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햄버거… 주문을 하세요, 질문하지 말고
[구두쇠氏 혼밥기행]
강원 홍천초등학교 앞 ‘몽고피자’의 몽고햄버거
구두쇠씨는 스스로 미식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맛있는 걸 찾아다니는 사람도 아니었다. 문 열기도 전에 식당에 가는 사람도, 한 시간씩 줄 서는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두쇠씨는 먹을 만한 것을 찾아다닐 뿐이었다. 실로 먹을 만한 음식을 파는 집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특히 서울 도심을 비롯해 재개발이 이뤄진 곳은 어김없이 공장제 음식 또는 사람 먹을 것으로 새 모이를 만드는 식당들만 번창했다.
두쇠씨가 햄버거를 먹으러 홍천에 간 것은 아니었다. 홍천엔 두쇠씨 부친이 말년에 시간을 보내던 농가가 있어서 주말에 가곤 했다. 강원도 내륙엔 막국수 말고 별 먹을 게 없었다. 다만 홍천 한우가 횡성 못지않게 맛있고 횡성보다 훨씬 싸서, 늘 플러스 두 개 붙은 한우 등심을 사다가 시골집 마당에서 구워 먹곤 했다.
홍천초등학교 앞에 심상찮은 가게가 있었다. 피자와 햄버거, 샌드위치를 파는 집이었는데 옥호가 ‘몽고피자’였다. 왜 피자집 이름이 몽고인지 다녀온 사람들 리뷰를 모조리 읽어도 알 수 없었다. 주인이 몽골 사람이거나 최소한 몽골을 좋아한다거나 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었다. 오장동 ‘흥남집’ 주인이 함경남도 흥남 출신인 것처럼 말이다.
이를테면 홍천엔 ‘몽고’라는 이름이 붙은 캠핑장이 있는데 몽골식 천막인 게르에서 캠핑하는 곳이었다. 몽고피자나 몽고햄버거에 몽골식 양고기인 ‘허르허그’나 염소고기 ‘버더그’가 들어간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그건 분명히 아니었다(설령 그렇다 해도 왜 허르허그 버거와 버더그 피자를 만드는지 또 궁금할 것이다).
두쇠씨가 몽고피자에 간 건 일요일 점심때였다. 간판이 족히 20년은 비바람에 시달린 듯 낡아져 있었다. 1층엔 화사한 노란색의 김밥집이 있어서 ‘몽고 햄버거 2층으로’라는 빨간 글씨 안내문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 것 같았다. 2층으로 올라가니 간유리가 끼워진 회색 문에 ‘201′이라는 호수가 붙어 있고 ‘외부 음식 반입 금지’ ‘정통 서구식 햄버거’라는 글씨가 있었다. ‘손조심’ 스티커도 두 개나 붙어 있었다. 햄버거집이라기보다 사채업이나 용역 업체 사무실 같은 모습이었다.
내부는 빨강과 노랑의 타일과 조명, 초록색 식물들이 뒤섞여 장식돼 외관과는 정반대의 느낌이었다. 그리고 각종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햄버거 컷팅 판매 절대 안 함!’이란 문구가 세 개, ‘모든 음식은 셀프’가 두 개, 그리고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주문 외 질문을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두 개 붙어 있었다. 갑자기 생전 보지도 못한 이 집 손님들과 묘한 연대감이 느껴졌다.
남자 주인은 모든 질문에 상냥하게 대답해 줄 것처럼 생긴 사람이었다. 입을 떼려는 순간 그가 말했다. “포장밖에 안 됩니다.” 두쇠씨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몽고햄버거 하나 주세요.” 내부엔 식탁 대여섯 개가 있었지만 코로나 이후 포장 판매만 하고 있다는 걸 주인은 말해주지 않았고 단골들이 경험으로 알고 전했다.
손님은 두쇠씨 외에 없었지만 거의 1분에 한 통씩 전화가 걸려 왔다. 그때마다 주인은 “포장이요. 포장만 됩니다”라고 재차 얘기했다. 또 “20분도 넘게 걸리니 절대 빨리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누군가 매장에서 음식을 먹거나 서서 기다리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강박 같은 게 느껴졌다. 주문한 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질문이 수북이 쌓이고 있었다.
이윽고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햄버거가 나왔다. 마지막 기회였다. 현금을 내밀며 모든 사람이 가장 궁금해할 질문을 했다. “왜 몽고피자인가요?” 주인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그냥 지은 이름이에요.” 이대로 물러설 두쇠씨가 아니었다. “쉬는 날이 없나요?” 주인은 등을 휙 돌려 조리대쪽으로 가면서 “네에” 하고 말했다. 그 소리가 가게 안을 휘돌며 잘게 부서졌다.
6000원짜리 햄버거는 푸짐했다. 햄버거빵에 고기 패티와 치즈, 햄, 달걀부침, 채 썬 양배추가 가득했다. 특이하게도 땅콩버터와 건포도가 들어가 있었다. 홍천초등학교와 홍천 군부대를 동시에 겨냥한 듯한 진짜 수제 버거였다. 두쇠씨는 땅콩과 건포도와 몽골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그만뒀다. 또 사 먹고 싶은 버거군. 두쇠씨는 혼잣말을 했다. 왜 이걸 몽고햄버거라고 부르는지 알게 될 때까지 말이야.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