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 반등 뒤 추락 반복, 롯데 야구 올해도 희망고문?

정영재 2024. 6. 1. 00: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너무 길어지는 거인의 잠
롯데 자이언츠는 잠깐 반등했다 다시 추락하는 롤러코스터를 타며 팬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5월 19일 두산 베어스와 3-3으로 비긴 뒤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롯데 선수들. [연합뉴스]
“죽기 전에 롯데가 우승하는 걸 꼭 봐야 되겠심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롯데 자이언츠 팬들 사이에서 오가는 자조적인 농담이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팀 명칭과 연고지를 고수한 유이한 팀(부산-롯데 자이언츠, 대구-삼성 라이온즈)이지만 1992년 이후 32년째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다. ‘꼴데’(꼴찌 롯데), ‘봄데’(봄에만 잘하는 롯데) 등 온갖 비아냥을 들으며 부산 시민의 스트레스 지수를 올린 팀. 한국시리즈는커녕 2017년 이후 7년째 가을야구(포스트시즌)도 못 하고 있는 롯데의 팬들은 동병상련하던 LG 트윈스가 지난해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자 더 허탈해졌다.

김태형 “3년 내 한국시리즈 우승 도전”

김태형 감독
올해는 어떨까. 정규시즌(팀당 144경기)의 3분의1 가량 소화한 5월 31일 현재 롯데는 여전히 꼴찌다. 개막 초부터 밑바닥을 쓸더니 잠깐 반등했다가 다시 떨어지면서 냉온탕을 오가고 있다. 팬들은 어지러운 롤러코스터를 타고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다.

지난해 롯데는 김태형 감독을 영입했다. 그는 두산 베어스를 이끌고 7년 연속(2015~21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3회 우승을 달성한 명장이다. ‘곰탈여우’(곰의 탈을 쓴 여우)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선수들의 심리를 쥐락펴락하며 팀을 하나로 만들고 성과를 내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지난해 10월 취임식에서 그는 “내년에는 반드시 가을야구를 하고, 내 임기인 3년 내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김태형의 우승 DNA를 롯데에 이식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여기저기 걸림돌도 돌출한다. 시즌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데도 롯데 야수진에는 붙박이 주전이 없다. 거의 매 경기 수비진이 바뀐다. 주전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 감독은 많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면서 그들의 기량과 태도를 면밀히 점검한다. “팀에 안정감이 없다”는 말도 나오지만 “붙박이 주전이 없기 때문에 선수들 사이에 긴장감이 돌고 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평가도 있다.

한 야구인은 “김 감독이 두산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화수분 야구’로 불린 두산의 2군 육성 시스템 덕분이다. 컨디션이 떨어지거나 멘털에 문제가 있는 선수를 내려보내고 2군에서 선수를 올려도 80% 이상 역할을 해 줬기 때문에 김태형식 야구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지금 롯데에 그 정도 뎁스(두터운 선수층)가 있느냐는 것이다.

현재 롯데에서 김 감독이 원하는 야구에 가장 가까운 선수가 1번 타자 황성빈(26)이다. 그의 유니폼은 늘 흙투성이다. 내야 땅볼을 치면 1루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고, 주자로 나가면 한 베이스 더 가기 위해 과감하게 뛴다. 5월 30일 현재 타율 0.357에 도루는 18번 시도해 100% 성공했다. 허벅지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다가 복귀한 5월 15일, 김 감독은 “성빈아, 네가 팀을 이끌 생각을 하지 마”라고 했다. 너무 열심히 하다 또다시 다치지 않을까 염려하는 말이었다.

선수 바꾸기보다 그들 마음을 바꿔야

반면 김 감독의 성에 차지 않는 부분도 있다. ‘안경 에이스’ 박세웅(29)의 경우다. 그는 5월 28일 대전 한화전에서 개인 최다인 10실점을 하고 5회 마운드를 내려갔다. 롯데는 3-12로 대패해 상승세가 꺾였고 3연전을 모두 내줬다. 박세웅은 한화에 워낙 약했고(통산 1승9패) 지난해 대전에서 한 번도 등판하지 않았다. 김 감독은 다음날 “한 150구 던지게 하려고 했다. 본인이 대전구장에서 어쩌구저쩌구 하는데, 그건 말이 안 된다. 앞으로 대전에 맞춰서 계속 올려버릴 것이다”라고 박세웅을 직격했다. 토종 에이스의 책임감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없다고 도망가는 나약한 구단 분위기를 깨 버리려고 작심 발언을 한 것이다.

롯데의 또 다른 변수는 부상이다. 4번 타자 전준우, 베테랑 정훈, ‘리틀 이대호’ 한동희 등이 전열에서 이탈했다. 외야수 김민석, 투수 구승민 등이 복귀하는가 싶었는데 외국인 에이스 반즈가 사타구니 부상으로 한 달 쉬어야 한다.

