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급사로 요동…‘칼’과 ‘돈’ 모두 쥔 막후실력자 급부상[글로벌 포커스]
혁명수비대-국영기업 운영에 깊이 관여… 인맥부터 자금까지 모두 쥔 막후 실력자
28일 대통령 보선도 영향력 행사할 듯… 정계 전면에 나설 가능성 크지 않아
“세습은 신정일치 체제 종말” 비판 크고… 경제난-시위대 강경진압으로 민심 흉흉
신정일치 국가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85)의 차남 모즈타바(55)를 두고 미국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내린 평가다. 영국 가디언 또한 그를 하메네이의 ‘문지기(gatekeeper)’라고 평했다. 어떤 공식 직책도 없지만 1989년부터 장기집권 중인 부친의 후광을 업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하메네이의 후계자로 유력하게 꼽혔던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갑작스레 숨지자 이란의 차기 권력 구도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6월 28일 대통령 보궐선거가 실시되지만 누가 대통령에 뽑히더라도 진짜 권력은 하메네이 부자(父子)가 여전히 쥘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라이시 대통령의 사후에 서구 유명 언론이 앞다퉈 모즈타바가 누구인지를 조명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이런 그가 공식 직책을 맡아 정계 전면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약 2500년간 유지됐던 페르시아 군주제를 무너뜨리고 공화제를 택했다. 권력 세습은 이 같은 혁명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어서 국민 반감이 상당하다. 이를 감안할 때 모즈타바가 현재와 마찬가지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가 계속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 부친 탄압한 팔레비 왕조에 반감
팔레비 왕조는 이런 하메네이를 눈엣가시로 여겨 강하게 탄압했다. 수차례 구금됐고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비밀 경찰 등에게 구타도 당했다. 특히 가디언에 따르면 하메네이의 장남이자 모즈타바보다 네 살 많은 모스타파(59)는 폭행당하는 부친의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 하메네이의 자녀들 또한 팔레비 왕조에 강한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1979년 혁명으로 군주제는 무너졌다. 혁명을 주도한 루홀라 호메이니가 최고지도자로 등극하면서 그를 도와 혁명에 적극 가담했던 하메네이의 운명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하메네이는 국방차관, 대통령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부인과 자녀들도 마슈하드에서 수도 테헤란으로 이주시켰다.
모즈타바는 이때 테헤란의 정치 엘리트 양성기관 ‘알라비’ 등에서 교육받았다. 또 이란-이라크 전쟁 막바지였던 1987∼1988년에는 최전선에서 복무했다. 당시 전우(戰友)가 호세인 타에브 전 혁명수비대 정보수장이다. 2022년 퇴역한 타에브는 퇴역 전까지 바시즈 간부로 활동하며 하메네이 부자를 충실히 보좌했다.
● ‘칼’과 ‘돈’ 모두 쥔 막후 실력자
모즈타바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모즈타바는 2005년, 2009년 대선에서 강경파 후보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이 승리하도록 막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은 미국을 ‘큰 사탄’, 이스라엘을 ‘작은 사탄’이라고 부를 정도로 서구에 대한 반감이 심한 인물이다.
특히 2009년 대선 때는 부정선거 논란으로 반정부 시위가 거셌다. 당시 혁명수비대는 유혈 진압을 통해 시위를 종결시켰는데, 여기에 모즈타바와 바시즈 민병대가 관여했다는 것이다.
이란은 혁명 후 헌법을 통해 정규군과 혁명수비대의 역할을 각각 국내 질서 유지 및 국경 방어, 이슬람 체제 수호로 구분했다. 신정일치 국가에서 체제 수호 임무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혁명수비대를 정규군보다 우위에 놓은 것이다. 혁명수비대를 ‘정부 위의 정부’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혁명수비대는 육해공군, 특수전 및 해외작전을 담당하는 정예부대 ‘쿠드스’, ‘바시즈’ 민병대 등 5개 조직으로 나뉜다. 바시즈는 2009년 반정부 시위는 물론이고 2022년 9월 히잡 의문사로 발발한 반정부 시위 등을 탄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영국 기반 매체 ‘이란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3월 유출된 혁명수비대 문건을 토대로 “모즈타바가 사실상 바시즈 지도자”라며 “그가 혁명수비대 산하 정보기관에도 광범위한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모즈타바는 세타드 운영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세타드는 혁명 당시 각종 부동산, 금융 자산 등의 소유주가 불분명해지자 이를 국가가 관리하기 위해 만든 기업이다. 호메이니는 생전 “세타드의 수익 대부분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하메네이 집권 후 하메네이 일가, 혁명수비대 간부 등 소수 권력층의 ‘개인 금고’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많다.
