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 “사람들은 여전히 더 나은 정치 기대…정치 계속할 것”
“기득권 선의에 기댄 연동형 비례
배신당하고 전략 없이 시간 보내
비교섭단체는 미생…무력감에 고통
약자 위한 의제 진척 땐 보람 느껴”
국회 원내에 입성한 지 12년 만에 정의당이 다시 ‘광야’에 섰다. 4·10 총선에서 정의당이 얻은 비례대표 득표율은 2.14%, 의석 확보를 위해 필요한 ‘3% 득표’에 미치지 못했다. 당에 남은 부채는 약 30억원. 총선 패배 뒤 적잖은 당직자들은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당을 떠났다. 재공고 절차 끝에 단독 입후보한 권영국 신임 대표는 지난 28일 이·취임식에서 “어제 가위눌리는 꿈을 꿔서 허우적거리다 잠에서 깼다”고 했다. ‘다시 시작’이라는 노란색 걸개를 내건 이·취임식에서 많은 이들은 눈물을 훔쳤다.
작지만 또렷한 재기의 불씨도 포착됐다. 낙선 3일 만에 장혜영 의원의 후원계좌에는 한도(3억원)를 넘는 후원금이 모였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돈을 보낸 후원자, ‘나의 한시간을 보낸다’며 9860원을 후원한 최저시급 노동자,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한 지지자들의 마음이 한순간 모인 결과다.
지난 27일, 21대 국회의원 임기 종료를 이틀 앞둔 장 의원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책과 서류, 집기 등 빼놓은 짐들로 어수선한 그의 사무실에서 ‘정의당 의원 4년’은 어땠는지 물었다. 당은 왜 이렇게까지 참패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이어가야 하는 이유도 물었다.
‘입법 발의 도장’ 받으며 울었다
―의정활동 첫날을 어떻게 기억하시는지요?
“차를 타고 경내로 들어오는데 국회 본청의 파란 뚜껑이 보였어요. 그걸 보면서 ‘여기가 내 직장이라고?’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황당한 판타지 소설 있잖아요. ‘눈을 떠보니 갑자기 내가 국회의원?’ 그런 느낌이었죠.(웃음)”
―그리고 4년이 흘렀습니다.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 있었나요?
“제가 대변하고 싶었던 사회의 약자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산재 유가족,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양당에서는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데 저희를 찾아와서 호소하는 분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게 함께하고, 아주 조금씩이지만 의제가 진척될 때, 그럴 때가 저한테는 한결같이 좋은 순간들이었죠.”
―동시에 절망과 고뇌에 빠졌던 시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절망과 고뇌는 기본으로 깔린 것이죠.(웃음) 비교섭단체는 미생이잖아요. (교섭단체 소속 의원과) 같은 의원이 아니죠. 정의당 의원이 10명이 안 되니까 법안 발의도 힘들지만, 그 법이 (상임위원회에서) 심의될 것이라는 기대 자체를 할 수 없는 구조잖아요. 정말 너무너무 큰 힘을 국회 밖에서 만들어내지 않으면 논의도 쉽지 않았어요. 가령 차별금지법은 제가 (임기 시작) 한달 만에 대표발의를 하고,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0만명을 달성했지만, 지난 4년 동안에 단 한번도 법사위에서 심의된 적이 없죠. 비교섭단체 의원으로 느끼는 무력감이 고통스럽고 힘이 들었어요.”
―발달장애를 가진 동생과 동거하는 2인 자매 가족 구성원인 동시에 탈시설지원법, 가족구성권 3법을 발의한 의원이었습니다.
“저한테 가족은 공적 영역으로의 모험을 하게 된 계기죠. 한국 사람에게 가족은 영원한 숙제잖아요. 어떤 이에게는 삶의 의미이지만, 어떤 사람한테는 천형이죠. 거꾸로 뒤집어보면 그만큼 ‘사회가 약하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그건 사회가 할 일이 아니야, 너희 집안일이지.’ 그런데 가족과 개인의 일이라고 여겨왔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사회 구조적인 차별의 문제, 억압의 문제이거나, 불평등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는 게 제가 발달장애인의 언니로서 얻게 된 소중한 통찰이에요. 한 인간으로서 우리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좋은 가족을 만들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도와줘야 한다는 것, 이게 제 의정활동의 방향성이었던 것 같아요.”
―동성혼 합법화 등 정치적으로 예민한 내용이 포함된 ‘가족구성권 3법’ 발의에는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도 참여했었죠.
“김예지 의원님한테 제가 직접 법안 (발의) 도장을 받으러 갔어요. 생활동반자법과 비혼출산법까지는 제가 계속 설명하고 사정하니까 해줄 수 있겠다고 하셨는데, 동성혼은 너무 곤란해하시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속마음 이야기가 툭 나오더라고요. ‘왜 우리 같은 사람들은 국회의원이 돼서도 정말로 하고 싶은 법안 하나 발의하는 게 이렇게 어렵냐’고 말하는데, 막 눈물이 나는 거예요. 김 의원님도 같이 울었죠. 그러고 나서 ‘아이, 나도 모르겠다. 찍어줄게요’ 하셨어요. 이렇게 울어서 받은 도장입니다. 김 의원님은 장애 당사자로서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계시고, 저는 당사자의 가족이자 탈시설을 지원한 사람으로서 공유하는 정체성이 있다 보니까 그 울분이 있는 거죠. 슬픔에 공감해주셨다고 생각해요.”
