가 중요해지는 시대, 우리 언론의 방향을 모색합니다.
MBC는 이번 총선에서 다섯 차례에 걸쳐 패널조사를 실시했다. 비례대표 투표 의향 정당을 질문한 결과를 나타낸 모습. ⓒMBC 패널조사 홈페이지 갈무리

유승민 전 의원과 유시민 작가의 토론을 지켜보다 잠시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유 전 의원이 MBC를 위해서라도 패널조사를 중단해야 한다며 혹평을 쏟아내던 참이었다. 2월 말 실시한 4차 패널조사 결과가 국민의힘이 한참 상승세를 보이던 일반 여론조사의 흐름과는 딴판이라며, 패널조사라는 게 믿을 수 있느냐는 지적이었다.

MBC는 이번 총선에서 다섯 차례에 걸쳐 패널조사를 실시했다. 매번 다른 응답자를 조사하는 일반 여론조사와 달리, 패널조사는 동일한 응답자를 반복·추적해서 조사한다. 아직 지지 정당을 정하지 못한 ‘미결정층’이 언제 마음을 정하는지, 지지 정당을 바꾸겠다는 사람들은 누군지 추적하기에 가장 적합한 조사다.

유 전 의원이 비판한 2월 말 4차 패널조사 결과는 4주 전인 2월 첫 주 실시한 3차 조사와 별 차이가 없었다. 의외였다. 2월 내내 민주당 공천 파동이 뉴스를 채웠기 때문인지, 당내 경선으로 국민의힘 응답자가 활성화된 덕인지, 그것도 아니면 한동훈 비대위원장 효과인지 2월 말 당시 일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고공행진 중이었다. 덩달아 여당이 170석까지 얻을 수 있다는 코멘트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패널의 움직임은 고요한 호수 같았다. 그리고 이 결과를 바라보는 유 전 의원의 마음과 데이터 전문기자로서 패널조사를 진행한 나의 마음은 서로 다른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였다.

처음부터 모험이었다. 아주 간단하게는 ‘돈값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있었다. 과거 다른 방송사에서 패널조사를 진행한 팀은 ‘패널조사 특성상 차수별 데이터에 큰 변화가 없다’고 조언했다. 재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패널조사를 하면 상대적으로 야권 지지층이 많이 표집된다는 업계의 우려도 있었다. 또 일반 여론조사와 다를 수 있다는 부담도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여론조사 전화에 피로감을 나타내는 사람이 태반이지만, 총 6차에 걸친 조사에 참여한 패널은 3만1486명 중 ‘선거 때까지 반복해서 전화해 의견을 물어도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동의한 1508명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정치 고관여층이다. 풀어내는 방식도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됐다. ‘○% 대 ○%’에 집중하는 일반 여론조사와 달리 차수마다 나타나는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데, 익숙한 보도 방식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널조사를 ‘감행’하게 된 것은 신당 때문이었다. 총선 민심의 변화를 ‘추적’하려는 패널조사의 목적을 달성할 만한 아주 적절한 변수가 등장해준 셈이다. 구도가 변하면 데이터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또 같은 사람들을 반복해서 조사하는 패널조사의 특장점을 살릴 수도 있었다. 신당으로 지지를 옮긴 응답자가 본래는 어떤 정당을 지지했는지, 언제 지지를 바꾸었는지 추적할 수 있는 유일한 조사 방법이었다.

4월10일 총선 개표 방송을 지켜보는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공동취재

120일 동안 100여 개 문항에 축적된 패널 1508명의 마음

신당 효과는 강력했다. 1월 둘째 주 조사에서 이준석 신당과 이낙연 신당을 선택지에 넣고 조사했더니 1차 조사(2023년 12월 셋째 주 실시)에서는 21%에 달했던, 지지 정당이 없거나 모르겠다는 ‘미결정층’이 12%포인트나 줄어들었다. 겨우 한 달 만에, 그것도 선거는 여전히 석 달이나 남았는데 말이다. 다만 신당에 마냥 유리해 보이진 않았다. 신당으로 새로운 지지를 보인 응답자와 거대 양당으로 결집한 응답자의 비율이 거의 같았다. 즉, 신당의 등장으로 위기감을 느낀 각 정당의 약한 지지자의 움직임이 평소보다 이른 시기에 촉발됐고 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흐름은 선거까지 이어졌다.

한계도 드러났다. 패널조사는 우려대로 야권 지지층이 일정 부분 과대 표집됐다. 차수별 변화를 읽어야 하는 패널조사의 취지와 맞지 않게 양당의 지지율이 더 많이 화제가 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럼에도 기존 여론조사가 사진이라면 패널조사는 영상과 같은 속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싶다. 120여 일 동안 100여 개 문항에 축적된 1508명 패널의 마음을 숫자로, 토론으로 추적하는 과정은 선거와 정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롱테이크’로 담아내는 기록이었다(패널조사 결과는 poll-mbc.co.kr/the21에서 볼 수 있다). 고됨이 잊혔으니 되뇌어본다. 유권자들은 다음 선거에서 영상을 기다리지 않을까, 다음 번 영상은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장슬기 (MBC 데이터 전문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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