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슈바이처’의 피가 그에게도 흐르고 있었다

정해민 기자 2024. 6. 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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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 기념 공공보건상’에 오만 감염병 전문가 알 라와히
3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총회에서 제16회 ‘이종욱 기념 공공보건상’을 받은 오만 보건부 감염병 관리국장 베이더 사이프 알 라와히 박사. 이종욱 기념 공공보건상은 WHO 사무총장을 지낸 고(故) 이종욱 박사를 기리는 상으로, 공공보건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인물에게 수여한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3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세계보건총회에서 오만 보건부 감염병 관리국장 베이더 사이프 알 라와히(49) 박사가 제16회 ‘이종욱 기념 공공보건상’을 받았다.

이종욱 기념 공공보건상은 2003~2006년 제6대 WHO 사무총장을 지낸 고(故) 이종욱 박사를 기리는 상이다. WHO와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2008년 만들었다. 국제기구 수장에 오른 최초의 한국인인 이종욱 박사는 23년간 WHO에서 일하며 개발도상국의 에이즈, 소아마비 퇴치 등에 힘써 ‘아시아의 슈바이처’ ‘백신의 황제’로 불렸다. 이 박사처럼 세계 곳곳에서 공공보건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올해 수상자인 알 라와히 박사는 1996년부터 오만 보건부에서 예방접종·감염병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공무원이다. 그는 “예방접종은 누구나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백신 보급을 위해 애써왔다. 그는 지난 2020년 코로나 유행 당시 ‘국가 백신 캠페인’ 책임자를 맡아 오만 국민뿐 아니라 전쟁 난민과 불법 체류자들까지 국적 상관없이 오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무료로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2021년 11월 기준 오만의 코로나 백신 1회 접종률은 93%에 달했다.

알 라와히 박사는 예멘, 시리아, 수단 등 내전 때문에 코로나 백신을 쉽게 구할 수 없는 인근 국가를 직접 방문해 백신을 전달하기도 했다. 오만은 예멘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는 ‘국경 지역이 감염에 더 취약하므로 코로나 백신 접종을 빠르게 마쳐야 한다’는 내용의 연구도 발표했다.

그는 2019년 세계적으로 홍역이 유행했을 때도 불법 체류자를 포함해 오만에 있는 모든 사람이 무료 백신을 맞을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오만은 홍역 예방 접종률 94%를 달성했을 뿐 아니라 동지중해(지중해 동쪽 서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홍역을 퇴치했다.

이 외에도 알 라와히 박사는 에이즈의 원인이 되는 HIV(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를 보유한 모든 임신부가 태아에 HIV를 전염시키지 않도록 예방하는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이 과정에서 HIV를 가진 임신부가 주변 시선을 우려해 치료를 못 받는 일이 없도록 HIV 인식을 개선하는 캠페인도 함께 진행했다. 그 결과 오만은 2022년 중동·아프리카 국가 중 최초로 HIV 퇴치 WHO 인증을 받았다.

왼쪽부터 제77차 세계보건총회 에드윈 디콜로티 의장, 베이더 알 라와히 박사, 테워드로스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 하일수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장.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알 라와히 박사는 현재 WHO 백신 제품 개발 자문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맞을 수 있는 새로운 백신 접종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세계백신면역연합에서도 활동하면서 중·저소득 국가에 백신을 공급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WHO 측은 “알 라와히 박사는 코로나 기간 신분과 무관하게 오만의 모든 사람이 백신을 접종할 수 있게 했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웃 국가에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어려운 시기에 연민을 발휘했다”면서 “이종욱 기념 공공보건상은 공중 보건과 형평성에 관한 상인데 알 라와히 박사는 이런 가치를 아우르며, 우리 모두의 모범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알 라와히 박사는 이날 시상식 후 강연에서 “저는 소외 계층을 위해 전염병 진단과 관리가 무료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주민과 난민을 포함한 모든 소외 계층이 뒤쳐지지 않게 하기 위해 활동해왔는데, 어려움이 많은 여정이었지만 매우 보람 있었다. 앞으로도 모두에게 공평한 미래를 위해 나아가겠다”고 했다. 이날 알 라와히 박사는 상패와 함께 상금 10만달러(약 1억3800만원)를 받았다. 그는 “상금을 오만 공공보건 발전에 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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