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사회공포증'과 '자기중심적 시각'의 악순환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4. 6.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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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곰 인형을 가운데에 두고 여럿이 곰 인형을 둘러싸고 서 있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각 사람의 위치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곰 인형의 옆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뒷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정면이 보일 것이다.

이때 각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곰 인형이 어떻게 보일지 맞혀보라고 한다. 그러면 4살 이전의 아이들이나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과는 다른 타인의 시선을 유추하는 데 어려움을 보인다.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는 상황을 떠올려보게 하고 그 자신의 시선에서 보이는 곰 인형의 모습을 유추하라고 해보면 이 과제는 곧 잘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유추해야 하는 시선이 '타인'의 것이 되면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자신만의 세상에서 벗어나서 나와는 다른 타인의 경험을 유추하는 능력을 마음 이론이라고 한다. 나와는 다른 저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며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알아채는 능력은 원만한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 필수적이다.

만약 타인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읽어내는 능력이 전혀 없다면 눈치가 전혀 없고 타인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르며 협력하지 않는(배려와 협력 역시 타인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수 있다) 사람으로 찍히고 말 것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사회공포증, 사회적 상황에서 지나친 불안과 두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경우 이러한 마음 읽기 능력이 저하된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사회공포증을 겪는 사람들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시각적 조망 수용 과제나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는 과제에서 비교적 더 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인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또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게 시키는 등 사회 불안을 고조시키면 타인의 의도와 감정을 해석하는 정확성이 떨어지는 등 사회적 상황에 대한 불안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자기중심적인 시각을 유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사회적 불안이 높아지면 사회적 상황을 잘 헤쳐 나가기 위해서라도 타인 중심적인 해석을 해내야 할 것 같은데 반대로 자기중심적인 면이 강해지는 이유는 뭘까. 서티스 버밍엄대 심리학자에 의하면 '불확실성을 잘 참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다. 

불안증이나 공포증들은 대체로 그 상황이 내재하고 있는 불확실성에 의해 발생한다. 사회공포증이 높은 사람들의 경우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면 어떡하지?", "이상한 말을 해서 비웃음을 사면?" 같이 사회적 상황에서의 불확실성을 더 크게 지각하는 편이다.

따라서 불확실성을 나름 극복(?)하기 위해 알 수 없는 타인의 경험보다는 자신이 확실히 알고 있는 자신의 경험에 더 큰 가중치를 두고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공포증이 높은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회피하기 위해 자기중심적인 시각을 유지하게 되지만 그럼으로써 정작 중요한 사회생활은 더 못하게 되고 결국 그토록 싫어하는 사회적 상황에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의 불확실성이 싫어서 이를 피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결과 불확실성만 더 높아진다는 점이 슬프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사람의 마음이란 원래 알기 어려운 것이고 따라서 우리 모두 크고 작은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상황에서의 불확실성은 애초에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좀 더 눈치 보기를 잘 하면 소위 사회생활을 잘 하는 사람에 가까워질 수 있겠으나 보통 이런 능력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굳은살'처럼 생겨난다. 

어렵지만 계속해서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그나마 불확실성을 잘 헤쳐 나갈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서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히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대화하면서 상대방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Hamilton, A. F. D. C., Brindley, R., & Frith, U. (2009). Visual perspective taking impairment in children with autistic spectrum disorder. Cognition, 113(1), 37-44.
Surtees, A. D., Briscoe, H., & Todd, A. R. (2024). Anxiety and mentalizing: Uncertainty as a driver of egocentrism.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33(2), 100-107.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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