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외상값, ‘통과일 샌드위치 혁명’으로 갚다
[박돈규 기자의 2사 만루]
‘오늘부터 제가 사장입니다’ 펴낸
후르츠산도 개발자 오오야마 고오키
이 청년은 10년 전 인생의 밑바닥을 헤맸다. 오오야마 고오키(大山皓生·30)는 열아홉 살에 대학을 자퇴했다. 어릴 적 이혼한 아버지 일을 몰래 돕다가 어머니에게 들키는 바람에 다툼이 잦았다. 가출한 뒤 연락을 끊었다. 그는 불만투성이였고 세상이 적대적으로 보였다. 4년이 흐른 2017년 12월에 전화 한 통을 받기 전까지는. “다이와가 망할 것 같아. 와서 도와줘.”
다이와는 외할아버지가 일본 아이치현 오카자키에서 운영하던 작은 청과물 가게 겸 수퍼마켓. 마침 오오야마는 직장에서 잘리고 돈도 떨어지고 기댈 사람이 없었다. 싸우고 뛰쳐나왔지만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장소가 사라지게 둘 수는 없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다이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일본을 홀리고 해외로 뻗어나간 히트 상품은 2018년 이 청년 손에서 탄생했다. 이름은 ‘후르츠산도’. 지금은 우리도 즐겨 먹는 생과일 샌드위치다.
지난 27일 도쿄 시부야 근처 ‘다카페’ 지점에서 만난 오오야마는 잘 웃는 사람이었다. 일본 청년들이 선망하는 기업가. 그의 인생이 담긴 책 ‘오늘부터 제가 사장입니다’(윤선해 번역·황소자리)가 최근 국내에 번역돼 나왔다. 오오야마가 개발한 후르츠산도는 2020년 봄 코로나를 뚫고 도쿄로 진출해 장외 홈런을 쳤다. “일본 제일이 되고 싶다면 일본 제일의 장소에 가라”며 등을 떠민 외할아버지 말처럼 성공한 것이다.
◇#1. 망해가는 청과물 가게를 물려받다
인생의 출발선이 남보다 100m 앞에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물려받은 청과물 가게는 적자가 심한 상태였다. 사장에 취임하던 날 떠안은 부채가 3000만엔(약 2억7000만원). 고교 시절 그토록 갖고 싶었던 오토바이를 100대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외할아버지가 가게를 물려주겠다고 한 날을 기억하나요?
“막연하지만 ‘결국 내가 받아야 하겠구나’ 생각하던 때였어요. ‘폐업하겠다’고 하셨지만 표정은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2018년 4월, 벚꽃이 만개한 날에 시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 제안을 들었지요.”
-저라면 거절했을 거예요.
“그런가요? 왜요?”
-빚이 많잖아요. 가게 경영을 흑자로 바꾸면 그때 다시 생각해볼게요, 했을 겁니다.
“아버지 가게에서 다코야키를 팔다가 아버지와도 싸우고 멀어진 때였어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것이 어쩌면 내 운명 아닌가 싶었습니다. 게다가 4년 사이에 외할아버지가 너무 늙으셨더라고요.”
-그날 ‘내가 다이와를 부활시킬 테니 믿고 맡겨달라’고 했지요?
“제가 그 말을 할 때까진 빚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서명하고 나서야 결산 서류를 보게 된 겁니다(웃음). 그렇다고 서운하거나 화가 나진 않았어요. 대학 갈 때 학비도 내주시고 어릴 적부터 신세 진 게 많아서 이젠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준비된 사장은 아니었습니다.
“시금치와 열무도 구별하지 못했지요(웃음). 가업이 수퍼마켓이지만 경영을 공부한 적도 없고요. ‘야채 도감’부터 사서 읽었습니다. 저는 일단 뭘 맡으면 걱정이나 불안은 옆으로 밀치고 ‘하면 되지 않을까?’ 낙관하는 성격이에요.”
-막막할 땐 화장실 청소를 했다고요?
“네. ‘화장실을 청소해야지’ 하다가 그냥 볼일만 보고 나오면 마음이 찜찜하잖아요. 그래서 어제도 청소를 했어요. 별것 아니지만 그 행동이 성취감이나 자신감과 연결돼 있는 것 같아요.”
-스태프를 모아 조례를 열고 ‘오늘부터 제가 사장입니다’ 말한 날 기억하나요?
