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축제에 연예인 대신 자동차 세운 ‘괴짜 교수’
보령 모터 페스티벌 만든
아주자동차대학교 박상현
2011년 학교 축제를 기획하던 아주자동차대학교 학생회장 박상현씨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유명한 연예인은 언감생심. 좀 알 만한 가수를 부르려 해도 축제 예산을 다 써야 할 판이었다. “차라리 이 돈으로 자동차를 섭외하는 게 낫지 않을까?”
자동차 전문 학교지만, 교정에 페라리 F430 한 대만 들어와도 학생들이 우르르 구경 갈 때였다. “연예인 대신 희귀한 차량들을 다 모아보자”며 학생회 동기·후배들을 설득해 전국의 수집가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120대로 ‘아주자동차대 모터 페스티벌’을 열었다. 머드 축제와 함께 보령시의 대표 관광 행사가 된 ‘보령·AMC 국제 모터 페스티벌(이하 보령 모터 페스티벌)’의 시작이었다. 올해 15회(2022년에 두 번 개최)를 맞았다.
학생회장이었던 그는 현재 아주자동차대학교 모터스포츠학과 교수이자 레이싱팀 감독. 보령 모터 페스티벌도 이끌고 있다. 지난 5월 5일 ‘차에 미친 괴짜 교수’로 불리는 박 교수를 축제 현장에서 만났다. 올해 보령 모터 페스티벌 관람객은 13만3000명. 보령시 인구(9만4887명)보다 많은 사람이 찾았다.
◇모델쇼 아닌 모두의 축제로
-왜 모터쇼였나요?
“모터 페스티벌이 학교 특성에 더 맞으니까요. ‘모델쇼’라고 비판받는 진부한 모터쇼 말고,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나아가 ‘모터스포츠’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축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흔히 모터쇼는 차량 업체들이 신차나 콘셉트카를 공개하는 행사로, 차량 전시와 이를 소개하는 모델이 중심이 된다. 그래서 “모터쇼가 아닌 모델쇼”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위험한 스포츠’라는 인식이 있는데.
“15년 동안 사고는 한 건도 없었습니다. 일반인들이 돌아다니고, 시가지 한복판에서 하는 만큼 행사 6개월 전부터 참가자들을 학교로 불러 안전 교육을 실시합니다. 시민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야 모터스포츠 문화가 발전할 수 있다고 ‘세뇌’하지요(웃음).”
그는 “차부터 한번 타보라”며 기자를 드리프트(차가 미끄러지며 코너를 도는 기술을 겨루는 경기) 체험장으로 이끌었다. 비가 퍼붓고 있어 차가 미끄러지면 어쩌나 걱정됐다. “시속 45~60㎞ 정도로 ‘느리게’ 달리겠다”고 했다. 실제 경기에서는 시속 250㎞를 훌쩍 넘기도 한다. 긴장하며 대기하고 있는데 앞서 체험한 꼬마(7)가 아쉬운 표정으로 헬멧을 벗으며 “한 번 더 타고 싶다”고 했다.
기수가 깃발을 휙 들어 올리자 부와앙~ 소음과 함께 차가 튀어나갔다. 넓은 주행장에 그려진 표지들을 요리조리 오가며 빠른 속도로 8자를 그리다가 멈춰서기를 반복했다. 긴장했던 마음은 어느새 해방감으로 바뀌었다. 박 교수는 “차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놀이기구 타듯이 경험해보고, ‘즐겁다’고 느끼도록 체험을 권한다”고 했다.
-왜 체험을 강조하나요.
“저희 아버지도 붕붕거리는 차량을 보면 ‘오렌지족’이라고 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카 레이싱에 빠져 있었는데 ‘위험하다’며 반대하셨죠. 사람들 생각을 바꿔야 이 분야가 대중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대천해수욕장에서 행사를 여는 것도 바다를 찾은 일반인들이 ‘여긴 뭐지?’ 하며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닛산 스카이라인 GTR처럼 이름조차 어려운 수퍼카 600여 대가 전시된 이번 행사의 메인 차량은 의외로 ‘각그랜저’라 불리는 1992년식 그랜저였다. 박 교수는 “수억원대 페라리, 람보르기니도 있지만 차 마니아가 아닌 사람도 보자마자 ‘아빠의 첫 차’ ‘당시엔 꿈이던 차’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차량이 대중화에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부부와 어린아이의 손을 잡은 젊은 부부가 행사장 한가운데 놓인 각그랜저를 두고 “예전엔 이게 엄청 비싼 차였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터쇼 방문객이 보령시 인구보다 많다고요?
“작년엔 사흘 동안 12만명이 왔고, 올해는 첫날에만 10만명이 찾았습니다. 시끄러운 차량이 붕붕거리며 달리니 처음엔 지역 상인들이 ‘손님 떨어진다’며 걱정했죠. 그 불만은 시장님이 와도 해결 못 해요. 행사 준비하는 팀들이 매일 다른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안전하게 하겠다’ ‘관광객 상대로 가격 올리면 안 된다’고 설득했죠. 이제 모터 페스티벌 덕분에 손님이 많아졌다고 고마워합니다. 어느 국밥집은 행사 3일 동안 900만원 매출을 올렸대요.”
