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도 고치는 '만능' 비만약…2200명 박수 쏟아진 현장 뒷이야기 [남정민의 붐바이오]

남정민 2024. 6. 1.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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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지난 23~26일(현지시간) 열린 유럽신장학회(ERA)에서 청중들이 '플로우 세션'을 듣기 위해 몰렸다. 2200명이 최대 수용인원인 메인 A1홀은 금새 차버렸다. 비만약에 대한 글로벌 제약 바이오업계의 관심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스톡홀름=남정민 기자


“뒤에 서 있으면 안 됩니다. 빈자리 찾아서 꼭 앉아서 강연을 들어주세요.”

현장 관계자의 말이 무색하게, 2200명 규모의 강연장은 금방 들어찼고 곧 수십명의 사람들이 뒤편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서서 들으면 안 된다고 몇 차례 말하던 경호원도 이내 포기하고, 강연장 안으로 계속해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뒤편으로 안내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달 23~2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럽 신장학회(ERA 2024)의 ‘플로우 연구 결과(The Flow study results)’ 세션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습니다. 글로벌 제약·바이오업계 ‘핫토픽’인 비만약이 신장질환도 늦출 수 있다는 임상 데이터가 나오자 세계 곳곳의 신장내과 교수, 의료진, 제약사 관계자 등이 한 곳에 몰렸습니다. 

 신장질환에도 효과 보인 세마글루타이드

플로우 임상은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의 비만약 ‘위고비’와 같은 성분(세마글루타이드)이 만성 신장질환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보기 위해 설계된 임상실험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제2형 당뇨 및 만성 신장질환 환자 3533명을 대상으로 주 1회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하고, 위약군 대비 어떤 효능을 보이는지 연구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우선 만성 신부전(신장 기능이상)이 악화될 위험을 24% 줄여줬습니다. 신부전 증상이 심해지면 투석 혹은 신장 이식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럴 위험을 24% 줄여준 겁니다.

신장질환 뿐만이 아닙니다. 주요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성도 18% 줄여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뇨병성 신부전 환자는 비당뇨성 환자에 비해 심혈관계 질환 등의 합병증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궁극적으로 세마글루타이드 투여는 만성 신장질환 환자의 사망 위험을 20% 감소시켜 주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만성 신장질환은 제 2형 당뇨병의 가장 흔한 합병증 중 하나입니다. 만성 신장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8억4400만명에 달합니다. 그리고 사망율은 매년 41%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3년만 해도 ‘인간의 주요 사망원인(Rank in cause of death)’에서 19번째 순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2040년에는 5위로 올라갈 것으로 보입니다.

플로우는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1 계열 치료제인 세마글루타이드가 만성 신장질환, 그리고 제 2형 당뇨에 효과가 있는지 보기 위해 설계된 세계 최초의 ‘신장 집중 임상’입니다. GLP-1은 만성 신장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잠재력 있는 솔루션이 될 수 있습니다.

-블라도 페르코빅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UNSW Sydney) 교수

 "임상결과를 실제 의료현장으로 옮겨 생명 구해야"

플로우 세션에서 발표를 진행 중인 캐서린 터틀 미국 워싱턴대 교수. 세마글루타이드는 생명을, 심장을, 그리고 신장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스톡홀름=남정민 기자


플로우 세션 발표 현장에선 세마글루타이드를 만성 신장질환 치료를 위한 네 번째 기둥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기존 RAAS 차단제, SGLT2 억제제, 피네레논에 이어 세마글루타이드도 신장질환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만성 신장질환과 제 2형 당뇨병은 흔하지만 치명적입니다. 이제 우리는 굉장히 효과적인 치료법들을 알게 됐습니다. 플로우는 두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점이 증명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만성 신장질환에 대한 인지율이 낮다는 것은 우리에게 남은 숙제입니다. 플로우 임상 결과를 실제 시행으로 옮기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캐서린 터틀 미국 워싱턴대 교수

세마글루타이드는 췌장에서 인슐린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물질입니다. 현재 당뇨, 비만, 신장질환뿐 아니라 대사질환, 심혈관계 질환에 이어 치매 치료제로도 활용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미국에서는 치매를 ‘3형 당뇨’로 부릅니다. 당뇨 때문에 혈당이 높아져 혈관이 망가지면 몸속 염증이 늘고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입다.

비만약의 쓰임새가 계속해서 확대되면 관련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세계 비만 시장 규모는 지난해 24억달러(약 3조2000억원)에서 2030년 770억달러(약 103조원)로 성장할 전망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한 독일 의료인은 “플로우 스터디 세션은 역사적인 세션”이라고 말했습니다. 캐서린 터틀 교수는 “세마글루타이드는 신장과 심장을, 그리고 생명을 살린다”고 강조했습니다. 플로우만큼이나 역사적인 연구들로 앞으로 더 많은 생명들이 지켜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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