“당시 수퍼마켓에서 일하던 분들은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 일을 하셨어요. ‘사장이 된 걸 축하한다’ ‘앞으로 열심히 해라’ ‘죽을 때까지 일할 테니 잘 부탁한다’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날 몇 가지를 선언했어요. 다이와를 100명 대기 행렬이 생기는 가게로 키우겠다. 매출을 두 배로 올리겠다. 여러분 월급도 올려주고 싶으니 힘을 보태달라….”
-그 약속, 얼마 만에 지켰나요?
“야심 차게 만든 야채 빙수는 참패했습니다. 하지만 멜론을 그릇으로 삼아 얼음을 갈아넣은 멜론 빙수는 소셜미디어(SNS)로 퍼지며 히트했지요. 사장이 된 지 두어 달 만에요. 힘든 경험도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언젠가 운을 열어주는 열쇠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혹시 ‘나는 장사의 신이구나’ 생각했습니까?
“네! 하하. 저는 계획을 세우기보다 눈앞에 떨어진 일을 해내는 편입니다. 책에 ‘연매출 100억엔이 목표’라고 쓴 것은 희망일 뿐이에요. 기적을 바라진 않지만 고객을 기쁘게 하다 보면 언젠가 이룰 수도 있다고 믿어요.”
-1년 전쯤 피자 사업을 해보겠다며 화덕을 대량 구매한 적이 있지요?
“책에 안 나오는데 어떻게 알았나요? (유튜브에서 봤다고 하자) 저도 실패의 쓴맛을 아는 사람입니다. 화덕들은 지금 창고에서 잠자고 있어요. 반값에 내어드릴게요(웃음).”
◇#2. 우연히 발견한 신세계
누군가가 건네는 음식(일)은 무엇이든 감사히 먹자(하자). 외할아버지가 오오야마에게 가르친 삶의 철학이다. 지금도 그대로인지 묻자 그는 “토마토를 안 먹는 것 빼고는”이라며 웃었다.
-책에 ‘(사장을 맡을 때) 인생의 외상값이 한꺼번에 청구된 기분이었다’는 문장은 무슨 뜻인가요?
“20대 초반까지 잘못 살아온 대가라고 생각했어요. 외조부모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서 빚을 갚아야겠다는 마음이었고요. ‘인생의 외상값’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책임감, 각오도 담겨 있습니다.”
-멜론 빙수가 히트해 날마다 100명 넘게 서는 줄을 보면서 든 생각이라면.
“솔직히 ‘해냈다, 좋다’는 아니었어요. ‘어, 어떡하지? 내일도 저렇게 팔 수 있을까’에 더 가까웠습니다. 기쁘면서도 조급해졌고 걱정이 더 컸어요.”
-단골들은 주차가 불편해졌고 종업원들도 힘들어했다면서요?
“(고개를 끄덕이며) 애송이 사장에게 닥친 첫 시련이었지요. 최저임금 이하를 받으면서도 즐겁게 일하던 종업원들이 ‘너무 힘들다’ ‘계속 이렇게 할 거야?’라고 할 땐 너무 슬펐습니다. 그때 외할아버지가 격려해주셨어요. ‘너의 각오를 시험하는 상황일 뿐이니 눈치 보지 말고 직진하라’고.”
-얼마 후 후르츠산도를 개발하게 됩니다.
“빙수는 여름 한정품이잖아요. 화과자처럼 사계절 내내 잘 팔릴 상품이 필요했어요. 어느 날 편의점에서 다이와 신문(홍보용 무가지)을 복사하다 배가 고파 사먹은 후르츠산도가 제 운명을 바꿨습니다.”
-탄생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준다면.
“맛대가리가 없었어요. 편의점 후르츠산도에는 지금도 통조림 과일이 들어가요. 그런데 우리는 신선한 과일을 가지고 있잖아요? ‘자르는 데 손이 많이 가고 귀찮으니까 씨만 빼고 과일을 통째로 넣고 가운데를 잘라보자’ 생각한 거예요. 그곳에 신세계가 있었습니다.”
-종업원들에게는 사장이 후르츠산도를 개발 중이라는 게 좋은 소식만은 아니었겠군요.
