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개는 안 물어요, 내가 물어요
[김신회의 매사 심각할 필요는 없지]
산책하는 개를 만났을 때 건네기 적절한 말은?
다음 중, 길에서 산책하는 개를 만났을 때 건네기 적절한 말을 고르시오.
1. 물어요?
2. 거 참 무섭게 생겼다.
3. 귀엽긴. 제 주인 눈에만 귀엽지.
4. 얼마 주고 샀어요?
정답은? 없다. 행여나 궁금하실 분들에게 개에게 건넬 만한 말을 알려주자면, 없다. 모르는 개 앞에서는 아무 말 않고 지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격하게 건네는 인사나 무섭다며 지르는 비명, 관심으로 포장된 참견은 평온한 산책을 방해할 뿐이다. 개 보호자로서, 개를 봐도 못 본 척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장 고맙다. 나 역시 길에서 아무리 귀여운 개를 만나도 속으로만 중얼거린다. ‘귀엽다! 너무 귀엽다!’
참고로, 보기에 나온 말은 내가 지난 일주일 동안 개와 산책하면서 들은 것들이다. 산책 중에 난감한 말들이 날아올 때마다 생각한다. 저 말이 과연 개에게 하는 말일까? 정작 저 말을 사람이 듣는다는 걸 모를까. 무례하게 던져지는 말들에 처음에는 화도 내고, 반격도 해봤지만 어느새 아무 반응하지 않게 됐다. 그게 서로에게 가장 깔끔한 마무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올해로 추정 다섯 살이 된 우리 개 풋콩이는 울산 공항에서 왔다. 슬개골이 탈구된, 한 살도 안 된 강아지를 누군가가 공항에 내다버린 것이다. 이후 시보호소에 머물며 안락사를 기다리던 개는 한 동물구조단체에 의해 구조되어 임시 보호 가정에 머물게 되었고, 얼마 뒤 우리 집으로 왔다. 그동안 개를 키워본 적도 없고 개에 대한 지식도 전무했지만 소셜미디어 속 개 사진만 보고 나는 마음을 정했다. ‘너, 나랑 살자.’ 입양신청서를 쓰고, 부랴부랴 개용품 및 사료를 마련해 그 개를 평생 가족으로 맞았다. 벌써 4년 전 일이다.
혼자서 개를 키우는 일은 힘들 거라 예상했지만, 혼자 개와 산책하러 나가면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될지는 알지 못했다. 추운 날, 옷을 입혀 나가면 개가 무슨 상전이냐고 했다. 더운 날 체온을 낮춰주는 티셔츠를 입히면, 더운데 무슨 옷을 입혔냐고 했다. 냄새를 맡으며 조용히 산책을 이어가는 개를 향해 저리 가라며 발길질하는 사람도 있었고, 입마개 견종도 아닌, 6kg 남짓의 개에게 왜 입마개 없이 밖에 나오냐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엔 심장이 벌벌 떨리고 한동안은 주먹을 불끈 쥐고 문밖에 나섰지만, 점점 이 모든 감정싸움이 나와 개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원치 않은 말들을 그저 새 지저귀는 소리, 바람 소리쯤으로 여기기로 했다. 다 산책용 배경음악이라고. 세상의 배경음악이 다 내 마음에 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 어느새 전투 같은 산책을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변화와 관계없이, 여전히 개와 산책하다 보면 많은 말이 귓속을 파고든다. 무엇보다 이 글에 달릴 댓글들이 절로 연상된다. 한 번 맞혀볼까요? 애나 키울 것이지, 개를 키우고 앉았네. 여자 혼자 개 키우고 시집은 다 갔네, 지금이라도 결혼해서 애 낳으세요, 그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이 모든 댓글 역시 산책 때 흐르는 배경음악으로 여길 예정이다.
대한민국의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약 1500만 명에 이른다. 전국 지자체에 등록된 반려견 개체 수만 해도 30만 마리쯤 된다. 그럼에도 반려인들은 개와 산책할 때마다 당황스러운 말을 듣는다. 그 말을 정작 개는 못 알아듣고 사람만 알아들어서 그저 산책하러 나왔을 뿐인데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얼마 전, 산책길에 초등학생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개 만져봐도 돼요?”
“안 돼요. 개가 겁이 많아서요.” 그러자 아이는 말했다. “개 안아 봐도 돼요?”
만져보면 안 되는 개가 안아봐도 될 리 없잖아, 친구야. 하지만 우직하게 의지를 드러내는 아이가 귀여워서 대답했다. “아니요. 대신 간식 줘 볼래요?” 아이는 신이 났다. “나 간식 줘 볼래요!”
개의 간식을 아이에게 건네며, 손바닥 위에 올려서 주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아이가 손바닥에 간식을 올리자, 개는 냉큼 혀를 내밀어 간식을 핥아먹었다. 아이는 몹시 당황했다. 개한테 간식을 주고 싶었을 뿐, 개가 자기 손바닥을 핥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아이 얼굴이 일그러졌다. “개, 침이, 침이, 내 손에….”
손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이걸로 닦아요.” 그러자 아이는 손수건으로 손바닥을 벅벅 닦더니 찝찝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직도 개 침이, 침이….” 아이에게 알려주었다. “놀랐어요? 개는 사람하고 달라서 간식을 혀로 핥아먹어요.”
아이와 헤어져 반대편으로 걸으며 생각했다. 저 아이는 이제 개를 봐도 선뜻 말을 걸지 않겠지. 개에게 간식을 주면 손에 개의 침이 묻는다는 걸 알게 됐겠지. 개에게 난감한 말들을 건네는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면 어떨까 상상했다. 개가 아닌 내가 개가 되는 상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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