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크시티 ‘올해의 선수’ 배준호의 도전 [경기장의 안과 밖]

배진경 2024. 6. 1.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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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으로 간 축구 유망주 가운데 배준호가 있다. 빅클럽 대신 2부 리그를 택했고, 단숨에 팀의 에이스로 떠올랐다. 돌아가는 것으로 보였던 하부 리그 선택이 오히려 직선이 될 수도 있다.
2023 FIFA 20세 이하 월드컵 3·4위전 한국과 이스라엘의 경기에서 배준호 선수가 드리블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국 축구는 바야흐로 유럽파 전성시대다. 현재 유럽축구연맹(UEFA) 랭킹 10위권 내의 1부 리그에서 뛰는 선수는 16명이다. 덴마크와 세르비아 최상위 팀에서 뛰는 선수까지 합치면 20명이 넘는다. 이번 여름에도 유럽행에 나서는 선수는 더 나올 전망이다. 대한축구협회가 유망주의 유럽 진출을 주선하던 2002 한·일 월드컵 직전의 상황을 회상하면 격세지감이다.

2부 리그까지 눈길을 돌리면 그 수는 더 많아진다. 그중 눈에 띄게 성장한 선수가 있다. 2003년생 배준호다. 배준호의 소속 팀 스토크시티는 잉글랜드 2부 리그인 챔피언십 소속이다. 챔피언십은 전 세계 축구 리그 30위 내에 드는 유일한 2부 리그다. 축구 종가답게 재정 규모와 중계권 수익, 평균 관중 등에서 빅5(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스페인 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 프랑스 리그1)를 제외하면 어떤 1부 리그보다 큰 무대다.

배준호는 2023년 8월 K리그1 대전 하나시티즌을 떠나 스토크시티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약 30억원 수준. 2022년 대전 입단 당시 고교 무대에서 최고의 유망주로 각광받던 배준호는 프로 2년 차에 주전으로 도약하며 잠재력을 꽃피웠다. 지난해 5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FIFA(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는 김은중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 에이스로 4강 진출 주역이 됐다. 유럽 스카우트진이 총집결한 무대에서 반짝였으니, 다이아몬드 원석을 주목하는 시선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스널과 토트넘 같은 빅클럽이 관심을 보였다. U-20 월드컵 후 에이전트 미팅이 잇달았다. 지난해 7월 방한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팀K리그(올스타) 소속으로 출전한 배준호의 플레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에이전트와 접촉했다. 하지만 배준호와 에이전트가 최종 후보로 고심한 팀은 스토크시티, 그리고 이탈리아 세리에A의 토리노였다.

배준호의 에이전트인 임세진 루트원스포츠 대표는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스널, 토트넘과 실제 미팅을 한 건 사실이다. 선수의 잠재력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영입을 위해 검토하는 리스트에 올려놓고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연락하겠다는 의사로 느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막바지에 연락이 왔다. 선수 활용 계획을 묻자 그들은 아직 가치가 낮은 선수니까 23세 이하 팀에서 뛰게 하거나 임대를 보내고, 3년 차에 1군 활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유럽을 대표하는 빅클럽들이었지만, 배준호에 대한 판단은 보수적이었다. 검증이 필요하다는 분위기였다. 선수와 에이전트가 바라는 방향성과는 맞지 않았다.

배준호 측은 선수에게 최대한 기회를 주려는 팀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기준에 맞는 팀이 스토크시티와 토리노였다. 두 팀과 동시에 협상을 벌인 임세진 대표는 배준호 개인과 당시 원소속 팀인 대전이 바라는 대우(연봉, 이적료)를 최대한 충족시킬 수 있는 스토크시티로 최종 낙점했다. 에이전트는 협상을 위해 유럽으로 날아가 스토크시티의 프리시즌 경기와 개막전까지 지켜봤다.