“실제로 그랬어요. 가격이 올라가 1000엔이 될 텐데 그 후르츠산도를 누가 사먹겠냐는 거죠. 저는 이렇게 설득했어요. 장어가 비싸지만 특별한 날에 장어덮밥을 사먹지 않느냐고. 비싸도 맛있다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 것이라고.”
-후르츠산도는 생크림과 빵도 중요한데 그 실행력에 놀랐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조리사 면허를 가진 종업원이 있었는데, 몇 달간 시행착오 끝에 담백한 생크림을 개발했어요. 어머니는 빵을 20종류나 시식하면서 짭짤하고 폭신폭신한 빵을 찾아냈고요. 엄선한 생과일과 생크림, 빵 등 후르츠산도를 완성할 삼총사가 만들어진 겁니다.”
-합체해 먹어본 후르츠산도 1호는 어떤 맛이었나요?
“다들 함성을 질렀어요. 일본에서 먹어보지 못한, 상상을 초월하는 맛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외양이 중요하잖아요. 두근두근 설레는 기분이 필요하니까요.”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라 ‘칼과 도마 좀 줘봐’ 했어요. 멜론을 통째로 넣은 후르츠산도를 반으로 쫘악 갈랐습니다. 예쁜 단면이 자태를 드러냈고 모두 말을 잃었죠. 다른 과일들도 통째로 넣고 썰자 박력 넘치는 무늬가 나왔어요. 통과일과 생크림, 빵이 마치 폭죽처럼.”
◇#3. 일에도 제철이 있다
유레카의 순간이었다. 마무리는 상품 포장. 오오야마는 완패한 옛 기억부터 떠올렸다. 오사카에서 열린 먹거리 대제전 때 아버지의 다코야키 가게가 참여했는데, 바로 옆 가라아게 가게만 첫날부터 대성황을 이룬 것이었다.
-식품전은 단골이 아닌, 처음 오는 사람들이 먹는데 왜 그런 격차가 생겼을까요.
“제가 그때 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라아게 가게 사장을 찾아가 물었어요. 상상도 안 해본 답을 들었지만 곧장 납득했습니다. 그 가라아게 가게의 간판과 포장지만 붓글씨로 쓴 글자였던 거예요. ‘젊은 친구가 기특하다’면서 사장이 한 말이 불도장처럼 각인됐어요.”
-뭐라고 했나요?
“보통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비결을 묻지도 못하고 ‘맛은 별 차이 없다’느니 비판만 해대지. 그러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장사도, 인생도 종쳐 버리는 거야…. 손으로 쓴 글자에는 혼이 담겨 고객이 신뢰하게 된다는 뜻이었습니다.”(오야마도 붓글씨로 직접 다이와 로고를 만들었다)
-후르츠산도가 출시된 첫날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다들 ‘가와이~’를 연발했죠. 긴 행렬이 생겨났고 사진과 함께 소문이 SNS로 확산됐어요. 1인당 3개로 구매를 제한해야 할 만큼 문전성시였습니다. 일손이 부족해져 접객을 잘하는 친절한 스태프를 충원해 나갔지요.”
이듬해에는 후르츠산도와 음료를 판매하는 ‘다카페’로 사업을 확장했다.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이 점점 늘어났고 ‘도쿄에 출점(진출)해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잔돈 500엔을 돌려주기 위해 밤중에 차로 90분 떨어진 고객 집까지 찾아간 적이 있다고요?
“가게를 하다 보면 재방문이 제일 중요해요. 고작 500엔이 아니라, 실망한 손님은 발길을 끊게 됩니다. 주변에 소문이 퍼지고요. 그런 손님이 늘어나면 가게는 망해요. 실망한 손님에게 놀라움을 선사하며 단골로 만들어야 합니다. 가게를 지속하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해요. 먹는 것처럼 일에도 제철이 있고요.”
-일에도 제철이 있다고요?
“청과물 장사를 오래 한 외할아버지의 가르침인데요, 지금 해야 할 일을 방치하면 과일처럼 썩어버린다는 뜻이에요. 실수했을 땐 바로잡는 속도와 태도가 실력입니다. 진심을 담아 행동하면 마음이 반드시 전해져요. 고객의 작은 불편, 작은 목소리를 모른 척 무시하면 큰 대가를 치르게 되고요.”
-오늘 보니 웃음이 많군요.
“이것도 외할아버지에게 배웠어요. ‘항상 기분 좋은 상태로 있어라. 웃는 얼굴로 있으니까 즐거워지는 거다.’ 프로 장사꾼이란 즐겁게 웃으면서 다시 웃을 수 있는 일을 만들어가는 사람이에요.”
