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강화도 침공으로 벌어진 무력 충돌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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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6월 1일, 조선과 미국 간에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신미년(1871년)에 조선과 서양(미국) 사이에 발생한 전쟁이라는 의미로 '신미양요'라고 부른다.
미국 상선인 제너럴셔먼호가 조선에 나타나 통상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대동강으로 진입해 멋대로 수로를 탐사하며 행패를 부리다가 분노한 평양 군민들에 의해 격침돼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수년이 지난 후 미국은 제너럴셔먼호 사건에 항의하고 통상교섭을 요구하고자 다시 조선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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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71년 6월 1일, 조선과 미국 간에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신미년(1871년)에 조선과 서양(미국) 사이에 발생한 전쟁이라는 의미로 '신미양요'라고 부른다. 한국과 미국이 역사상 유일하게 무력으로 충돌한 사례다.
신미양요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이었다. 미국 상선인 제너럴셔먼호가 조선에 나타나 통상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대동강으로 진입해 멋대로 수로를 탐사하며 행패를 부리다가 분노한 평양 군민들에 의해 격침돼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수년이 지난 후 미국은 제너럴셔먼호 사건에 항의하고 통상교섭을 요구하고자 다시 조선을 찾았다. 미국 해군은 군함 5척에 1200명의 병력으로 강화도에 도착해 측량을 요구했고, 조선이 이를 거부하자 양측은 총격전을 벌였다.
미군은 초지진을 함락하고 광성보를 공격했다. 어재연이 이끄는 1000여 명의 조선 수비대는 목숨을 걸고 미국 군대에 맞서 싸웠으나 강력한 근대식 화기로 무장한 미군에 중과부적으로 패했다. 3일간 계속된 전투에서 조선군은 340여 명이 사망하고 20녀 명이 포로로 잡혔다. 반면에 미군의 피해는 전사자 3명과 부상 10여 명에 그쳤다. 일방적인 학살이나 다름없는 전투였다.
미군은 승리를 선언하고 조선과의 통상 협상을 제안했다. 하지만 조선 정부는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오히려 척화비를 세우며 결사항전을 계속했다. 그러자 조선의 처절한 저항에 질려버린 미군은 더는 조선 정부와 협상을 추진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포로를 석방한 후 철수했다.
미군은 물러났지만, 조선 내부에서는 서양 열강의 힘을 인식하고 통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1882년에 이르러 마침내 조선은 쇄국정책을 포기하고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문호 개방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근대화에 뒤처진 조선은 결국 열강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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