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디·정형돈 옷 샀던 ‘빈티지 명소’ 동묘시장, ‘노점 정비’에 위축 우려
서울시 감사위 “노점 도로 무단점유 정비하라”
노점 없애면 쌓인 헌옷서 ‘득템’ 영업 불가능해져
점포 있는 상인회도 “노점 없애면 볼거리 없어져”
종로구 “동묘시장 노점 완전 정비는 사실상 어렵다”
서울 종로구 동묘 벼룩시장은 11년 전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등장해 유명세를 탔다. 개그맨 정형돈은 ‘무한도전 가요제’ 출연을 앞두고 2013년 9월 가수 지드래곤(본명 권지용)과 함께 동묘시장을 방문해 “잘 고르면 한 장에 2000~3000원이다”라며 의상을 준비하고, 지드래곤의 곡 ‘삐딱하게’도 동묘 분위기로 재해석해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최근 관광 트렌드가 체험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면서 동묘시장은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관광명소가 돼 있다. 불가리아 출신 유명 디자이너인 키코 코스타디노브는 2018년 7월 동묘를 방문한 뒤 인스타그램에 “세계 최고의 거리”라고 호평했다. 어르신들이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고 빈티지 의류를 구입하는 상황에 감명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음 해 동묘 패션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서울시 산하 서울디자인재단은 지난해 11월 일본인 인플루언서가 동묘 관광을 홍보하는 영상도 제작했다. 동묘시장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런데 동묘시장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1일 제기됐다. 발단은 서울시 감사위원회에서 25개 자치구가 건축법·도로법을 위반한 노점과 건축물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점검한 뒤 지난달 24일 공개한 ‘도로무단점유 등 위반 건축물 관리 실태 감사 결과’다.
감사위 지적 사항은 종로구 동묘시장에 집중됐다. 감사위는 서울 지하철 1호선 동묘앞역 3번 출구에서 청계천 영도교에 이르는 길이 303m, 폭 12m의 종로58길에 대해 “(종로구는) 도로 전구간 양측에 걸쳐 (상인들이) 보도와 차도를 점유하고 있지만 단속 등 필요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감사위는 이 도로에서 상점과 노점이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는 보도·차도 면적이 약 1000㎡에 달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보행자 통행공간이 협소해지고, 도시 미관을 저해하며, 도로가 제 기능을 상실하고 화재 등 안전 사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종로구 등에 “도로 무단 점유 등 관련법 위반 사항을 정비할 방안을 강구해 조치하라”고 했다.
문제는 동묘시장에서 도로에 늘어놓고 구제 의류나 디지털카메라나 CD플레이어 같은 옛 전자제품, 헌책 등을 파는 상인들은 종로구가 단속에 나서면 장사를 접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시장에서는 차양이 도로로 나오지 않도록 하거나 매장 앞 도로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지 않으면 되지만, 동묘 앞 구제 의류 상인이나 고물상은 애초에 그럴 점포가 없어서다. 정형돈과 지드래곤이 “느낌 있다”면서 도로에 널려 있는 코트를 집어 들고 3000원에 구매하는 풍경이 앞으로 없어질 수 있는 셈이다. 종로구에 따르면 동묘시장에서 상시 영업을 하고 있는 노점은 150~250곳 정도다.
동묘시장 노점 측은 영업하지 못하도록 단속해야 한다는 서울시 감사위 지적에 반발하고 있다. 양영한 전국노점상총연합회 동묘지역장은 “방문객이 많아서 무질서해 보였는지는 몰라도, (노점상들은) 구청과 소통하면서 무난하게 (영업)해왔다”며 “(노점을 없애려 한다면) 싸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양 지역장은 “(동묘시장 노점을 보러) 외국인 관광객도 들렀다 가는 명소, 예능 프로그램 촬영지가 됐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건물에 입주해 영업을 하고 있는 상인회 측도 노점을 없애는 데에 반대하고 있다. 고재방 동묘시장 상인회장은 “동묘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빈티지 중고 시장”이라며 “(노점을 없애면) 볼거리가 전혀 없어져 (벼룩시장으로서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했다. 이어 “저희도 노점들도 구청과 협의해 (일부 상인들이) 무질서하게 영업을 하면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며 “체계적으로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동묘시장을 관리하는 기관인 종로구 측은 노점을 없애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종로구 관계자는 “동묘시장은 유입 인구가 많고, 관광명소가 되면서 방문하는 분들도 있다”며 “인력도 부족해 완전히 정비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최소한 (보행자) 통행에 지장이 없도록 노점 측과 소통하며 자율 정비하고 계도를 한다”며 “주말에 동묘시장 주변에 들어서는 ‘뜨내기 노점’을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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