92년 한국시리즈 우승 주역인 박정태 부산MBC 해설위원은 “개막 전에는 5강 정도 갈 수 있을 거라고 봤는데 초반부터 주전들의 부상이 겹쳤다. 롯데가 우승할 전력은 아닌 만큼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되 꾸준히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지금 롯데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 오랜 기간 하위권을 맴도는 바람에 구단의 방향성이 흔들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동안 “시스템을 정비하고 리빌딩을 하자”고 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1인당 수십억 원을 들여 FA 선수를 뽑아오는 식으로 왔다갔다 했다는 것이다.

이태일 전 NC 다이노스 사장의 말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롯데가 하고 싶은 야구가 뭔가에 대한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 명문 구단이란 무엇이고, 그걸 현실로 만들기 위해 어떤 거버넌스(의사결정 시스템)로 가야 하는지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참고해야 할 유산이 ‘로이스터 야구’다. 노 피어(No Fear)를 강조한 로이스터(2008~10년 롯데 감독)는 ‘나는 선수들을 바꾸지 않았다. 선수들의 마음을 바꿨다’는 말을 남겼다.”

최우민 롯데 자이언츠 홍보팀장은 “올 시즌 목표는 가을야구다. 주축 선수들이 빠졌는데도 4월보다 5월 승률이 훨씬 높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롯데의 가을야구는 ‘김태형표 야구’가 얼마나 깊고 빠르게 뿌리내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희망을 현실로 바꿔줄 수 있을까. 아니면 ‘희망고문기술자’로 계속 남아 있을까.

■ 92년 우승 주역 염종석 “새 판 시작된 롯데, 선수들 주전 쟁탈전 더 치열하게 해야”

동의과학대 스포츠센터에서 만난 롯데 자이언츠의 레전드 염종석 감독. 송봉근 기자
염종석은 부산고를 졸업하고 1992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그 해 17승으로 신인왕에 올랐고, 포스트시즌에서 4승(2완봉승)을 거두며 롯데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하지만 입단 첫 해 어깨를 혹사하는 바람에 통산 100승을 채우지 못하고 93승133패의 기록을 남기고 은퇴했다.

부산 동의과학대 감독을 맡으며 롯데 경기의 라디오 해설도 하고 있는 그는 “김태형 감독이 기득권을 타파하고 모든 선수들에게 판을 깔아줬다. 이 기회를 잡는 건 선수 본인이다”라고 말하며 “프로를 갈망하는 대학 선수든, 프로에서 주전을 노리는 선수든 ‘내가 팀에서 제일 연습을 많이 한다’고 자신할 수 있을 만큼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Q : 올해 롯데 성적을 예상하면?
A : “글쎄(웃음). 5등은 해야 하지 않겠나. 투수력은 괜찮은데 수비력은 하위권을 벗어나기 힘들다. 타격도 거포가 없어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Q : 김태형 감독의 색깔은 언제쯤 나타날까.
A : “감독 한 사람이 팀을 상위권으로 올려놓는 건 쉽지 않다. 김 감독 자신도 ‘내 머리와 작전으로 이겼다고 생각하는 경기가 10게임만 되면 그 시즌은 무조건 1,2등 한다’고 말할 정도다. 감독이 기회를 줬으면 선수들이 ‘저 포지션은 내 자리’라고 다부지게 마음먹고 탈취해야 한다. 그런 선수가 계속 나타나면 김 감독의 색깔이 드러날 것이다.”


Q : 그래도 분위기는 좀 바뀐 것 같은데.
A : “지금 롯데에는 붙박이 주전이 없다. 예를 들어 3루는 한동희가 ‘여긴 내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젠 아니다. ‘리틀 이대호’라는 별명을 가진 한동희는 실력은 이대호가 아닌데 몸이 이대호가 돼 버렸다. 더 분발해야 한다.”


Q : 롯데 투수코치 시절 박세웅에게 ‘매일 치킨 한 마리 먹어라’고 하고 체크했다던데.
A : “박세웅은 빠른 볼을 던지지만 몸이 왜소해 공이 가벼웠다. 먹기만 하면서 몸을 불리면 안 되지만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몸을 키우는 게 필요했다. 지금은 롯데 에이스가 됐는데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Q : 고(故) 최동원부터 강민호·손아섭까지, 롯데는 레전드를 너무 쉽게 내보내는 것 같다.
A : “그런 측면이 있다. 지금 롯데에 전준우 말고 프랜차이즈 스타가 누가 있나. 잡아야겠다 싶은 선수가 있으면 떠나지 않을 정도로 자존심을 세워 주는 게 필요하지 않겠나.”


Q : 롯데 팬들의 열정이 너무 뜨거워 부작용도 좀 있는 것 같다.
A : “이렇게 뜨겁게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있다는 걸 선수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해야 한다. 그런데 조금 성적을 내고 팬들이 환호하면 마치 스타가 된 것처럼 경거망동하는 선수들이 있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



부산=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