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리포트] 강남구민 집값 상승 욕심인가… "랜드마크 실리 적어"

김창성 기자 2024. 6. 1.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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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채납 발목 잡힌 GBC… '지역이기주의' 논란③] '마천루=국력' 옛말… 서울시·현대차 대립에 사업 제동
[편집자주] 재계 3위 현대자동차그룹이 서울 강남 삼성동에 짓는 '글로벌 비즈니스 콤플렉스'(GBC) 사업이 첫 삽을 뜬지 4년째다. 하지만 공정률은 4%. 현대차는 기존 105층 설계를 55층으로 변경하는 계획을 지속해서 밝혀왔지만 인·허가권자인 서울시의 반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현대차가 설계변경을 결정한 가장 큰 배경에는 공사비 급상승 사태가 지목된다.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기업들은 상징성보다 실리를 선택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GBC 설계 변경에 대해 서울시가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사진은 10년째 공터로 남은 GBC 건설 부지 전경. /사진=뉴시스
"제가 이 회사에 재직하는 동안에는 완공이 힘들지 않을까요?"

2014년 시작한 현대자동차그룹의 숙원사업 '글로벌 비즈니스 콤플렉스'(GBC) 건설을 놓고 한 임원은 이 같이 말하며 씁쓸해했다.

현대차그룹은 GBC 건립을 위해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옛 한국전력 부지를 10조원 넘는 돈에 매입했지만 설계변경과 인·허가 등의 문제로 10년의 허송세월을 보냈다.

여전히 빈 땅인 부지는 터파기 공사만 4년째. 최근에는 현대차그룹이 결단을 내고 건축비 조정을 위한 층수 하향 방안을 내놓아 서울시와 대립했다.

현대차그룹은 55층 2개동 변경설계안을, 서울시는 105층 원안 건축을 요구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GBC 후광으로 땅값 상승 효과를 기대하는 강남구민의 '지역 이기주의'도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10년 전 10.5조 베팅한 땅 허허벌판


현대차그룹은 2014년 9월 당시 한국전력 본사이던 부지를 10조5500억원에 낙찰받았다. 한전이 제시한 감정가 3조3000억원의 3배에 달하는 초대형 베팅이었다. '오버 페이' 논란도 있었지만 현대차그룹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현대차그룹은 GBC 건립을 위해 삼성전자를 비롯한 12개 입찰 업체를 따돌렸다. 해당 부지를 본사로 사용하던 한전은 전남 나주혁신도시로 이전했다.

현대차그룹은 한전 부지 매입 이후 글로벌 톱 수준의 모빌리티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GBC 프로젝트는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다. 해마다 내야 하는 부동산 보유세만 2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여러 차례 사전 설계변경 끝에 현대차그룹은 지하 7층~지상 105층의 국내 최고층 높이 569m 빌딩을 건축하기로 했지만 수년전부터 지속돼온 공사비 폭등으로 다시 설계변경을 결정했다.

변경된 설계안은 55층 타워 2개 동과 문화·편의시설 등을 위한 저층 4개 동 등 총 6개 동이다. 현대차그룹은 변경된 GBC 설계 제안서를 지난 2월 서울시에 제출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설계변경안에 대해 "급변하는 대내·외 경영환경에 대응하고 실용성과 효율성에 초점을 둔 그룹의 미래 전략 등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설계변경 인·허가와 관련해 서울시와 협의를 진행 중이지만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알 수 없다"고 말을 아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건설업계는 현대차그룹의 이 같은 결정이 최근 국내·외 경제가 처한 극한의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GBC 설계를 105층 1개동에서 55층 2개동으로 변경했다. 사진은 변경 설계 조감도. /사진=현대차그룹
공사 자재 가격 인상에 따른 공사비 급등으로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리던 강남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수주도 발을 빼는 상황에서 그룹의 미래가 달린 대형 프로젝트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일반적으로 건물 높이가 50층 이상인 경우 건축비가 두 배 이상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추산된 GBC 건축비는 3조7000억원. 물가인상분을 감안하면 현재 시점에서 최소 5조원 이상에 달하는 건축비가 예상된다.


'마천루의 저주'


현대차그룹의 설계변경 문제는 군 보안과도 연결된다. 국군 작전제한사항 등 국가안보와 화재·재난 등 안전 리스크를 줄인다는 도시 안전의 측면을 고려했다는 게 그룹의 설명이다.

현대차그룹은 초고층 타워를 55층 2개 동 건물로 분산 배치하면서 감축한 투자비를 미래 첨단 모빌리티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세계 최고 수준의 건축가와 협업한 미래 랜드마크 디자인 개발 ▲탄소저감 친환경 신기술 적용 ▲도심항공모빌리티(UAM)·목적기반모빌리티(PBV)·로보틱스 등이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의 새 GBC 설계안이 기존 틀을 유지하며 건물 높이, 디자인 등 건축 위주로 변경이 가능하고 인·허가도 문제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공공기여 규모가 1조7000억원대로 결정됐고 물가인상분은 현대차그룹이 부담하기로 합의돼 있어 설계변경을 해도 공공기여는 2조1000억원으로 증가한다.

반면 서울시는 초고층 랜드마크를 전제로 2016년 이룬 사전협상 결과가 바뀌는 만큼 추가 협상을 하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시는 현대차와 사전협상에서 초고층 빌딩 건축을 전제로 공공기여율 4.33%를 인센티브로 제공했다. 관광시설로 기대를 모은 '105층 전망대'의 실현도 물 건너간다.

GBC 부지가 위치한 삼성동과 강남구 일대는 고가주택 밀집 지역으로 국내 최고층 빌딩이 건축 시 지역민들이 후광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집값 상승을 기대한 '지역 이기주의'가 아니냐란 의견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현대차그룹의 GBC 사업이 10년 째 표류 중이다. 사진은 2016년 한전 사옥 철거 작업이 진행되던 GBC 부지 모습. /사진=뉴시스
국내 1세대 마천루인 여의도 63빌딩(현 63스퀘어)과 현재 최고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는 이른바 '마천루 효과'를 과시했다. 강남구민 입장에선 또 다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경쟁 구도가 형성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롯데월드타워와 이전의 롯데 계열 백화점·마트·테마파크 등 인프라가 송파구민의 주거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보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문제는 기업들이 수주 활동마저 중단하는 공사비 폭등 사태에 민간기업이 대규모 공사 적자를 부담하면서까지 이 같은 대의에 이용될 필요는 없다는 데 있다. 지역 이기주의와 지자체, 정치권 입김에 밀려 무리하게 사업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반문이 나오는 이유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경기 불황과 고물가, 이에 따른 손실 등을 감안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현실성을 고려한 설계변경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며 "초고층 빌딩은 권력과도 맞닿은 부분으로 정치인이 치적을 과시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보인다"고 짚었다.

한 건설업체 고위임원은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경우 건설경기가 좋을 때 건설해 리스크가 적었지만 불황에는 실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며 "초고층 건설에 따른 공기 연장과 인건비 상승 등 감당해야 할 후유증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초고층 랜드마크 빌딩을 짓는다고 국격이 올라가는 시대는 갔다"면서 "서울시가 행정 지원을 해 공사를 하는 것이 건설산업 부양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창성 기자 solral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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