서방의 계속된 제재에도 이란의 핵 개발 의혹이 끊이지 않고, 혁명수비대가 해외 시아파 무장조직을 계속 지원할 수 있는 재정적 바탕 또한 세타드에서 나온다는 평이 많다. 이로 인해 미 재무부는 2013년 세타드를 제재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현재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모하마드 모크베르 전 1부통령은 2007∼2021년 세타드 수장을 지냈다. 그를 수장에 앉힌 사람이 바로 모즈타바라고 WSJ는 보도했다.
● 4000여 명의 최고지도자실도 장악
모즈타바는 최고지도자실도 속속 장악하고 있다. 미 워싱턴의 싱크탱크 ‘근동정책연구소’에 따르면 1989년 호메이니의 사망 당시 최고지도자실 직원은 80여 명에 불과했다. 하메네이의 장기 집권이 이어지면서 2019년에만 직원 수가 50배 많은 4000여 명으로 늘었다. 이 또한 모즈타바가 주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모즈타바는 최고지도자실 내 정보 수집 및 언론 담당 조직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내 각종 정보를 수집할 뿐만 아니라 관영언론, 정부 주최로 이뤄지는 금요 기도회 ‘이맘’ 등을 관장한다고 근동정책연구소는 분석했다.
미국 언론인 겸 이슬람학자 윌프리드 부흐타는 “모즈타바는 두 조직에 심복을 속속 배치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고 분석했다. 이란의 공식적인 2인자이며 다른 대통령에 비해 영향력이 컸다는 평가를 받는 라이시 대통령조차 모즈타바가 가진 군, 정보, 종교, 경제 조직을 아우르는 네트워크를 보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의회 권력과도 밀접하다. 2004년 결혼한 모즈타바의 장인은 골람 알리 하다드 아델 전 국회의장이다.
최고위 성직자에게 주어지는 ‘아야톨라’ 칭호는 뛰어난 학식을 인정 받은 이들만 쓸 수 있다. 그런데도 최고지도자실 내에서 모즈타바를 지지하는 일부 세력은 아야톨라 직위에 이르지 못한 모즈타바를 공공연하게 ‘아야톨라’라고 부른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 세습에 대한 국민 반감 상당
모즈타바의 실제 영향력과 별개로 세습에 대한 이란 국민들의 반감은 상당하다. 이를 감안할 때 모즈타바가 당장 정계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호메이니와 하메네이는 모두 세습 시도에서 자유롭지 않다. 호메이니의 아들 아마드(1946∼1995)는 혁명 당시 부친 못지않게 앞장섰다. ‘아들’이 아닌 ‘정치적 동료’에 가까웠고 부친의 사후 유력 후계자로도 거론됐다. 이로 인해 아마드는 하메네이와도 일정 정도의 긴장 관계를 형성했다. 이런 아마드가 49세에 심장마비로 급사하면서 하메네이 일가를 견제할 세력은 사실상 사라졌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아마드는 혁명에 직접 가담해 팔레비 왕조를 몰아낸 공로가 있지만 모즈타바는 전 국민이 인정할 만한 공로가 없다”며 “호메이니도 하지 못한 권력 세습을 하메네이가 하기에는 부담이 크다”고 진단했다.
중동 전문매체 ‘암와즈’는 최고지도자직의 세습은 “신정일치 체제의 죽음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CNN 역시 모즈타바가 부친의 자리를 이어받는다면 세습 왕정을 타파했던 현 체제가 근간부터 흔들린다고 지적했다.
