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잃은 노동자, 범인은 ‘메탄올’뿐일까 [주기율표 위 건강과 사회]
탄소발자국, 탄소중립, 탄소포집, 탄소배출권, 탄소국경세.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만 한 천덕꾸러기도 없을 것이다. 탄소 입장에서는 대단히 억울할 법하다. 지구 구석구석을 채우고 생명체를 지켜왔는데 이런 푸대접이라니. 사실 탄소는 대지와 강, 바다, 대기 등 문자 그대로 ‘어디에나 있다’. 지각을 구성하는 다양한 광물의 구성 요소이면서 바닷속 산호와 굴·조개 껍데기를 이루고, 지구 깊은 곳에 석탄·석유·천연가스의 모습으로 잠들어 있다. 모든 동식물의 세포를 구성하는 유기화합물의 핵심 원소이기도 하다. 인간 몸무게의 약 18.5%를 탄소가 차지하고 있다.
탄소는 많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 모습이 실로 변화무쌍하다. 다른 원소들과 화합물을 이루기 전에도 그 자체로 다양한 결합 방식을 통해 매우 다른 모습과 성질로 존재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와 연필심(흑연)이 사실은 같은 탄소 덩어리라는 것을 알고 나서 충격받은 어린이가 한두 명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원소들과의 ‘케미’는 말할 것도 없다. 현재까지 알려진 탄소화합물 종류만 100만 종이 넘고 지금도 매년 화학자들이 새로운 화합물을 합성하고 있다. 플라스틱 같은 합성 폴리머, 카본 스틸 같은 금속 합금, 탄소섬유 등 탄소를 활용한 제품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무엇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식물의 광합성에 의해 유기물로 전환되고 동물이 이를 섭취하고 산화시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거대한 ‘탄소순환’은 지구 생태계의 핵심 고리라고 말할 수 있다. 탄소 없는 지구, 탄소 없는 생태계, 탄소 없는 인류 문명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토록 광대한 탄소의 세계에서 오늘의 ‘원픽’은 메탄올(메틸알코올·CH3OH)이다. 가볍고 휘발성을 가진 무색의 가연성 액체로 에탄올(C2H5OH)과 비슷한 술 냄새가 난다. 세계적으로 연간 2000만t 이상 생산되며 다양한 화합물, 이를테면 포름알데히드나 아세트산 등의 전구체, 유기용제, 세척제 등으로 널리 쓰인다. 간단한 구조를 가진 ‘평범한’ 물질이지만, 대단히 유독하다. 10㎖ 정도의 소량 섭취만으로도 시신경을 손상시켜 완전 실명을 초래할 수 있으며 30㎖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중독의 원인은 대개 오염된 술이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해외 토픽에 등장하는 소식이 밀주(密酒)나 가짜 술을 마시고 사람들이 실명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2016년 1월 노동건강연대에 메탄올 중독 제보가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사고로 메탄올이 눈에 튀었거나 실수로 음료수에 메탄올이 섞여 들어간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호흡을 통한 중독’이라고 했다. 그럴 수도 있나? 의아했다.
그즈음, 인천과 부천 지역 하청업체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던 20대 청년들이 잇따라 눈이 보이지 않고 의식이 저하되는 증상을 경험했다. 이들은 CNC 공정에서 알루미늄 부품의 절삭과 가공을 담당했는데, 세척을 하려고 메탄올을 분사하고, 남은 메탄올을 제거하기 위해 에어건을 사용했다. 사실 메탄올은 워낙 잘 알려진 유해 요인이라 산업안전보건법상에도 ‘관리 대상 유해물질’로 분류되어 있다. 6개월마다 작업환경 측정, 12개월마다 작업자의 특수건강검진을 시행해야 한다. 메탄올 대신 아예 에탄올 같은 대체물질 사용이 권고된다. 문제는 에탄올 가격이 메탄올의 3배였다는 점이다. 노동부의 현장 근로 감독 결과, 회사에서 안전교육은커녕 보안경이나 장갑·마스크 같은 보호 장비도 제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노동자의 눈과 피부에 메탄올이 직접 닿았고 대기 중에 남아 있는 유증기에도 그대로 노출되었다. 마침 날씨가 춥다고 환기마저 제대로 하지 않았다. 안전보건공단 부천지사 조사 결과, 중독이 확인되고 나서 며칠 뒤 측정한 대기 중 메탄올 농도는 노출 기준의 약 10배에 달했다. ‘메탄올에 오염된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어떻게 중독에까지 이르렀을까’ 하는 나의 의문은 미처 현실을 쫓아가지 못한 것이었다.
