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베이징 코리아 타운이 흔들리는 이유
중국 베이징의 대표적인 ‘코리아 타운’ 왕징. 이곳의 한인 상권은 수년째 휘청이고 있다. 과거 한국 식당이 줄지어 늘어서 있던 한 길목은 이제 식당 한 곳만 빼고 모두 문을 닫았다. 교민들은 단골 식당의 폐업을 막기 위해 기회가 될 때마다 찾아가고 있지만, 분위기가 반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8만명을 넘어섰던 교민 수가 지금은 10분의 1도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업 기반 자체가 거의 사라진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요인으로는 한중 관계 악화가 꼽힌다. 2016년 사드 사태를 계기로 교민들의 사업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 대표적이다. 베이징에서 건강기능식품 판매업을 하는 한 교민은 “이전까지는 한국 기업이라는 점을 앞세워 영업했는데, 사드 사태 직후 한국 기업 흔적을 지워 겨우 살아남았다”라고 했다. 또 다른 교민은 “잘나가던 사업이 나라 간 관계 때문에 한순간에 무너졌다”라고 했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지금 왕징은 한국인보다 중국인이 더 많이 사는 동네가 됐다.
중국에 등을 돌린 것은 베이징 교민뿐만이 아니다. 한국 전체가 중국에서 멀어졌고, 중국도 한국을 찾지 않기 시작했다. 한중 인적교류 규모는 2014년 처음 1000만명을 돌파했다. 이후에도 좋은 흐름을 이어가면서 2016년 초까지는 한중 인적교류 2000만명 시대에 대한 기대감도 피어났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2017년 한중 인적교류는 803만3000명으로 1년 전보다 38% 급감했다. 코로나19가 끝난 지금도 사드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게 여행·항공업계 이야기다.
양국 간 발길이 끊기면서 경제도 손해를 봤다. 한중 교역 규모는 2015년 2274억달러에서 지난해 2677억달러로 8년간 18% 늘었다. 이전 8년인 2007년부터 2015년까지 57%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성장세가 3분의 1로 쪼그라든 것이다. 미국과의 교역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40%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양국의 수치 대비가 더 크게 느껴진다. 중국은 우리 바로 옆 나라이자 최대 수출 시장이었던 만큼 최소 미국만큼은 늘어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인적교류와 교역까지 위축시킨 최대 요인, 얼어붙은 한중 관계가 이제서야 조금씩 해빙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에서 4년 5개월 만에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가 그 물꼬가 됐다. 이를 계기로 3국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속도가 붙게 됐고, 경제인 간 협력 실무협의체도 만들어졌다. 중국은 사드 사태 이후 지금까지도 ‘한한령’(한류 콘텐츠 제한령)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조만간 해제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부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들은 향후 중국 공연을 위해 소속 연예인들과 중국어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직 낙관하기엔 이르다. 안보 최대 현안인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해 3국 정상 간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했다는 점,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연동될 수밖에 없는데 미국과 중국이 서로 날을 세우고 있다는 점 등이 뇌관으로 남아있다. 양국간 해묵은 갈등을 모두 해소하려면 정상 간 만남이 필수인데,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문할 차례라며 꿈쩍 않고 있고, 중국도 반응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어렵게 다시 찾아온 한중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또다시 흘려보낼 순 없다. 중국에서 스포츠 사업을 하는 한 교민은 “양국 관계는 단순히 정치 싸움이 아닌, 국민들의 생업이 달린 문제”라고 했다. 적어도 경제 분야에서만이라도 양국간 협력이 굳건하게 자리잡는다면 베이징 왕징 한국 식당 거리에도 다시 봄이 찾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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