‘김 의원과 함께 울었다’는 대목에선 그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윤석열 정부와 거대 양당 ‘2개의 전선’
―지난 20년 동안 정의당과 진보정치가 이룬 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까지 외면받게 되었을까요?
“정치 전략이 방황한 결과 아닐까 싶어요. 문재인 정권 이후의 정세에 정의당이 잘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극단적인 양당 정치를 해결하기 위해 다당제의 제도화가 중요한 개혁과제였잖아요. 그 구체적인 방식이 연동형 비례제의 도입이었을 텐데, 그게 생각처럼 잘 안됐던 것이죠. 국회에서 양당과 소수당이 기울어진 운동장인 상태에서 경쟁하니까, 그 리그를 나누자는 것이 제도의 핵심이었거든요. 기득권의 선의에 의해 권력을 분점하는 개혁이었는데, 거대 양당이 배신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죠. 21대 국회에서 ‘위성정당’으로 제도가 너무나 쉽게 해킹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잖아요. 그걸 보고도 전략이 수정되지 않은 상태로 지난 4년을 그대로 보내버린 것이죠.”
―정권심판론의 강한 바람 속에 정의당이 윤석열 정권과 충분히 싸우지 않았다는 인식도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과 싸우면서 동시에 양당제와 싸워야 하는 두가지 과제가, 작고 힘없는 정의당에 있었어요. 윤석열 정부와 싸우지만 동시에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킨 양당의 적대적 공생구조를 어떻게 하면 깰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싸우지 않는다’고 받아들여진 것 같아요. 민주당이 원하는 방식으로 싸우지 않으면 싸우는 게 아니라는 오해가 있는 것이죠.”
―민주당과 힘을 합해야 한다는 생각은 정의당 안에도 있었죠. 정의당은 늘 ‘민주당 2중대론’에 시달렸습니다.
“윤석열 정권이 무도해도 너무 무도한 정권이니까, 지금은 속상해도 당장은 ‘민주대연합’을 해야 한다는 노선이 있을 수 있다고 봐요. 실제로 2022년 지방선거 이후 재창당 논의를 시작한 것도 그런 정치 노선에 대한 근본적인 토론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죠. 문제는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그걸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논의하지 않았어요. 문서에는 ‘양당제를 넘어서는 독자적인 진보정당의 길을 간다’고 아름답게 쓰여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전술로 민주대연합이 나오는 것이죠. 당이 분열되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고, 그렇다 보니까 근본적인 노선에 관해 토론을 붙이는 걸 피해 가게 만드는 문화가 있었어요. 노선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부재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정의당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사람들은 여전히 이것보다 나은 정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말을 걸 수 있고, 내 삶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보려는 좋은 마음을 가진 정치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솔직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죠. 우리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바에 걸맞은 정치적 실천과 문화를 가졌는지 하는 질문을 우리 스스로한테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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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지만 후회 없는 4년
―정의당 안에서는 ‘청년 전략명부’로 비례 1·2번으로 나란히 원내에 입성한 류호정·장혜영 의원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청년 정치’ 실험을 어떻게 돌아보시는지요?
“뜨거웠다.(웃음) 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나 시도했던 것을 후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청년으로서, 여성으로서 이중적인 요구를 많이 받았어요. 청년이고 여성이니까 해야 하는 일도 있지만 어떤 의제들에서는 청년이나 여성이라는 걸 티 내지 말라고 할 때도 있었어요. ‘이건 초인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정의당이 원하는 청년 정치인은 초인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을 거부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에 기권했습니다. 그 순간마다 당내에서는 강한 ‘장혜영 비토’ 여론이 들썩였습니다.
“사실 권력형 성범죄 가해자의 장례식이 성대하게 치러지고, 다수의 정치인이 조문하는 상황이 피해자에게는 어떻게 느껴질지 저처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봐요. 공수처법도 저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요. 그렇다면 정치인으로서의 고민의 결과만 표현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문제의식이 유효하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공개적으로 토론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같은 선택을 하더라도 좀 더 맥락을 잘 만들어서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낙선 직후 곳곳에서 후원금이 모여 3억원의 한도를 초과했습니다.
“그간의 비용을 후원금으로 정산하고 나니 그래도 조금 돈이 남았어요. 그래서 남은 돈은 우리 당의 빚을 갚는 데 쓰기로 했어요. 부채가 대략 30억 정도 되는데 그거의 1% 정도는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에요. 그렇게 할 수 있게 돼서, 진짜 다시 한번 그분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틀 뒤면 국회의원 임기가 끝납니다. 앞으로 ‘정치인 장혜영’에게는 어떤 계획이 있습니까?
“없습니다.(웃음) 일단 아주 큰 방향성은 정치를 계속한다는 것, 그리고 지금 마포의 지역사무실을 쓰고 있는 공간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 이 두가지의 방향성을 잡아놓고 나서, 장혜영 정의당 ‘전’ 국회의원의 시간을 마주할 예정입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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