-좋은 말이지만, 실적이 나빠도 정말 웃을 수 있습니까?
“저도 1년에 세 번은 울어요, 안 보이는 곳에서.(웃음) 그런데 사장이 ‘어, 이거 큰일났네’ 하면 그 회사의 환경은 ‘큰일났네 상황’이 돼버립니다. 리더는 곤란한 사건이 생겨도 부정적인 말을 피해야 해요. ‘어, 이거 재미있는 상황이네!’라고 말하는 게 나아요. 그래야 종업원들도 ‘어, 큰일난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라며 다시 일하게 되고 위기를 넘어갈 수 있어요. 자, 지금부터 하는 말이 클라이맥스(핵심)입니다.”
-네?
“도쿄에 진출한 게 하필이면 2020년 봄,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휩쓸고 있을 때였어요. 그 직전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요. 타이밍이 가장 안 좋은 시기였습니다. 나카메구로에 도쿄 1호점을 냈는데 후르츠산도가 팔리지 않아 날마다 재고가 쌓였어요. 벚꽃은 만개했는데 너무 막막했습니다. 역 앞으로 들고 나가 판촉 활동을 했는데, 공짜로 줘도 홀대를 받던 때였어요. ‘이대론 안 되겠다’는 한계를 느꼈지요.”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이왕 하는 거 더 철저하게, 손편지까지 써서 후르츠산도와 함께 나눠줬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후르츠산도를 사러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200m가 넘는 긴 행렬이 생겼고요. 알고 보니 어느 대학생이 무료로 준 후르츠산도를 먹고 트위터에 ‘너무 맛있어서 울고 있어요!’라는 글을 올렸고 그게 엄청난 리트윗(7일 연속 일본 1위)을 만들면서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4. 후르츠산도 행진곡
오오야마의 후르츠산도는 도쿄에서도 히트했다. 다이와 수퍼에서 탄생한 후르츠산도는 일본에서 붐을 일으킨 뒤 한국, 대만, 동남아 등 다른 나라로도 건너갔다. 시골 마을 청과물 가게의 애송이 사장은 빚을 다 갚고 5년 만에 연매출 160억원을 올리는 청년 기업인이 됐다.
-후발 주자들이 당신의 후르츠산도를 모방할 텐데 그래도 경쟁력이 있나요?
“모양은 흉내 낼 수 있어도 그것을 창조한 열정과 스토리는 카피할 수 없어요. 모방한 업체 중에는 문 닫고 철수한 곳이 이미 많아요. 저희 후르츠산도의 독창성은 훼손되지 않았어요. ‘납품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앞으로도 더 행진해 나갈 겁니다.”
-원서의 부제가 ‘할아버지와 우리의 후르츠산도 행진곡’이더군요. 한국어로 번역된 감회라면.
“작년 9월에 일본에서 펴냈는데 이렇게 빨리 한국판을 보다니 실감이 안 나요. 두근두근 설레요. 외할아버지의 가르침과 응원이 없었다면 후르츠산도도 없었을 거예요. 후르츠산도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것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외할아버지가 하늘에서 보고 계시다면 뭐라고 하실까요.
“(곰곰 생각하다) 매일 아침 ‘오늘도 즐겁게 해라’ ‘베푸는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 말씀을 하실 것 같습니다. 제가 육상 선수 출신인데 우리는 과거 누군가가 전해준 의지의 배턴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꽉 쥐고 달려서 다음 주자에게 전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여기 후르츠산도들에게 듣는 귀가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자, 이제부터 더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건네주자!”
-서울에서 이걸 먹을 순 없을까요.
“이 인터뷰가 신문에 실린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자고요! 하하.”
‘오늘부터 제가 사장입니다’에는 시골 마을 청과물 가게가 일으킨 유쾌한 기적이 담겨 있다. 이 책은 “후르츠산도에는 우리 인생의 소중한 것이 모두 담겨 있다”는 문장으로 열린다. 독자에게 쓸모 있는 한 가지는 뭘까. “살다 보면 어느 길이 정답인지 몰라 갈팡질팡할 때가 있잖아요. ‘내가 선택한 쪽을 정답으로 만든다’는 각오를 하면 어느 길로 나아가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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