-차에 관심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차 마니아들만 즐기는 행사로는 오래가지 못해요. 수년간 보령시 등에 ‘지원을 좀 해달라’고 했는데 보고가 올라가지도 않은 것 같더라고요. 레이싱 복장을 입고 시장님이 축사하는 머드 축제 무대에 난입해 ‘보령엔 모터 페스티벌도 있습니다! 한번만 와 주십시오!’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웃음).”
2021년, 박 교수는 아주자동차대에서 열린 모터쇼에 보령시장을 초대했다. 관람객이 몰려 시장이 행사장에 진입하는 데 40여 분이 걸렸다. 그제야 “시와 함께 개최하자”는 합의가 이뤄졌다. 2022년부터 보령시와 아주자동차대가 주최하는 ‘보령·AMC 국제 모터 페스티벌’로 이름을 바꾸고, 대천해수욕장으로 장소를 옮겼다. 초창기 400만원이었던 행사 예산은 15억원으로 늘었다. 도요타 같은 완성차 업체들도 작년부터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차밖에 모르는 괴짜
차량이 사람 코앞에서 가까스로 멈추고, 묘기 부리듯 스피드 경쟁을 벌이는 건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장면. 박 교수는 세븐틴·몬스타엑스·트와이스·이달의소녀 같은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와 볼보·카트라이더 광고 등에서 카 레이싱·드리프트 장면을 연출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드리프트 달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차를 굉장히 좋아하셨나 봅니다.
“어릴 때 레이싱 경기 영상을 보고 ‘이거 멋있네?’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때 캐나다로 유학을 갔는데, 등교용 차량을 레이스용으로 정비해 경주에 나가곤 했어요. 등교하다 튜닝숍에 주저앉는 날이 많아졌고, 결국 학점 때문에 학생 비자 연장이 안 됐어요. 몰래 귀국했다가 부모님한테 걸렸는데 ‘졸업 후 입대’를 조건으로 다시 캐나다에 보내주셨지요. 비무장지대(DMZ)에서 육군 수색대로 복무했습니다.”
-레이싱 선수가 되지는 못했네요.
“나이가 많으니 받아주는 레이싱 팀이 없더라고요. 은행에서 200만원을 대출받아 강원 태백에서 열린 경기에 참가했어요. 타임 트라이얼(Time trial·제한된 시간 내에 빠르기를 겨루는 것) 대회에서 1등도 해봤지만 대회 참가비 마련이 어려웠습니다. 아주자동차대 모터스포츠학과에선 성적이 좋으면 학교 차로 레이스를 보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한 학기 학비가 300만원이라고 치고, 참가비 300만원짜리 경기 세 번만 나가면 2년 동안 학비 300만원 내고 다니는 거다’ 생각하며 스물다섯 살에 입학했습니다.”
‘모터스포츠학과’는 우리가 ‘레이싱 카’로 알고 있는 경주차의 공학적 원리와 제작·정비·주행 기술 등을 가르친다. 졸업 후 경기도 평택에서 자동차 튜닝숍을 운영하던 그는 2021년 아주자동차대 교수로 임용됐다.
-교수직에 관심이 있었나요?
“사업은 잘되는 편이었어요. 미군들까지 상대해 돈 좀 벌었지요. 그래도 ‘모터스포츠 전공하는 후배들을 키워보자’라는 마음으로 연봉 협상도 안 하고 왔습니다. 주말엔 일용직을 하며 레이스 참가비를 버느라, 방학에는 레이스 연습하느라 학교에 박혀 살아서 여기가 제 집이나 마찬가지예요. 첫 월급을 받고는 ‘아, 잘못했구나’ 싶었지만. 하하.”
학교에 온 그는 또다시 파란을 일으킨다. 조교부터 교직원, 교수는 물론, 대학총장까지 모두 참조해 업무 시정을 요구하는 메일을 보낸 것이다. 실습 차량 수리부터 배정, 소모품 신청까지 학생들이 실습하며 겪는 불편 사항을 전부 지적하고 나섰다. 메일 끝에 “총장님과 교수님들, 교직원 선생님들을 참조하여 메일을 보내는 이유는 오래 근무하신 분들의 가르침을 부탁드리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말 그대로 학교가 뒤집혔다. “아버지가 항상 ‘설치지 말라’고 당부하셨는데… 다행히 총장님이 너그럽게 품어주셨습니다.” 한 해에 20여 명이던 신입생 수는 현재 36명까지 늘었다.
-본인이 잘해도 남을 가르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잖아요.
“학생들에게 ‘참여’와 ‘태도’ 두 가지만 강조합니다. 단, 실습에 슬리퍼, 반바지 착용하고 오면 ‘끝’입니다. 차가 뜨겁게 달궈지기도 하고, 잠깐의 실수나 장난에 크게 다칠 수도 있거든요. 모터스포츠 학과는 부모님들 반대 무릅쓰고 온 학생이 많기 때문에 안전이 가장 중요합니다.”
-차 말고 다른 취미는 없습니까?
“의외로 위험한 건 절대 안 해요. 왼발로도 페달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발을 다칠 수 있는 스포츠도 안 합니다. 농구도, 축구도, 스키도 저에게는 카 레이싱보다 위험해요.”
올해 1월 결혼한 그는 보령 모터쇼 준비 등으로 신혼여행을 여름으로 미뤘다. “신혼여행을 발리로 가는데 아내한테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했어요. 지프 차를 타고 산에 올라갈 수 있다는데, 그것만 할 수 있으면 다 괜찮다고 했지요.”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는 공자님 말씀이 떠올랐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