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장악한 '오일머니'…중국 주춤한 사이 UAE 급부상
아프리카 대륙에서 아랍에미리트(UAE)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중국의 아프리카 투자가 주춤하고, 미국의 아프리카 안보 협약이 철회되는 빈틈을 UAE가 비집고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UAE가 2022~2023년 아프리카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금액만 970억달러(134조 2383억원)에 달한다. 이는 아프리카 큰 손으로 불리던 중국의 투자금보다 3배 많은 금액이다. 중국이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를 줄이자 풍부한 '오일머니'로 무장한 UAE가 점차 아프리카의 중요한 투자자로 부상했다고 FT는 진단했다.
해외투자 분석전문업체 '에프디아이 마켓(fDi Markets)'의 자료를 인용해 직전 2년을 포함한 UAE의 아프리카 누적 투자금액은 1100달러(152조원) 규모라는 점도 짚었다. UAE가 아프리카에 투자를 약속한 분야는 △재생 에너지 △항만△광업 △부동산 △통신 △농업 △제조업 등이다.
이와 관련 조지타운대학교의 켄 오팔로 교수는 "UAE는 아프리카에서 중국과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며 "에미레이트 항공은 지난 10년간 (아프리카) 대륙 투자 상위 4위권을 유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두바이 종합상품센터의 하마드 부아민 의장도 "UAE는 위험성을 감내하고 아프리카 프로젝트를 선택했다"며 "대부분 안정성을 선호하는 투자자들은 아프리카를 기피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프리카는 정치적 리스크가 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상품과 광물 측면에서 얻을 것이 많은 대륙"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UAE의 최대 도시인 두바이는 아프리카 기업들이 전 세계 다른 나라와 무역을 시작하기 위한 교두보를 자청했다. 부아민 의장은 "이 곳(두바이)은 전 세계가 아프리카로 가는 관문이자, 아프리카가 나머지 세계와 무역하기 위한 금융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두바이 상공회의소 통계를 살펴보면 두바이에 등록된 아프리카 기업의 수는 지난 10년 동안 급격히 증가해 2022년까지 2만6420개를 기록했다. "두바이는 이제 아프리카인들에게 뉴욕이다"라는 비유가 나올 정도다.
UAE와 아프리카의 관계는 '돈'을 넘어 식량안보, 대테러, 군사 및 정치적 영역까지 확대하는 추세다. FT는 "UAE는 '돈의 장벽'을 활용해 아프리카 개별 국가의 경제적 운명뿐만 아니라 일부 아프리카 지도자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하는 데까지 도움을 주는 위치에 섰다"고 표현했다.
예를 들어 2021년 에티오피아 내전 당시 UAE는 정부에 군용 드론을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정부 군사 조직인 티그레이 인민해방전선의 전투기들이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위협하자 UAE 정부 측은 "특정 정당이나 개인보다는 에티오피아의 기관과 국민을 지지하는 측면"이라며 사실상 정부군 지원에 나선 것.
당시 내전을 기점으로 사실상 '동맹국' 처럼 지내던 미국과 에티오피아의 관계가 경색되면서 UAE의 입지가 올라갔다고 분석한다. 미국은 2020년까지 연간 1조원 규모의 원조를 제공하는 등 재정적 지원을 해왔는데 에티오피아 정권이 흔들리고 정부군과 반군의 반인도적 범죄 등이 보고된 이후 에티오피아에 외교적 압력을 넣는 식으로 선회했다.
UAE가 2019년과 2020년 리비아에 군사적 지원을 한 점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리비아 군벌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이 유엔(UN) 지원 정부를 축출하기 위해 트리폴리를 공격했는데, UAE는 리비아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를 위반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UAE는 위반 혐의를 부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N 측은" UAE가 인도주의적 지원을 가장하여 무기를 공급했다는 증거가 있다"며 "UAE는 아프리카에서 어떤 규칙도 따르지 않고, 도리어 혼돈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UAE가 내전까지 '참전'하는 속내는 결국 자국에 이익이 된다는 계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비영리단체 위기그룹은 "UAE는 아프리카 주요 분쟁·내전에 일정 부분 참여해 이슬람 극단주의에 맞서겠다는 입장을 보여줬다"면서 "하지만 그 본질은 식량안보, 필수 광물, 재생에너지 관련 아프리카 투자를 늘려 UAE 경제를 다각화할 기회를 잡기 위함이었다"고 짚었다.
대표적으로 지난 10년 동안 UAE의 재생 에너지 투자자인 마스다르는 남아프리카의 5개 풍력 발전소, 세네갈의 배터리 에너지 저장 시스템, 모리타니아의 태양열 발전 시설 등에 투자하고 건설 중이다. 또 UAE 주도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발전 용량을 10GW 늘리기 위해 100억 달러를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채굴 분야에도 적극적이다. UAE 국가안보보좌관 셰이크 타눈 빈 자예드 알나흐얀이 회장을 맡은 '인터네셔널 홀딩스 컴퍼니'는 계열사 등을 동원해 잠비아 구리광산 대주주 지분을 11억달러(1조5300억원)에 인수하는가 하면 앙골라, 케냐, 탄자니아 지역 광산 투자도 검토 중이다. 또 UAE의 금 거래업체 '프리메라'는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로부터 콩고 내 모든 소규모 '장인' 금 공급에 대한 25년 독점권을 싹쓸이로 사들이기도 했다.
두바이는 한편으로 아프리가 '상위 1%'의 금고 역할도 자처하고 있다. FT는 "아프리카의 유명 정치인이나 상류층 부자들은 두바이의 부동산을 사고, 세계적 수준의 생활 방식을 즐기는 방안을 모색한다"고 전했다. 아부다비 국방대학의 알샤테리 교수는 "UAE의 부상은 아프리카에서 워싱턴의 영향력 감소와 관련이 있다"며 "미국이 안보 공약을 철회하고 있기 때문에 아프리카는 그 공백을 UAE로 메운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하늬 기자 hone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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