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먹는 게' 중요한 일본…그래도 '빛 좋은 개살구'는 싫은 한국 [같은 일본, 다른 일본]

2024. 6. 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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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본, 다른 일본] <114> 
한국과 같은 듯 다른, 일본의 미의식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한국의 미의식은 자연스러운 본질을 중시하는 반면, 일본의 미의식은 인위적인 노력과 정성을 높이 평가한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고 평가할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움’을 인지하는 방식에서 한일 간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러스트 김일영

◇ 일상 속 소소한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문화

일본 여행을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일본에는 예쁜 물건이 너무 많다”는 말을 들었다. 요즘은 한국에도 깔끔한 카페나 식당, 화려한 관광 명소가 무척 많아졌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세련된 인테리어나 소품 구경을 위해 일본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나는 일본의 남다른 미의식을 높이 평가하는 한 명이다. 다만, 상업적인 디자인의 수준이 높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요즘은 누구나 즉석에서 사진 작가로 변신할 수 있는 스마트폰 시대가 아닌가? 도쿄나 오사카 등 일본의 대도시나 관광지에서 ‘포토제닉’을 노린 매력적인 장소나 훌륭한 디자인의 물건을 쉽게 마주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내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일본 사회의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의외의 미적 요소다. 관광객이 없는 한적한 시골에서 멋지게 관리된 정원이나 아름다운 숲길을 만난다거나, 작고 허름한 가게에 있는 오래된 앤티크 가구가 반들반들 잘 관리되어 있어서 최신 인테리어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멋스러움을 풍긴다든가, 친구 집의 현관에 희귀한 피규어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특설’ 취미 코너가 있다든가,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작고 소소한 미학을 실천하는 모습 등이다. 거창하고 화려한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개인이 나름의 미적 취향을 키우고,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가꾸고 즐기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개인이 시각적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삶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고 추구하는 경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일본에는 유난히 가정 원예나 분재 등 미적 감각을 요구하는 취미가 널리 퍼져 있다. 전문 업자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생활 공간을 가꾸고 관리하는 것을 뜻하는 ‘DIY(‘스스로 하라’는 뜻의 영어 문장 ‘Do It Yourself’의 준말)’ 트렌드도 반세기 전에 이미 자리 잡았다. 일본의 상업 디자인이나 인테리어의 수준이 높은 것도, 일상생활 속에서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고집스러운 미의식과 무관치 않으리라 생각한다.

◇ ‘눈으로 먹는’ 일본 음식, ‘와비사비’의 미의식을 추구하는 다도(茶道) 문화

일본 문화의 일상 속에 깃든 미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미식 문화다. 일본 음식은 맛에 못지않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해서 심지어 ‘눈으로 먹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일본 요리나 일본식 상차림에서 ‘프레젠테이션’은 맛에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식재료나 메뉴를 정할 때에 색의 조화를 꼼꼼하게 따진다. 싱싱한 계절감을 살리는 플레이팅이 중요하기 때문에, 봄에는 벚꽃 장식을 가을에는 단풍을 연상시키는 재료를 곁들이기도 한다. 일식의 대표 격인 ‘사시미(일본식 회)’는 가히 예술적이라는 찬사가 나온다. 색과 모양이 각양각색인 여러 종류 생선과 해산물을 한두 점씩 보기 좋게 배열하고, 알록달록한 곁들임으로 식욕을 돋운다. 한두 종류의 생선을 푸짐하고 먹음직스럽게 내놓는 한국의 소박한 회 상차림과는 사뭇 모양새가 다른 것이다. 일식 상차림에서는 식기도 중요하다. 계절감이 뚜렷하거나 음식을 돋보이게 해 주는 그릇을 까다롭게 선택한다. 고급 일식집에서는 도예가와 별도 계약을 맺어 음식에 걸맞은 수준의 식기를 제공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미각과 시각을 넘어 오감의 만족을 추구하는 식문화의 이상형을 일본의 다도(茶道)에서 찾을 수 있다. 어떻게 보자면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할 뿐인 평범한 사교 행위인데, 일본에서는 전통적인 미의식을 상징하는 ‘의식(儀式)’으로 승화되었다. ‘다실(茶室)’이라고 부르는 차분한 공간에서, 정갈한 ‘다기(茶器)’를 예법에 맞게 다루어 차를 만들고, 절차에 맞게 차를 대접한다. 차의 맛(미각)에 못지않게 다실의 온도와 분위기(촉각), 차의 향기(후각), 다기를 다룰 때에 나는 달그락 소리(청각), 그리고 이 모든 행위를 한 폭의 그림처럼 절제되고 아름답게 연출하는 방식(시각)이 모두 중요한데, 말 그대로 미각,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등 오감이 모두 어우러진 조화로운 상태를 궁극적인 아름다움으로 보는 것이다.

