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할수록 가혹한 폭염… 앞으론 ‘예외’ 없다

송은아 2024. 6. 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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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거주 은퇴자 전기료 연체 하자
40도 웃도는 여름 전기 끊어 숨져
2019년 더위로 사망 49만명 육박
농업생산량 줄어 ‘식량 공황’ 위기
“폭염 더욱 강력해지고 빈번해져
많은 사람 평등하게 피해 입을 것”

폭염 살인/ 제프 구델/ 왕수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2만3000원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사는 스테파니 풀먼은 2018년 여름 전기료를 176달러 연체했다. 은퇴자인 그의 한 달 수입은 1000달러가 안 됐다. 9월5일까지 밀린 전기료를 겨우겨우 냈지만 여전히 51달러가 남은 상태였다. 전기회사 애리조나 퍼블릭서비스는 풀먼의 집에 전기를 차단했다. 당시 기온은 41.6도. 일주일 뒤 풀먼은 침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열노출이었다.

풀먼의 죽음을 계기로 애리조나주 정부는 더운 여름날 함부로 전기를 끊지 못하도록 규제를 마련했다. 이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풀먼의 안타까운 마지막은 기후위기 시대 도시의 미래에 대해 더 큰 질문을 던진다.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은 저소득층, 야외노동자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생태계를 광범위하게 교란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0년간 기후 저널리스트로 일한 제프 구델은 신간 ‘폭염 살인’에서 “도시들이 점점 커지고 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릴수록 피닉스와 (인도 도시) 첸나이는 마치 온도 격리 정책이라도 시행되는 듯한 양상을 보일 것”이라며 “시원한 결계를 치고 그 안에서 오싹한 한기를 느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익어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 책은 지구적 기후위기가 인간과 도시, 식량, 동식물, 해양에 미치는 영향을 광범위하게 들여다본다. 지구 온도가 평균 1∼2도 오른다고 하면 그 파괴적 힘이 실감 나지 않는다. 25도와 27도가 얼마나 차이 나겠나 싶다. 저자는 “독자가 더위를 다른 방식으로 생각했으면 하는 것이 목표”라며 “여기에서 말하는 더위는 적극적인 힘, 철로를 휘게 한다거나 목숨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알아챌 새도 없이 나를 죽일 수도 있는 그런 힘”이라고 말한다.

의학저널 ‘랜싯’은 2019년 극단적인 더위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전 세계에서 48만9000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했다. UC버클리의 기후영향연구소 공동 대표이사인 솔로몬 시앙이 계산해보니 온난화가 1도 진행될 때마다 미국의 1년 국내총생산(GDP)의 1.2%(3000억달러)가 사라지는 것으로 나왔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높은 기온과 내전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제프 구델/ 왕수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2만3000원
폭염은 가난과 불평등을 드러낸다. 혼자 사는 노인, 에어컨이 없는 가난한 이들, 병상에 누운 이들이 가장 먼저 목숨을 잃는다. “폭염은 힘없는 사람들을 도태시키는 약육강식의 현장인 셈”이다. 2021년 태평양 북서부에 극한 더위가 덮쳤을 때 포틀랜드주립대 도시계획과 비벡 샨다스 교수가 측정해보니 포틀랜드 최악의 빈민가인 렌츠의 기온은 무려 51도였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콘크리트 동네였기 때문이다. 반면 평균 집값이 약 100만달러인 교외의 윌래밋 하이츠에 오니 기온은 37.2도로 떨어졌다.

한여름 야외에서 일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들과 실내 거주자 사이 불평등은 이미 한국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상황도 언젠가는 변할 것”이라며 “폭염이 더 강력해지고 빈번해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평등하게 피해를 입을 테니 말이다”라고 경고한다.

기후위기는 대이동을 부른다. 육상 동물들은 현재 10년마다 거의 20㎞를 이동하고 있다. 해양생물은 육상 동물보다 이동 속도가 4배 빠르다. 대서양 대구는 10년간 160㎞를 북상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동부에서는 나무들이 10년에 평균 약 32㎞의 속도로 북쪽과 서쪽으로 서식지를 옮기고 있다. 흰가문비나무는 10년에 약 97㎞의 속도로 북상 중이다. 기다란 털이 몸을 덮고 있는 호박벌은 몸이 너무 뜨거워진 탓에 하늘에서 죽은 채로 떨어지기도 한다. 캐나다 오타와대 생물학자 피터 소로이는 “현재 호박벌은 다른 대량 서식지에 정착하는 속도보다 8배는 빠른 속도로 곳곳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기후 변화로 궁지에 몰린 사람들도 이주 대열에 합류했다. 남동아시아에서는 강우량이 들쑥날쑥해지면서 농사짓기 어려워져 등 떠밀리듯 중동, 유럽, 북아메리카로 이주한 이들만 800만명이 넘는다.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남쪽에 있는 사헬에서는 가뭄으로 농사가 힘들어지면서 수백만명이 연안과 도시로 흘러들고 있다.

‘식량 공황’ 역시 예견된 미래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한여름에 열악한 상태에 처한 텍사스의 옥수수 경작지가 전체의 42%에 달했다. 2022년 극단적인 더위로 프랑스의 옥수수 수확량은 3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 코넬대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세계 농업생산량은 기후 변화가 없었을 경우보다 21%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 평균 기온이 1도씩 오를 때마다 옥수수는 7%, 밀은 6%, 쌀은 3%씩 수확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반면 세계인구는 2050년이면 100억명에 육박할 전망이다. 이들을 먹여 살리려면 농업생산량은 50% 늘어나야 한다. 인도의 거의 2배에 맞먹는 농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에어컨은 기후위기를 부채질한다. 도시 열섬효과를 가속하고, 에어컨으로 인해 밀봉 상자 같은 건축물이 늘어났다. 현재 전 세계에 설치된 1인용 에어컨은 총 10억대가 넘는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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