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우크라 방어용으로 준 무기, 러시아 본토 타격 승인”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024. 6. 1.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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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언론 “국경 하르키우 전선 적용”
31일 러시아군 공습이 발생한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주택가에서 구조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하르키우 당국은 이날 러시아군 공습으로 최소 5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EPA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산 무기를 이용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을 일부 허용하기로 했다고 30일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일단 러시아군에 크게 밀리고 있는 하르키우 방면 북동부 전선에 한정됐지만, 상황에 따라 더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결정으로 서방 무기의 러시아 영토 타격 제한을 풀자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내 합의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외무장관 회의 이후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의 요청에 따라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무기를 사용한 러시아 내부 공격을 승인했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복수의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 인근 러시아 영토에 한해 미국 무기로 공격할 권한을 부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우크라 주택가에 또 날아든 러 미사일… 언제까지 맞고만 있어야 하나 - 31일 러시아군 공습이 발생한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의 한 다세대 주택. 건물 윗부분이 크게 파손됐고(왼쪽), 놀란 주민들은 피신했다(오른쪽). 하르키우 당국은 이날 20여 채의 건물이 파손됐고 최소 4명이 숨졌다고 했다. 최근 러시아 접경지 하르키우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세가 거세지자, 미(美) 정부는 하르키우 방어 목적에 한해 러시아를 미국산 무기로 공격할 권한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AP 연합뉴스

미국 정부 관계자는 다만 “미국산 장거리 무기를 이용한 러시아 영토 공격 불허(不許) 정책이 변한 것은 아니다”라며 “우크라이나가 인근 국경 너머에서 오는 공격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허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일도 이날 미국과 동일한 결정을 발표했다. 독일 정부는 “우크라이나는 국제법에 따라 (국경 너머로부터의 공격에서) 방어할 권리가 있다”며 “우리가 공급한 무기를 국제법에 따라 사용하는 방안을 우크라이나와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결정은 우크라이나 북동부 전선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제2 도시인 하르키우는 러시아 국경에서 불과 30㎞ 떨어져 있다. 러시아군은 이런 여건을 이용해 국경 너머 자국 영토에 주력 부대를 두고 하르키우 방면을 공격, 야금야금 점령해가는 전술을 구사 중이다. 이렇게 하면 자국 병력이 서방 무기로 무장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피하기 용이해진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이 보유한 장거리 곡사포와 미사일·로켓 등은 대부분 미국 등 서방이 지원한 것으로, 국경 너머 러시아 영토 타격이 금지되어 있다.

단적으로 러시아군 포병이 국경 너머에서 매일 수백 발의 포격을 날리는데도 우크라이나군은 이를 바라만 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참다못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측은 최근 “(서방 무기의) 러시아 영토 타격 제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해 왔다. 폴리티코는 “지난 29일 열린 미국과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회담에서 루스템 우메로우 우크라이나 장관이 ‘러시아 영토에 미국 무기를 쓸 수 있게 해달라’고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전했다.

미국은 일단 하르키우방면을공습하는 러시아 미사일과 폭격기, 또 국경 근처에 집결한 포·보병 등에만 공격을 허가했다고 알려졌다. 러시아의 민간 시설이나 일부 민감한 군사 목표물은 공격할 수 없다. 러시아를 불필요하게 자극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가 자국산 무인기로 러시아의 장거리 조기 경보 레이더 ‘보로네시-DM’을 공격하자 미국은 ‘경고성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이 레이더는 러시아의 핵 공격 조기 경보 시스템의 일부로, ‘전략 핵시설’로 간주된다.

미국의 결정은 유럽의 나토 동맹국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유럽 국가들은 이미 이 사안을 놓고 격론을 벌이고 있다. 나토는 지난 30일 체코 프라하에서 비공식 외무장관 회의를 열어 우크라이나 지원 무기의 사용 제한 해제 문제를 논의했다. 최근 앞장서 이 문제를 제기해 온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현재 전황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무기 사용 제한을 일부 재고할 때가 왔다고 본다”고 재차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폴란드 등 10여 나토 회원국이 이미 (제한 해제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와 헝가리 등 일부 국가는 여전히 반대 입장으로 알려졌다. 특히 헝가리의 시야르토 페테르 외무장관은 “러시아의 반격(확전) 가능성을 생각하면 미친 아이디어”라며 “(나토 내) 호전적 정서가 정점을 향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도 “본토 공격보다 방공망을 강화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격렬하게 반발하며 위협 발언을 쏟아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서방 무기의 러시아 영토 타격이 허용되면 ‘심각한 후과(後果)’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데 이어, 러시아 두마(하원)의 안드레이 카르파톨로프 국방위원장은 31일 “미국산 무기의 러시아 본토 공격에 ‘비대칭 보복’을 하겠다”고도 위협했다. ‘비대칭 보복’은 공격받은 이상으로 반격하겠다는 의미다.

‘핵무기 사용’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도 나왔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이날 “서방과 러시아의 군사 갈등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갈등이 ‘마지막 단계’로 이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와 나토는 ‘파괴적인 힘’의 대응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한발 더 나가 “우리는 미국 무기가 이미 러시아 공격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도 ”나토는 서방 무기의 러시아 영토 타격을 허용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거짓말하며 연막을 쳐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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