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당첨금 들고 튄 직장동료…국토종주 자전거길로 추격하다
국내 최초 ‘자전거 로드무비 소설’ 쓴 정진영 작가
국내 최초 ‘자전거 로드무비 소설’이 나왔다. 직장인에게 느닷없이 주어진 5박 6일간의 일상탈출을 그린 정진영 작가(일러스트)의 신간 『왓 어 원더풀 월드』(북레시피). 자전거여행이라는 낭만적인 테마에 고용문제 등 사회적 소재, 로또당첨이라는 판타지에 미스터리 추격전과 반전의 휴먼드라마까지, 한편의 영화가 그려진다. 팔당역에서 능내역, 비내섬, 탄금대, 이화령고개를 넘어 낙동강하굿둑에 이르는 국토종주 자전거길 홍보영화로 딱이다. 추격자들의 이동경로를 따라 펼쳐지는 풍광과 맛집 등 ‘하드웨어’는 모두 실존하니, 국토종주 도전자를 위한 가이드북도 된다.
황정민·윤아 주연 드라마 ‘허쉬’ 원작자
2011년 『도화촌 기행』으로 등단한 정 작가는 황정민·윤아 주연 드라마 ‘허쉬’(2020)의 원작자다. 앉아서 상상하기보다 발로 뛰어 취재한 현실밀착형 소설을 쓰는 게 모토인 소위 ‘사회파 작가’인데, 비교적 말랑한 신간이 “가장 어렵게 쓴 장편”이란다. “지금까지 쓰던 심각한 소설과 결이 달라요. 자전거길에서 풀내음 섞인 바람을 온몸으로 맞던 그 좋은 기분을 전하느라 힘들었죠. 그렇다고 한가한 힐링소설이 아니라 현실에 발을 붙여야 하니까요. 회사일이 바빠 엄두를 못내다가, 2020년 전업작가가 돼서 두 번째 국토종주를 한 다음 본격적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로또 당첨자를 추격한다는 설정만 허구일 뿐, 거의 실제상황이다. 고라니 울음소리와 뱀 출현에 기겁하고, 오밤중에 멧돼지와 대치하는 에피소드도 다 경험담이다. “앉은뱅이소설을 제일 싫어해요. 지금 벌어지는 우리 이야기를 쓰고 싶죠. 등장인물들도 아무 경험없이 국토종주에 나선 셈이라 제 경험들을 살려봤어요. 그렇다고 다큐와는 달라요. 다큐는 한발 떨어져 보게 되지만, 소설은 그 안에 몰입해서 간접경험을 하게 되잖아요.”
그는 두번의 국토종주가 “생애 가장 잘한 일”이라고 했다. 길마다 나타나는 다채로운 풍경을 만나며 인생을 절로 긍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강 따라 달리다보면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못보고 살았나 싶고, 우리나라 살 만하네 느끼게 돼요. 물론 그런다고 인생이 바뀌는 건 아니죠. 그냥 마음가짐이 달라져요. 주인공도 계속 다니던 회사를 다니지만 훨씬 긍정적인 사람으로 진화하잖아요.”
“최고의 코스는 한강 자전거길 양평구간”
자전거 여행이 마냥 안전하진 않다. 밤길을 달린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멧돼지와 대치한 순간은 생애 가장 큰 공포였어요. 밤에 혼자 산길을 힘겹게 내려온 순간 거대한 멧돼지와 마주친 거죠. 10분 넘게 대치했는데, 결국 멧돼지가 논두렁을 점프해 사라지길래 허벅지가 터져라 페달을 밟았죠. 사실 밤이 아니면 뱀이나 고라니를 만나도 안 위험해요. 야생동물은 사람을 보면 다 도망가거든요. 심지어 개구리를 삼키고 있는 뱀을 만난 적도 있는데, 개구리를 뱉어놓고 도망가더라구요.(웃음)”
그의 말처럼 자전거 여행이 다 드라마는 아니다. 다만 “능동적으로 뭔가를 성취해 본 경험의 영향력”을 전하고 싶단다. “요즘엔 신입사원 부모가 회사에 전화를 한다죠. MZ들에게 가장 부족한 게 뭔가 스스로 성취해본 경험이거든요. 주인공은 끝까지 완주를 해본 거고, 한번 해보면 다른 일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어요. 저부터 국토종주를 하고 나니 뭐든 하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퇴사하고 쓴 게 드라마 ‘허쉬’ 원작인 『침묵주의보』였죠. 작게나마 성취한 경험이 얼마나 삶에 영향을 주는가를 그리고 싶었어요.”
전국의 모든 자전거길을 섭렵한 뒤 꼽는 최고의 코스는 어디일까. 그는 ‘한강 자전거길 양평구간’을 강추했다. “초심자가 자전거길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양평이죠. 경의선이 지나가서 접근성도 좋고, 길도 편하고 풍경도 아름답거든요. 가장 아름다운 곳은 섬진강이고요. 제일 여행다운 맛은 제주도죠. 자전거 대여도 잘되고 숙소와 음식점, 편의점이 다 훌륭하니까요. 동해안은 숙소가 없고, 낙동강엔 아무것도 없어요.(웃음)”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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