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도 재산 분할 대상인가… 대법서 다시 다툴 수도
‘재산 분할 1조3808억원, 위자료 20억원’을 결정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2심 판결을 놓고 법조계가 술렁이고 있다. 재판부가 노 관장의 아버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후원 등을 ‘유·무형의 기여’로 인정한 부분을 두고 “선례 없는 판결”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비자금과 대통령의 후원 등 불법 요소를 재산 분할에 반영하는 게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Q1. 비자금 등 불법 바탕의 재산도 분할 대상?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SK 측에 유입됐다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다. 불법 자금이라면 재산 분할 대상에 넣어서는 안 되고, 환수 조치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재판부는 “1991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자금 300억원이 최종현 회장에게 간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근거로는 김석원 쌍용 회장과 정부 간 비자금 반환 소송을 들었다. 노 전 대통령이 비슷한 시기에 김 회장에게 비자금 200억원을 맡겨놓은 사실이 수사에서 드러났고, 정부는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김 회장은 불법 자금이어서 돌려줄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비자금 은닉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한 고법 부장 출신 변호사는 “가사 사건이어서 형사적 불법 여부보다 재산 형성 기여 부분만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후 비자금의 불법성, 환수 여부 등은 별도로 다뤄져야 하는데, 이미 당사자들이 고인이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고 했다.
Q2. 盧 300억원과 후원, SK 성장에 얼마나 기여했나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이 최종현 회장에게 준 300억원의 사용처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 태평양증권·한국이동통신 인수 등을 두고 노 관장 측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들어갔다고 한 반면 최 회장 측은 최종현 선대 회장이 계열사 자금을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비자금이 유입된 부분만 인정하고 사용처를 특정하지는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무형적 기여’도 인정했다. 태평양증권 인수와 한국이동통신 진출 등 SK가 사업을 확장할 때 대통령과 사돈 관계라는 것이 보호막·방패막 역할을 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태평양증권 인수 자금의 출처에 대해 국회 등에서 돈세탁 의혹 등이 제기됐지만 금융 당국이나 수사기관 조사를 피했고, 이런 상황에서 이동통신 사업에까지 뛰어든 것은 대통령인 사돈을 보호막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선택”이라고 했다.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정치적인 ‘후광’을 재산 분할 기여도에 반영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며 “대법원이 이 부분을 다시 살펴볼 것 같다”고 했다.
Q3. 분할 비율 35%는 적절한가
재판부는 “혼인 중 대부분의 재산이 형성됐고, 혼인 기간이 30년이 넘었으며 유·무형의 기여를 했다”며 노 관장의 기여도를 35%로 정했다. SK 주식 외에도 자녀 양육과 가사, 아트센터 나비를 운영한 점 등도 포함시킨 것이다.
하지만 분할 대상 재산이 4조원이 넘으면서 액수가 천문학적으로 커지자 법조계에선 “정확한 산출 근거가 있느냐”는 말이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일반적인 이혼소송이라면 전업주부라도 50% 기여도를 인정받지만, 재벌가 소송에서는 드문 비율”이라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재산 형성에 기여했는지 여부는 엄격히 따지지만, 기여 비율만큼은 전적으로 재판부의 재량”이라고 했다.
Q4. 동거인에게 쓴 219억원도 분할?
재산 분할은 부부 명의의 재산을 모두 더한 뒤, 빚을 빼고 기여도에 따라 나누게 된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동거인 김희영씨에게 쓴 돈이 219억원 이상”이라며 이 부분도 최 회장 재산에 포함시켰다. 김씨와의 생활비, 혼외자의 학비, 김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티앤씨재단 출연금 등이다. 부부의 공동재산을 부정한 관계에 있는 상대방에게 썼기 때문에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미성년자인 혼외자에 대해선 최 회장도 양육비 부담 의무가 있기 때문에 ‘219억원’ 부분은 다시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Q5. 분할 액수, 대법원에서 바뀔까
최 회장 측은 “재판 과정과 결론이 편파적으로 이뤄졌다”며 상고하겠다고 했다. 이 사건의 최종 결론은 대법원에서 가려진다. 대법원은 주로 법리 적용의 잘잘못만 따지기 때문에 보통 판결 내용이 크게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2심이 SK 주식을 포함해 4조원이 넘는 재산을 분할 대상으로 한 데다 ‘정경 유착’을 재산 형성의 기여로 인정해 결론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법조인은 “이혼 당시 부부의 재산이 분할 대상이 되는 것은 맞지만, 회사를 경영하는 경우 결혼 초와 비교해 불어난 주식 가치를 모두 재산 분할 대상으로 삼는 게 맞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부동산·예금 등과 달리 부부의 노력만으로 회사의 가치가 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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