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200년]⑥ “티라노 이빨 화석 얼마에요?”…도쿄 한 복판에 공룡 마니아 모였다

신주쿠(도쿄)=이병철 기자 2024. 6. 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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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국제 미네랄 페어, 공룡 화석 거래 활발
“화석 직접 만져보고 구매할 수 있어 흥미”
학계선 화석 거래 우려, 대중 관심 유지할 합의 필요

“여기 있는 화석은 대부분 진짜입니다. 발굴 상태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중국에서 발굴됐고, 일부는 미국에서 왔습니다.”

지난 25일 일본 도쿄 최대 번화가 중 한 곳인 신주쿠역에서 걸어서 약 15분 거리에 있는 스미토모 빌딩 삼각광장. 이날은 광장 전체가 광물과 회석을 판매하는 부스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박물관을 벗어난 공룡 화석들을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들여다봤다.

가장 큰 관심을 받은 화석은 백악기 후기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공룡이었던 티라노사우루스였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었던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빨 화석이 45만엔(円)에 판매되고 있었다. 한국 돈으로는 400만원 정도. 화석이 진짜냐고 묻자 판매자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당연하다”고 답했다.

지난 25일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2024 도쿄 국제 미네랄 페어' 현장에서 판매 중인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빨 화석. 미국에서 발굴돼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도쿄(일본)=이병철 기자

공룡 화석을 자유롭게 사고 판 곳은 ‘2024 도쿄 국제 미네랄 페어’였다. 이날 전 세계에서 모인 업체 250여곳이 공룡 화석과 광물을 직접 팔고 있었다. 주말 늦은 오후 방문한 페어에는 관람객 수백명으로 북적였다.

도쿄 국제 미네랄 페어는 1988년 전 세계 70여 개 업체가 참석해 처음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신주쿠 일대에서 열린다. ‘자연의 매력과 자연과학의 훌륭함을 전한다’는 모토로 박물관이나 대학, 연구기관은 물론 일반인들도 주목하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참가자 규모는 매년 수만명에 달한다.

한국에선 공룡 화석을 사고 파는 게 낯설지만,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는 공룡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페어를 주관하는 도쿄 국제 미네랄 협회 관계자는 “올해 행사에는 약 3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광물과 화석 매니아들이 직접 제품을 구매하고 관심을 유지하면서 관련 산업을 성장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2024 도쿄 국제 미네랄 페어가 열린 스미토모 빌딩 삼각 광장의 모습. 광물, 보석, 화석 판매 업체 250여곳이 부스를 마련하고 수백명에 달하는 참가자들이 방문했다. 협회에 따르면 매년 2~3만명에 달하는 관람객이 페어를 방문하고 있다./신주쿠(도쿄)=이병철 기자

미네랄 페어 부스는 대부분 광물이나 세공 보석을 판매한다. 공룡 화석을 판매하는 부스는 적지만, 미네랄 페어를 참석하는 관람객 중 적지 않은 이들이 공룡 화석 때문에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화석 판매 부스는 쉽게 보기 힘든 공룡 화석을 직접 만져보고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늘 인기가 높았다.

이날 공룡 화석을 판매하던 부스는 총 4곳으로 각각 프랑스, 이탈리아, 인도, 중국 인근에서 수집한 화석을 선보였다. 부스에서 판매 중인 화석은 최초의 절지 동물로 알려진 삼엽충부터 공룡, 새, 포유류까지 다양했다.

티라노사우루스 이빨 화석을 판매하는 중국 업체 부스에서 다른 공룡 화석은 없냐고 묻자 용각류의 발톱과 이빨 화석을 보여줬다. 용각류는 브라키오사우루스, 아파토사우루스처럼 목이 긴 대형 초식 공룡이다. 업체 직원은 “자세한 종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용각류의 발톱과 이빨 화석은 확실하다”며 “이 정도 크기와 품질의 화석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2024 도쿄 국제 미네랄 페어에 참석한 이탈리아의 화석 판매 업체 부스. 갑옷 공룡의 뼈 화석을 비롯해 공룡의 척추, 골반 화석을 출품했다. 대부분 발굴 상태 그대로의 진짜 화석이며 일부는 뼈를 복원한 상태다./도쿄(일본)=이병철 기자

이탈리아 업체는 다른 부스보다 훨씬 큰 공룡 뼈 화석을 출품했다. 갑옷 공룡의 골반과 척추 일부로 추정되는 뼈 화석은 길이가 50㎝에 달했다. 판매상은 “대부분 화석은 100% 진짜이며, 일부는 뼈를 복원해 99% 진짜인 제품”이라며 “레플리카(복제품)는 판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판매되는 화석은 모두 합법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제품이다.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화석을 자연 유산으로 관리하고 있으나,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국가도 여럿 있다. 판매상들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던 화석을 구매해 페어에 출품해 판매했다.

협회 관계자는 “가짜 화석이나 불법으로 채집된 화석이 거래되지 않도록 검증된 업체만 행사에 참가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며 “행사의 목적은 자연 유산을 합법적으로 거래하면서 대중들이 자연을 즐기고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24 도쿄 국제 미네랄 페어에서 마련된 화석 판매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날 메갈로돈 이빨 화석을 구매한 일본인 하루토 마오 씨는 "평소 갖고 싶던 화석을 직접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신주쿠(도쿄)=이병철 기자

이날 값이 비싸지 않은 화석을 구매하는 관람객은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자신을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소개한 일본인 하루토 마오씨는 이날 메갈로돈 이빨 화석을 구매했다. 메갈로돈은 신생대 바다에 살던 대형 상어로 전 세계에서 이빨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하루토씨는 “평소 화석에 관심이 많았는데, 실제 화석을 구매해 소장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며 “작년에도 참석했고, 올해도 페어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다만 학계는 도쿄 국제 미네랄 페어처럼 화석을 사고파는 행위를 우려한다. 지난 2018년 프랑스 경매업체인 아귀트가 1억5000만년 된 육식공룡 화석을 경매하자 미국 척추고생물학회가 경매 중단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당시 데이비드 폴리 학회장은 “개인의 손에 판매된 화석은 과학에서는 사라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회는 개인이 소장한 화석은 연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공룡 화석이 신종으로 확인되기까지 수십년에서 수세기가 걸리기도 하는데 개인 소장품을 그렇게 오랫동안 자유롭게 연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개인 소장 화석은 과학 논문에도 오르지 못한다. 다른 과학자가 논문 내용을 검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도쿄 국제 미네랄 페어에 출품된 해양 생물과 파충류의 화석. 일반인도 손쉽게 화석을 구매할 수 있다./신주쿠(도쿄)=이병철 기자

학계 우려에도 불구하고 당시 프랑스 경매는 예정대로 진행됐고 공룡 화석은 200만유로(29억원)를 부른 프랑스인에게 낙찰됐다.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인 리아나도 디캐프리오도 공룡 화석 매니아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수십억원에 달하는 공룡 화석을 다른 경매에서 낙찰 받자 학계에서는 과도한 화석 거래를 멈춰 달라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반면 연구용으로 적합하지 않거나 발굴이 많이 되는 일부 화석에 대해서는 일반 판매를 통해 공룡 연구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도쿄 국제 미네랄 페어처럼 관광 산업으로 발전 시킬 수도 있는 만큼 합법적인 거래에 대한 학계와 산업계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도쿄 국제 미네랄 협회 관계자는 “우리 행사를 통해 광물, 화석 관련 산업이 대중에게 소개되고 경제적 효과는 연간 수십억엔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며 “결국 연구도 대중들의 지지와 관심이 필요한 만큼 합리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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