20대 노동자가 몰랐던 두 가지
노동자들은 2교대로 야간 근무를 하고 일감이 늘어나면서 연장 근무와 휴일 근무까지 했지만, 자신이 사용하는 물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니 갑자기 눈이 안 보여 병원을 찾았을 때에도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이들이 몰랐던 것은 메탄올의 정체만이 아니었다. 이들은 옆자리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누구인지 몰랐고, 다른 노동자가 나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A 사업장에서 일하던 첫 번째 피해 노동자는 2016년 1월15일 야간조 근무 중에 증상을 인지하고 1월16일 오전 퇴근 후에 응급실을 방문했다. 1월22일에 메탄올 중독이 확인되어 의사가 노동부에 재해 신고를 했으며 1월25일에 노동부의 현장 근로 감독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1월22일 비슷한 증상으로 다른 병원을 방문해 치료 중인 A 사업장의 두 번째 피해자가 발견됐다. 1월28일에는 B 사업장 노동자의 피해 사례가 알려졌는데 그는 이미 2015년 12월30일에 중독이 발병한 상태였다. 그리고 2월22일 C 사업장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확인되었는데, 노동부가 메탄올 사용업체에 대해서 한창 현장 검검을 시행하던 때였다. 그리고 약 8개월 뒤, 2016년 10월에 메탄올 중독 피해자 두 명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그중 한 명은 2015년 2월에 B 사업장에서 중독된 이였고, 또 다른 한 명은 2016년 1월 노동부가 C 사업장에 점검을 다녀간 뒤 중독된 이였다. 이들 피해 노동자는 각자 병원을 찾았고, 사업장에서는 노동자가 갑작스레 출근하지 않아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노동건강연대 회원이기도 한) 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의 최초 신고가 없었더라면, 피해자와 시민사회가 함께 나서서 목소리를 내지 않았더라면, 이 사건들은 서로 연결되지 못한 채 그저 원인불명의 실명 사례로 조용히 묻혔을 것이다.
이런 초현실적 사건이 가능했던 비결은 바로 ‘파견 노동’에 있었다. 이들은 모두 여러 파견업체(파견 사업주)를 통해 대기업의 3~4차 하청업체(사용 사업주)인 A, B, C 사업장에서 일했다. ‘근로자 파견’이란 ‘파견 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 파견계약 내용에 따라 사용 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 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작업 현장의 안전교육이나 특수건강진단에 대한 책임은 ‘사용 사업주’에게 있고, 산재보험 가입이나 일반건강 진단은 ‘파견 사업주’의 몫이다. 하지만 직접 고용 노동자의 안전보건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파견 노동자들이 제대로 보호받을 리 만무하다. 무엇보다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정 업무’는 파견 노동 자체가 금지되어 있기에 이들은 ‘불법파견’ 상태에서 일을 했다. 현실에 존재하지만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유령 노동자인 셈이다.
실명의 대가가 350만원?
계약은 파견업체와 이루어지며 월급 통장에도 파견업체 이름이 찍힌다. 정작 이들이 일한 공장에는 노동자 명부가 없고 근무 기록도 남지 않는다. 옆자리에서 일하는 동료는 다른 파견업체를 통해 왔을 수도 있고, 내일 다시 만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일을 그만둔다고 동료들 간에 환송회를 하거나 회사에서 퇴직금을 주는 것도 아니다. 결근한다고 누가 연락해서 안부를 묻거나 야단을 치지도 않는다. 서로 이름조차 모르는데 무슨 수로 연락을 하겠나. 이런 익명성 덕분에 근로소득이 있으면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기초생활 수급자가 가명으로 일을 하기도 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이 불법파견의 세계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선배들의 위장취업 경험담, 예컨대 가명을 사용하고 가짜 신분증과 이력서를 만들고, 회사와 경찰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는 무용담은 이제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지나치게’ 넘치는 자유가 도래한 노동 현장 모습에 기뻐해야 할까.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첨단 전자제품들은 신제품 생산 주기가 짧고 디자인 변경도 잦다. 제품 출시 주기에 따라 생산량의 변동도 크기 때문에 원청 대기업들은 이러한 가변적 인력 수요 문제를 하청업체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3~4차 하청업체에 대해서는 관리의 법적 책임도 없으니 완벽한 조건이다. 메탄올 중독 사건이 터질 무렵인 2015년 10월, 인천 지역 노동·사회 단체들은 지역 내 실태조사를 통해 파견법을 위반한 사용업체 11곳을 고발했는데 모두 휴대전화 부품과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였다.
