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전공 확대는 대학 '저승사자'…비인기 전공 사장될 것"

서혜림 2024. 6. 1.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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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교수들 "교육부 인센티브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편성…대학 경쟁력 상관없을 것"
교육부 "인문사회 기반으로 한 융합교육 지원 확대 추진"
수시 모집 요강 발표 앞둔 한 대학 강의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정부가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025학년도 입시에서 자율전공 모집 인원을 전년 대비 4배 가까이 늘리기로 했다.

이를 두고 지금도 순수학문은 학생들이 없어 학과가 고사할 위기인데, 자율전공으로 학생의 선택권을 늘리면 모집이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2025학년도 '전공자율선택제 중점 추진 대학'으로 수도권 대학과 국립대(교대·특수목적대 제외) 총 73개교에서 3만7천935명을 자율전공으로 모집한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이는 이들 대학 총모집인원의 28.6%이며, 전년(9천925명) 대비 4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기존에는 비인기 학과라고 하더라도 신입생 때부터 해당 학과 소속이기 때문에 정원에 큰 변함이 없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비인기 학과를 포함해 일반학과 정원을 덜어내 자율전공으로 줬는데, 과에 따라서는 그 정원만큼 아예 감원됐다고 생각하는 곳도 있다.

신입생들이 2학년 전공 선택 때 결국 인기학과만 선택하게 되면 덜어낸 정원만큼 학생 수를 채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런 경향은 소위 '문·사·철'(어문·역사·철학) 등 순수학문 분야에서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박양진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는 "자율전공 확대는 결국 저희로서는 정원 감축으로 이해된다"며 "우리 학과는 원래 정원이 20명도 안 되는데, 여기서 자율전공으로 정원을 가져가면 한 학년에 15명가량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이 적은 비인기 학과의 경우 최소 강의 정원을 채우지 못해 폐강될 수 있고, 강사 채용도 어려워질 수 있다.

그렇기에 정부가 기초학문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대책을 세우지 않고 '학생 선택'만으로 전공 선택을 하게 만든다면 자칫 과 자체가 사장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의 무전공 모집 방침 중단 촉구'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전국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와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가 24일 교육부의 무전공 입학생 확대 방침이 기초학문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며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날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인문대에서 강창우 서울대 인문대학장 겸 전국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 협의회장이 입장문을 읽고 있다. 2024.1.24 jieunlee@yna.co.kr

하지만 각 대학은 교육부가 무전공을 확대할 시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에 여기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이다.

교육부는 2025학년도 대입에서 무전공 선발 비율에 따라 인센티브 금액을 달리 지급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학별로 자율전공 모집인원 비율도 각 대학의 사정과 학내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편성됐다.

이번에 자율전공 비율을 늘린 국립대 22개의 경우 2024학년도 4.5%에서 2025학년도 26.8%(보건의료, 사범 등 제외)까지 늘렸다.

그러나 강릉원주대(5.1%), 한국교통대(6.0%), 강원대(79%) 등 한 자릿수인 곳도 있고, 안동대(97.4%), 순천대(100%) 등 보건의료 등의 예외를 제외하면 100%에 육박한 곳도 있다.

한 국립대 교수협의회장은 "재정 여유가 있는 곳은 자율전공 비율을 최소화하려고 했고, 여건이 어렵다면 인센티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비율을 늘렸다"며 "교수들의 반발도 상당했는데, 이들의 목소리를 총장이 귀를 기울였냐 아니냐에 따라서도 비율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그는 "교수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율전공이 필요하다고는 보지만, 이건 너무 과격한 방식으로 도입된다'고 비판하고 있다"며 "예전에도 무전공을 도입했는데, 인기학과 쏠림 현상을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정말 울며 겨자 먹기로 한 것'이라며 "마치 자율전공 도입은 대학의 '저승사자' 같은 느낌이다. 대학 경쟁력과는 크게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렇기에 자율전공을 도입하더라도 기존 전공들이 사장되지 않게 학과를 융합해 '모듈형'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제도가 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용련 한국외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과 개념보다는 학생들이 여러 학문을 선택하고 융합해 전공을 만드는 '모듈형' 전공을 만들어야 한다"며 "예를 들어 프랑스어를 공부하면서도 회계 등 여러 학문을 한꺼번에 공부할 수 있게끔 한다면 비인기학과가 받을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취업난으로 순수학문보다 실용학문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며 "그러나 당장에 돈 버는 것에 관심을 두다 보면 학문이 발전하는 토대가 결국 망가진다. 기초 인문과학 등 학문이 발전해야 경제도 발전하고 사회가 다양하게 구성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교육부는 지나친 우려라고 반박했다.

교육부는 "전공자율선택제가 도입되면 모든 학생의 기초소양과 핵심역량 개발을 위한 기초학문의 활용이 확대될 것"이라며 "대학교육에서 인문학 등 기초학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위상이 지금보다 더 높아진다"고 밝혔다.

기초학문 지원 방안에 대해서는 "인문사회 분야 박사과정생 연구장려금 등을 계속 지원하고, 인문사회를 기반으로 한 융합교육 지원을 확대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f@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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