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지근한 몸국·접짝뼈국…제주 잔치음식 원형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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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
고군분투. 그를 보면 먼저 이 단어가 떠오른다. 그는 조사·연구자 겸 교수자이고 저술가다. 방송인이자 맛집 탐험가이며, 음식문화 원형에 충실한 제주 전통 향토음식점 주인 겸 주방장이다. 대를 잇는 가업이다. 어머니 김지순(88) 여사는 1970년대부터 사라지는 제주음식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정리했다. 이를 대학에서 가르치고, 1985년에는 제주 최초의 요리학원을 열면서 가업이 됐다. 업(業)이란 생계유지를 위해 종사하는 일이지만, 그의 가업은 생계보다 사명감이 우선인 과업이 됐다. 보람은 있되 노력만큼 보상이 따르지는 않는 일에 몰두하고 있으니 고군분투가 아닐 수 없다.
세 가지 국, 1970년대 이전 제주의 맛
![몸국과 괴기반을 중심으로 제주도 전통 잔치의 손님상을 되살린 가문잔치 정식 상차림. [사진 이택희]](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6/01/joongangsunday/20240601002409899ondn.jpg)
2019년 여름, 제주 시내 연동으로 옮기면서 메뉴를 약간 대중화했지만 몇 달 후 코로나19가 닥쳤다. 결국 지난해 7월 4일 “급작스럽게 현재 위치에서 짐을 빼게 됐다”며 낭푼밥상 시즌2 종료를 고했다. 그리고 열 달 만인 지난달 4일 기쁜 소식을 전했다. “옛 방식 그대로의 제주 전통 향토음식 체험관으로서 낭푼밥상의 모습을 정립하게 됐다. 지인들에게 오라고 손짓하고 싶지만 쑥스러움에 손은 들지 못하고 말없이 눈길만 보내본다. 나 제주 밥집 다시 시작했다!!”
![양용진 원장이 개발한 기름간장비빔메밀국수. [사진 이택희]](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6/01/joongangsunday/20240601002411443wpto.jpg)
메뉴는 앞의 세 가지 국(단품)과 그 국 중심의 정식, 네 가지 국수가 있다. 정식에는 밥과 국에 괴기반, 초무침회, 잡채, 기본 찬 5가지를 차린다. 고기 접시라는 뜻의 괴기반은 제주 잔치음식의 상징이다. 얇고 넓게 저민 삶은 돼지고기 석 점에 수애(순대)와 물기를 많이 빼 단단한 둠비(두부)를 한 점씩 담고 초간장을 곁들인다. 고기를 얇게 써는 건 잔치 때 귀한 음식을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고루 나누는 ‘기술’이었다.
![제주에 많은 고사리와 돼지고기를 넣고 가닥이 풀어져 뒤엉키도록 끓인 제주육개장 [사진 이택희]》](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6/01/joongangsunday/20240601002412983wgkz.jpg)
제주육개장(고사리육개장)도 같은 국물에 돼지고기와 고사리, 메밀가루를 넣고 끓인다. 푹 익어 실처럼 풀어져 엉킨 고기와 고사리 가닥 올려 국물 한술 뜨니 구수한 고사리 향이 입과 코에 가득하다. 자연의 맛, 이게 제주음식의 본색이다.
제주의 향 가득한 기름간장비빔국수
![‘낭푼밥상’ 오너셰프 양용진·조수경씨 부부가 고기국수와 괴기반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이택희]](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6/01/joongangsunday/20240601002414389qiaf.jpg)
국수는 제주음식인 고기국수와 양 원장이 개발한 채소기름과 맛간장으로 비빈 세 가지 국수가 있다. 고기국수는 육지 잔치국수를 응용해 1920년대에 제주식으로 정착한 음식이다. 돼지 모든 부위를 삶은 국물에 국수를 말았다. 요즘은 유명한 집들도 돼지 사골 국물만 쓴다. 낭푼밥상에서는 예전 육수로 한다.
비빔국수는 제주 재료와 음식문화가 농축된 두 가지 양념으로 향토색을 살린 기름·간장 비빔이다. 육지의 들기름막국수 유행에 영향을 받아, 어릴 적 외할머니가 참기름과 간장 넣고 비벼 주시던 국수를 응용해 창안했다. 맛간장에 메밀가루 풀어 달인 간장과 채유(菜油)에 매운 제주 토종고추(붕어초)를 넣어 라유(辣油) 맛까지 낸 기름으로 국수를 비빈다.
정식 상에 세 가지 국과 고기국수, 기름간장비빔국수를 시식했다. 베지근하다는 게 어떤 맛인지 알 것 같았다. 이런 솜씨와 노력으로 양 원장은 2022년 12월 제주 향토음식 명인 제1호인 어머니 김지순 여사의 단독 전수자로 지정됐다. 시즌3을 여는 그의 소망은 소박하지만 간절하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유명 맛집이 될 순 없겠지만, 오롯이 제주의 전통을 지키는 집으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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