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주도 구걸도 QR코드로…'현금 사라진 사회'와 '빅 브라더'의 미래 [이도성의 안물알중]

이도성 기자 2024. 6. 1. 06: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도성 특파원의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중국 이야기'
"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중국 이야기. 몰라도 되는데 알고 나면 '썰' 풀기 좋은 지식 한 토막. 기상천외한 이웃나라 중국,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이도성 특파원이 전합니다." "

지난 주말 중국 윈난성 리장시에 있는 한 사찰을 찾았습니다. 오른쪽으로는 옥룡설산이 펼쳐지고 앞으로는 진샤강이 호도협을 향해 흐르는 절경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탁 트인 경치에 선선한 바람을 즐기며 사찰 안을 둘러보던 제 눈에 이상한 장면이 들어왔습니다.

낙선호시(樂善好施, 착한 일을 즐기고 베풀기를 좋아한다), 유구필응(有求必應, 원하는 건 반드시 이뤄진다)이라는 문장이 적힌 공덕(功德)함 위에 뭔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초록색 종이가 한 장 놓여 있었습니다. 자세히 가서 보니 위챗페이로 연결되는 QR코드였습니다. 공덕함에 현금을 넣는 대신 온라인 송금을 할 수 있게 남겨놓은 겁니다.

산 중턱 사찰뿐 아니었습니다. 호도협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사설 휴게소에 들어가자 화장실 앞에서 QR코드를 깔아놓은 안내원이 결제를 요구했습니다. 1명당 1위안(약 190원)씩 사용료를 청구했습니다. 휴대전화를 들어 바코드를 찍고 1위안을 보내는 데 채 3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중국 윈난성 리장시 한 사찰 공덕함에 놓인 QR코드. 휴대전화로 스캔하면 돈을 이체할 수 있다. 사진 이도성 특파원

베이징 등 대도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금만 취급할 것 같은 노점상에서도 QR코드로 물건값을 치를 수 있습니다. 출근길 마주친 길거리 음식점에서 작은 간식거리를 사고는 휴대전화로 간단히 6위안을 결제했습니다. 바닥에 좌판을 깔고 과일을 팔던 아주머니도 QR코드로 돈을 받았습니다. '현금우대, 카드사절' 같은 문구는 이제 중국 길거리에선 찾아볼 수 없습니다.

'중국에선 거지도 QR코드로 구걸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사실이었습니다. 귀갓길 육교 위에선 나무 악기로 노래를 연주하는 거리의 음악가가 철제통과 함께 위챗페이와 알리페이용 QR코드를 설치했습니다. '현금이 없어서 돈을 못 주겠다'는 말은 더는 핑계가 되지 않는 곳인 겁니다. 마음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손가락만 몇 번 들어서 돈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시에서 한 거리의 음악가가 돈을 넣을 수 있는 철제통과 금액 이체가 가능한 QR코드를 마련해놨다. 사진 이도성 특파원

10여 년 전만 해도 현금 결제가 일상이었던 중국은 신용카드 시대를 건너뛰고 곧바로 핀테크(Fin-Tech, 금융과 기술을 뜻하는 합성어) 국가로 거듭났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현금을 건네면 거스름돈이 없다며 받지 않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식당을 가도 종업원과 대화할 일이 없습니다. 테이블 위에 설치된 QR코드를 스캔해 메뉴를 고르고 곧바로 결제까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택시나 지하철을 타고 카페에서 음료를 사고 관광지 입장료를 내는 것까지 모두 간편 결제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는 지난해 9월까지 모두 185개에 달하는 비은행 결제기관이 세워졌습니다.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챗페이와 알리페이가 대표적입니다. 서비스 이용자는 10억 명을 넘었습니다. 거의 모든 중국인이 쓰고 있는 셈입니다. 연간 거래량은 1조 건 이상, 거래 금액은 해마다 400조 위안으로 우리 돈으로 7경 2,768조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큰 규모입니다. 미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중국의 모바일 결제 보급률은 86%에 달합니다.

중국 베이징시 길거리에 있는 노점상에 결제를 위한 QR코드가 걸려 있다. 휴대전화로 스캔하면 곧바로 결제창으로 이어진다. 사진 이도성 특파원.

이렇듯 편해 보이는 결제 시스템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중국 전화번호와 은행 계좌가 있어야 합니다. 신분도 확실하게 확인이 돼야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에겐 문턱이 높습니다. 단기로 중국에 여행 온 외국인들에겐 특히나 쉽지 않습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려고 해도 상당수의 상점과 식당이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한 기기를 놓지 않고 있습니다. 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죠.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중국에는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 정부가 나섰습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일정 금액 이하 거래에서는 신분증 정보를 요구하지 않게 했습니다. 이에 알리페이는 지난 3월 새로운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중국을 찾는 외국인 여행객은 별도의 등록 없이도 연간 최대 500달러까지 결제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만약 알리페이에 등록한다면 연간 거래 한도는 5만 달러까지 늘어납니다. 알리페이 앱을 내려받고 신용카드를 연결만 하면 됩니다.

중국 베이징시 길거리에 있는 노점상에 결제를 위한 QR코드가 걸려 있다. 휴대전화로 스캔하면 곧바로 결제창으로 이어진다. 사진 이도성 특파원.


다만, 이러한 '현금 없는 결제' 이면에는 중국 정부의 숨은 의도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부가 결제 시스템을 거머쥐고 돈의 흐름과 방향을 장악하려 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전자결제 서비스를 주도했던 IT기업들은 정부의 압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중국 시장 점유율 90%를 나누어 가진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를 운영하는 앤트그룹과 차이푸퉁은 지난해 금융당국으로부터 각각 우리 돈 1조 2,800억 원, 4,300억 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받았습니다. 규정 위반과 고객 권익 침해 등의 이유를 달았습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이 거대 기업을 '길들이기' 한 것이라는 주장도 힘을 받았습니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로고. 각 사 홈페이지 갈무리

정부 감시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2019년 홍콩 시위 당시엔 현금 쓰기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집회 현장을 오고 갈 때도 현금으로 편도 티켓만 끊는 등 방식입니다. 디지털 결제는 모두 중국 정부가 감시하고 있다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는 거죠.

이런 가운데 중국 정부는 '디지털 위안화' 생태계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2020년 4월 인민은행이 암호화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처음 발행한 법정화폐입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가상화폐인 셈이죠. 전자지갑 앱을 내려받아 등록하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전체 화폐 유통에서 1%도 채 되지 않지만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중국에선 언젠가 껌 하나도 정부 몰래 사 먹을 수 없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도성 베이징특파원 lee.dosung@jtbc.co.kr

Copyright © JTBC.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