다도는 일본 문화의 미의식을 궁극적으로 실천하는 형태다. 예를 들어, 일본의 전통적 미학의 정수라고 하는 ‘와비사비(侘び寂び)’라는 개념이 있다. 불완전함, 부족함, 고즈넉함을 뜻하는 ‘와비(侘び)’와, 한적함,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움을 뜻하는 ‘사비(寂び)’가 합친 개념이다. 절제와 공백을 중시하는 다도에는 와비사비의 미학이 스며있다고 한다. 다도의 미의식과 관련해서 언급되는 ‘이치고이치에(一期一会)’라는 사자성어도 있다. ‘일생에 오로지 단 한 번뿐인 순간’이라는 뜻으로 차를 함께 마시는 시간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금방 스러져버리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단어다. 꽉꽉 채우기보다는 비워 놓는 것, 직접적인 자기 주장보다는 비유적이고 은근한 표현을 더 ‘아름답다’고 평가한다. 절제할수록 아름답고, 감출수록 예쁘다는, 독특한 미적 감각이다. 일상 속에 슬며시 아름다움을 감추어 놓는 방식과 무관치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고집스럽게 시각적 만족을 추구하는 미의식은 현대까지 꾸준히 계승된 일본 문화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 한일 미의식의 뚜렷한 차이

사실 한국의 전통적인 미의식도 자연과의 조화와 소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상 속의 미적 요소를 중요시하는 일본의 미의식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예를 들어,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우리말 속담처럼 한식에서도 정갈하게 음식을 내는 미적 감각을 중시한다. 일식만큼 깐깐하고 치밀하지 않을지 몰라도, 한식에서도 음식의 시각적 아름다움이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국에는 ‘빛 좋은 개살구’, ‘속 빈 강정’이라는 속담도 있다. 겉보기에 먹음직스러워도 실제로는 맛이 없는 먹을거리를 뜻하는 이 표현은, 역시 한국의 식문화에서는 맛이 미적 요소를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기준임을 보여준다. 반면, 일본의 식문화에서는 시각적 즐거움이 미각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통 디저트인 ‘와가시(和菓子)’처럼 외관은 형형색색 화려하지만 정작 맛은 단조롭고 싱거운 먹을거리도 있다. 이처럼 한일 간 미적 가치관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한국의 미의식은 자연스러운 본질을 중시하는 반면, 일본의 미의식은 인위적인 노력과 정성을 높이 평가한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고 평가할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움’을 인지하는 방식에서 한일 간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십여 년 전에 한국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일본인 지인으로부터 한국의 시장에서 ‘못생긴’ 채소가 상품으로 나와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의 슈퍼마켓에서는 아주 깔끔하게 손질된 ‘잘생긴’ 채소와 과일만 진열대에 올려진다. 그래서 한국의 시장에서는 흙이 묻은 채소나 흠 있는 과일이 버젓이 진열된 풍경이 낯설었던 모양이다. 사실 내 눈에는 흙이 좀 묻거나 벌레가 먹은 채소와 과일이 더 싱싱해 보인다. 땅에서 자연스럽게 자랐고 농약을 덜 사용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사물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못생기게’ 보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싱싱하게’ 보인다. 대상을 인지하는 방식의 문화적 차이로 인해 뜻하지 않은 오해가 빚어지기도 한다. 결국 아름다움이란 실로 주관적인 감각이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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