이렇게 다단계 하청에 불법파견까지 ‘화학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니 완벽한 위험의 외주화, 개인화가 가능하다. 작업 현장의 노동자 보호 조치나 안전보건교육이 엉망인 것은 물론이고, 산재가 발생한 다음의 대응도 어렵게 만든다. 과거에 일한 사업장과 파견업체를 접촉해서 근무 사실과 노출 이력을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어차피 불법파견이니 또 다른 불법을 저지르기도 쉽다.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은 일상이고, 사회보험을 가입해주지 않았다가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산재보험료를 납입한 경우도 있었다. 눈이 안 보이게 된 젊은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는 ‘어차피 산재가 안 될 테니 350만원에 합의하자’고 회유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노동부가 앞장서 노동자를 보호해야 마땅하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노동부는 현장 점검을 나가면서 친절하게 미리 사업체에 알려주었고, 덕분에 사업주는 메탄올을 옥상에 숨길 수 있었다. 중독 사건을 지역사회와 의료기관에 널리 알려서 추가 피해를 막고 숨겨진 피해자를 찾아야 한다고 시민사회가 요구했지만 역시 듣지 않았다. 나중에 코로나19 확진자·접촉자 동선 공개를 보면서 씁쓸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월○일 ○○시 ○○분에 ○○번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시 ○○분에 ○○노래방에 갔다는 소식을 구청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주민들에게 요란한 알림 메시지를 보내주는 노력의 절반만 기울였어도 되는 일이었다. ‘휴대전화 부품 CNC 공정에서 알코올 냄새 나는 물질(메탄올)로 세척 작업을 하고 나서 어지럽거나 시력이 저하되는 경험을 한 분은 즉시 노동부에 신고해달라‘ ’원인불명의 급성 시력 저하와 의식 소실 환자를 진료한 의사는 메탄올 중독을 의심해서 검사를 시행하고 양성 시 즉각 노동부에 신고해달라’ 이런 안내방송을 하고 알림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2016년 가을까지 피해자 6명을 확인했지만, 이들이 피해자의 전부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뉴 캐피털리즘〉과 〈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에서 일관되게 ‘시간’의 문제를 지적했다.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노동과정, 고용 형태의 변화는 단순히 일자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꾸어놓았고, 그 핵심에 시간의 본질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영단어 ‘career(직업)’의 어원은 마차가 다니는 길로, 평생 한 우물을 판다는 의미인 데 비해, ‘job(일자리)’은 짐수레로 실어 나를 수 있는 한 덩어리나 한 조각의 물건을 뜻한다고 한다. 노동시장 유연성은 오늘날 ‘커리어’의 길을 막아버리고 한 조각 ‘일자리’만을 남기고 있다. 극단적으로 유연화된 파견노동 시장에서 훼손되는 것은 안전과 생명만이 아니라 인간다움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단기적이고 불안정한 시간은 비공식적 신뢰를 쌓고 서로에게 헌신하며 관계를 맺을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일을 통한 정체성 확립이라는 것이 지나간 시대의 환상이자 점점 더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특권이 되어가고 있다지만, 최소한 동료 노동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나보다 먼저 쓰러진 동료 노동자가 있는 줄도 모른 채 일을 하다가 차례로 쓰러져가는 현재의 일터를 우리 사회가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메탄올은 별이 생성되는 지역에서 다량으로 관측되기에, 천문학에서 별의 생성 지역을 찾는 표지자로 활용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구 한구석에서 찾아낸 메탄올의 흔적은 별의 탄생이라는 낭만이 아니라, 동료 노동자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극단적 노동유연화와 위험 외주화의 결합을 알리는 적신호였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edito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