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文 회고록과 평산마을 ‘이상한 고양이’

박정훈 논설실장 2024. 6. 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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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의 인식 체계엔 환각과 망상 요소가 뒤섞여 있다…
잊혀지겠다던 인격과 잊혀지기 싫어하는 또 다른 인격이 공존하는 듯 하다
지난 2018년 9월 방북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김정은과 함께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집단체조와 공연 행사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이 "예의 바르고 존중이 몸에 뱄다"고 평했다. /연합뉴스

화제 만발, 흥행에 성공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 주제는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현실을 벗어난 환상 속 세계관’. 책 발간일이 하필이면 북한이 동해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쏜 날이었다. 사거리 300~1000㎞이니 대남 타격용임이 분명했으나 회고록은 김정은이 “핵을 사용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이 “핵 무력을 동원한 남조선 전 영토 평정” 운운하는데도 문 전 대통령은 그를 ‘연평도 포격에 미안해하는 평화주의자’인 양 묘사했다.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이 “깍듯했다”고 평했다. 고모부를 총살하고 형을 독살한 독재자를 “예의 바르고 존중이 몸에 뱄다”고 했다. 그는 “딸 세대까지 핵을 이고 살게 하고 싶지 않다”고 한 김정은의 말이 진심이었다고 했는데, 김정은이 미사일 발사 때마다 딸을 끼고 다닌다는 뉴스도 못 본 모양이었다.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친서를 보내 ‘문재인 배제’를 요구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그는 “미·북이 우리의 중재 노력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사실과 동떨어진 소리에 도대체 어느 행성에 살고 있나 싶었다.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회고록을 보며 평산마을 사저에서 기른다는 ‘이상한’ 고양이를 떠올렸다. 지난 총선 때 문 전 대통령이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를 비하하는 소셜미디어 글에 ‘좋아요’를 눌러 입방아에 올랐다. 논란이 일자 해명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문제의 고양이였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문 측 관계자가 “단순 실수일 수도 있고, 반려묘가 (태블릿) 근처에서 놀다가 그랬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설명이 궁하자 애꿎은 고양이를 끌어댄 것이었다.

평산마을 고양이가 소환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2022년 퇴임 직후에도 그는 이재명 대표를 ‘쓰레기’로 비방한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가 취소했다. 얼마 뒤 그는 ‘드디어 범인 색출’이란 제목으로 반려묘 사진을 올려 고양이의 범행임을 주장했다. 그 뒤에도 이 대표의 ‘대북 코인 수사’ 기사, 이 대표를 ‘사이코패스’로 표현한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일이 계속됐다. 반복되는 ‘이재명 때리기’에 추측이 무성하자 친문 김남국 의원이 나서 “단순 실수이거나 반려묘 짓일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 고양이는 어떻게 정적(政敵) 공격하는 글만 콕 집어 내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문 전 대통령의 이해하기 힘든 정신 세계를 직설적으로 저격한 사람이 존 볼턴이었다. 트럼프 정권 안보 보좌관을 지낸 그는 2020년 회고록에서 북핵에 관한 문 전 대통령의 생각이 “조현병 환자 같았다”고 썼다. 미국의 ‘선(先) 핵폐기’와 북한·중국의 ‘단계별 보상’은 양립 불가능한데도 문 전 대통령은 둘 다 찬성한다며 비현실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었다.

의학 사전에 따르면 조현병은 ‘현실과 현실 아닌 것을 구별하는 능력의 약화를 유발하는 뇌 질환’으로, 환각·망상이 대표적 증상이다. 물론 볼턴이 의학적 병리 진단을 내린 것은 아닐 것이다. 볼턴의 지적은 막말 논란도 불렀지만 문 전 대통령의 현실 인식을 신랄하게 짚어낸 분석임에 틀림없었다. 현직 때도, 퇴임 후에도 국가적 사안을 보는 공적(公的) 인식 체계에 환각과 망상적 요소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집권 5년간 문 전 대통령은 현실 무시 발언으로 쉴 새 없이 국민을 놀라게 했다. ‘미친 집값’의 광풍이 부는데 “부동산은 자신 있다” 하고, 소득 주도 성장의 역효과가 속출하는 데도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에 휘청대는 자영업자들 앞에서 “긍정 효과가 90%”라 하고, 울산 선거 개입 혐의가 드러난 뒤에도 “우리 민주주의가 남부럽지 않게 성숙했다”고 했다.

퇴임 후에도 유체 이탈 언행은 이어졌다. ‘잊히는 삶을 살겠다”더니 책방을 열어 지지자들을 불러 모으고, 자기 치적을 담은 다큐멘터리의 주연으로 출연했다. 나라를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이 “5년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져 허망” 운운하는가 하면 책 소개를 빙자한 ‘서평(書評) 정치’로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졌다. 자기 임기 때 제대로 준비도 안 하고 넘긴 잼버리 대회를 “실패”라 비난하며 현 정부 탓으로 떠넘기더니 “부끄러움은 국민 몫”이라고 했다.

총선 때도 그는 부산·경남을 돌며 민주당 후보 지원 유세를 벌였다. 같은 사람 속에 잊히겠다던 인격과, 잊히기 싫어하는 또 다른 인격이 공존하는 듯했다. 지난주 노무현 추도식에선 이재명·조국 대표 등을 앉혀 놓고 “성과를 빨리 내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야권의 좌장 노릇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그의 회고록엔 ‘외교·안보편’이란 부제가 달려있다. 경제편·정치편 등이 계속 나올 것이란 예고다. 우리는 지난 대선의 정권 심판으로 문재인 시대를 끝냈다고 생각했다. 떠나보낸 줄 알았던 전직 대통령이 잊히길 거부하고 자꾸만 현실정치에 끼어드는 모습을 얼마나 더 봐야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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