모즈타바의 독주를 경계하는 내부 여론도 커지고 있다. 아랍권 매체 알아라비야에 따르면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은 “모즈타바가 해외 은행 계좌를 통해 국고를 횡령했다”고 공개 비판했다. 그는 한때 모즈타바와 가까웠지만 이후 권력 투쟁 과정에서 결별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7년 9.6%였던 연간 물가상승률은 매년 치솟아 2023년 41.5%를 기록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4662달러(약 646만 원)에 불과하다. 세계 4위 원유 매장량을 포함한 풍부한 지하자원, 넓은 국토, 약 9000만 명의 인구 등을 보유했지만 이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후 ‘하마스 지원자’를 자처하는 이란은 사실상 준전시 상태다. 올 4월에는 이스라엘과 직접 공격까지 주고받았다. 이란은 하마스 외에도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예멘 등의 시아파 무장세력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들 사이에서는 “다른 나라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국민을 먼저 보살펴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2022년 히잡 의문사가 촉발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민심의 반발도 극심하다. 올 3월 총선 투표율은 역대 최저치인 41%를 기록했다. 28일 대통령 보궐선거 또한 라이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강경 보수 성향의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 ‘짜고 치는 선거’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이 총선 때와 마찬가지로 대선 보궐선거를 대거 보이콧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란은 헌법수호위원회의 후보 적격성 심사를 통과한 사람만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이슬람 교리에 맞지 않는 인물을 사전에 가려낸다는 명목이지만 사실상 하메네이 입맛에 맞는 후보들만 출마시킨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번 대선에 출마할 후보군으로 알리레자 자카니 테헤란 시장, 모크베르 대통령 권한대행, 모하마드 바케르 갈리바프 국회의장, 강경파 핵협상 전문가 사이드 잘릴리,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 등이 꼽힌다. 누가 됐든 하메네이 부자의 낙점을 받은 사람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WSJ는 모즈타바가 이번 대선에서 꼭두각시 후보를 내세워 ‘막후 실력자’ 노릇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 권력 누가 쥐든 강경 대외정책 그대로
모즈타바의 세습 여부, 대통령 보궐선거의 승자 등에 관계없이 이란의 대외정책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장지향 센터장은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온건 개혁파의 씨가 마른 상황이라 권력 구도에 변화가 생겨도 대외정책이 달라질 수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라이시 대통령과 같은 헬기에 탑승해 동반 사망한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교장관의 후임으로도 강경파 외교관 알리 바게리 카니가 발탁됐다.
이란이 끊임없이 고농축 우라늄 비축량을 늘려가며 핵 강경 노선을 고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달 27일 로이터통신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를 인용해 “4월 11일 기준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비축량이 142.1kg”이라며 “올 2월보다 20.6kg 늘었다”고 진단했다. 우라늄 농축 농도 60% 이상을 뜻하는 고농축 우라늄은 추가 농축 과정을 거치면 2주 안에 핵폭탄 제조용으로 쓸 수 있다. IAEA는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던 이란이 실제 핵 개발에 매진했다”고 우려했다.
북한, 러시아 등에 대한 이란의 군사적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무인기(드론) 공급을 주도한 모하마드 레자 가라에시 아시타니 이란 국방장관을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北, 오물풍선 어제부터 600개 살포…대통령실 “NCS회의 소집”
- 박찬대 “18개 상임위 다 가져올 수 있다…법 따라 원구성”
- 輿, 연일 김정숙 여사 때리기…“특별수행원의 식도락 여행”
- 베트남서 한국인 여성 사망…동숙한 韓남성 체포
- ‘강남 모녀 살해’ 60대 구속 심사 출석…고개 숙이고 횡설수설
- 부동산 전문가 조영광 “인구 감소로 집값 떨어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 [영상]
- 정기적으로 매일 챙겨 먹는 약이 4가지 이상이다.
- 70대가 된 ‘F학점의 천재’… “노노(老老)케어 하느라 바빠요”[서영아의 100세 카페]
- 하니, ‘10살 연상’ 의사 양재웅과 결혼 발표 “행복하게 살겠다”
- [단독]美, 전략핵잠수함(SSBN) 괌 입항 이례적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