스토크시티는 과거 프리미어리그 시절 선 굵고 단조로운 스타일로 유명했던 팀이다. 하지만 2부로 강등되고 시간이 흘러 직접 확인해보니 후방에서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스타일로 바뀌어 있었다. 다만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만드는 지점에서 아쉬웠는데, 그 연결고리 역할에 배준호가 제격이었다. 배준호 측이 마음을 굳히게 된 배경이다. 2018년까지 프리미어리그에 있었던 만큼 스토크시티의 경기장과 훈련장 시설, 제반 환경 등도 수준급이었다. 2부 리그라는 선입견만 지운다면 유럽 진출의 첫 선택지로 삼기에 좋은 팀이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8월31일 입단한 배준호는 이틀 만에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다섯 경기 만에 도움으로 공격포인트를 올리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유럽 진출 첫 시즌 개인 기록은 리그 37경기 출전에 2골 5도움이다. 하지만 숫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여도가 호평받았다. 특히 팀이 잔류를 놓고 경쟁하던 시즌 막바지 활약이 눈부셨다. 2월과 3월에는 스토크시티가 자체 선정한 ‘이달의 선수’에 연속으로 뽑혔다. 시즌 도중 감독 교체를 겪은 스토크시티는 배준호의 활약을 앞세워 17위로 잔류하는 데 성공했다. 최고의 퍼포먼스를 인정받아 팀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 타이틀까지 획득했다.

유럽 무대 연착륙에는 경기장 밖에서의 노력도 빠지지 않는다. 배준호는 언어 문제로 시즌 중반 어려움을 겪었다. 에이전트에 따르면 “구단에서 기술적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는데 수비 포지셔닝이나 조직적인 플레이 등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를 우려했다”. 배준호는 구단에서 붙여준 현지 영어 교사 외에 한국인 교사까지 추가로 구했다. 하루 3시간가량 영어 수업을 진행한 결과, 동료와 의사소통은 물론 코칭스태프가 요구하는 전술적 지시를 문제없이 이행하고 있다.

팬들의 외침 “배준호를 지켜라”

파장도 있었다. 배준호는 지난 4월 열린 23세 이하 아시안컵에 차출될 예정이었지만, 스토크시티가 황선홍 감독과의 약속을 깨고 차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팀 내 비중이 워낙 커진 탓이었다. 한국은 배준호를 비롯한 유럽파 차출 불발 여파로 8강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에 일격을 맞고 탈락했다.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출전도 좌절됐다. 그래도 배준호는 단숨에 팀의 에이스로 올라섰고, 스토크시티 팬들에게 ‘코리안 킹(Korean King)’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팀 선정 ‘올해의 선수’를 발표하는 SNS 게시물에는 “배준호를 지켜라” “다음 시즌에 프리미어리그로 갈 것 같아 걱정된다” 등 팬들의 기대와 불안이 섞인 댓글을 확인할 수 있다.

스토크시티와 배준호의 계약기간은 4년이다. 아직 3년이 남았다. 벌써부터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한 1부 리그 팀들이 관심을 보인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팀 이름값을 좇기보다 자신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적합한 팀을 찾아 2부 리그로 향한 배준호와 에이전트의 판단이 적중한 것이다. 임세진 대표는 “스토크시티는 배준호를 구단에 큰 이익을 안겨줄 선수로 분류하고 있다. 당장 여름에 구단도, 선수도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적인 제안이 온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팀에서 애정을 갖고 존중해주고 있다. 스무 살 선수니까 리스크를 줄이는 선택을 해야 한다. 1년 정도 더 스토크시티에서 경험을 쌓고 다음 스텝으로 가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유럽 무대에서 오랜 시간 활약하고 K리그로 돌아온 기성용(FC 서울)은 최근 “유럽에서는 20~21세 선수를 어리다고 보지 않는다. 한국의 어린 선수들이 지금보다 더 일찍 유럽으로 가고 가치를 증명해 큰 클럽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배준호도 그 시기를 놓치지 않았다. 아시아 선수들에게 유럽은 여전히 ‘먼저 증명해야 인정을 얻는’ 무대다. 이른 나이에 도전한 배준호는 더 좋은 기회를 얻을 가능성을 높였다.

배준호의 연착륙은 또 하나의 시사점을 남긴다. 돌아가는 것으로 보였던 하부 리그 선택이 오히려 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새롭게 유럽으로 건너간 많은 선수 중에서도 배준호의 행보가 유독 의미를 갖는 이유다.

배진경 (<온사이드> 편집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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