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4년치 손해 본 만큼 올려받겠다" 세입자 "1년새 5억 뛰어, 영끌해도 막막"

2024. 6. 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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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법 4년, 전셋값 급등 부메랑으로
최근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게시된 ‘임차인이 전·월세를 애타게 찾는다’는 문구. 전세 수급 불균형에 전셋값이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1 “아파트 전셋값이 1년 사이 5억원 넘게 올랐어요. 오는 10월에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금액을 맞춰야 할지 막막합니다. 모은 돈과 대출을 ‘영끌’해도 무리입니다.” 서울 동작구 주민 김진화(43·가명)씨는 기자와 대화하는 내내 ‘막막하다’는 표현을 수차례 썼다. 김씨가 전세로 거주하는 흑석동 아크로리버하임 84㎡(이하 전용면적)는 최근 13억3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1년 전 7억8000만원보다 정확히 5억5000만원이 올랐다. 김씨는 4년 전 전세 계약 때 7억원대의 전셋값을 냈고, 2년 전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서 5%를 추가로 냈다. 김씨는 “아직 임대인과 얘기하지 않았지만 현재 시세와 비슷한 금액을 원할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전셋값에 맞게)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2 경기도 판교에 아파트 한 채를 보유한 임대인 조모(66)씨는 올 가을 전셋값을 크게 올려 받을 계획을 하고 있다. 4년 전 지금의 세입자에게 집을 내준 조씨는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물가가 껑충 오른 데다, 전셋값도 많이 올랐는데 4년간 임대차법에 손발이 묶여 사실상 손해를 보고 있지 않았느냐”며 “손해 본 만큼 (전셋값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씨가 보유한 백현동 판교푸르지오그랑블 105㎡의 전셋값은 4년 전 9억4500만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3억8000만원 오른 13억2500만원 선이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임대차법 시행 4주년을 앞두고 전셋값에 대한 임대인과 임차인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며 “임대인들이 한꺼번에 3억, 4억원씩 올린다고 하니 당혹감을 보이는 임차인이 적잖다”고 전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2020년 7월 26일, 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해 주택임대차기간을 2년 연장하고 전셋값 상승률을 4년간 5%로 제한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임대차법)이 시행됐다. 다음 달이면 4주년으로, 임대차시장은 전세 계약 만기를 앞두고 재계약을 고민 중인 세입자들의 공포와 혼란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새 임대차법 시행 당시 급등했던 전셋값이 2021년 고점을 찍고 하락세를 보였지만, 지난해부터 전셋값이 다시 눈에 띄게 반등하면서 웬만해선 금액을 맞추기 힘든 상황까지 다다라서다. 지난 정부가 세입자 보호를 명분으로 마련한 2+2년 임대차법의 주택시장 불안정 유발 부메랑이 4년을 돌고 돌아 여전히 세입자들을 옥죄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전세 물량까지 급감하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의 주간 전셋값은 지난해 5월 넷째 주부터 지난달 넷째 주까지 54주째 상승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부동산원이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2년 이후 세 번째로 긴 상승 기간이다. 2017~18년의 54주 상승 기록과 공동 3위(최장 기록은 2014~17년의 135주)다. 올해 1월 첫째 주 0.07%였던 주간 상승률이 지난달 셋째 주와 넷째 주 0.1%까지 치솟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올 들어 가장 높은 주간 상승률이다. 임대차법 시행 4주년이 가까울수록 시장도 한층 들썩이고 있다는 의미다. KB부동산 등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지난달 27일 기준 6억58만원으로, 1년 전인 지난해 5월(5억2322만원)보다 14.8% 올랐다.

전셋값이 수억원 오른 단지도 속출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 행당동 서울숲리버뷰자이 128㎡ 전셋값은 올해 4월 15억5000만원을 찍었다. 2월만 해도 10억원이었다. 불과 두 달 사이 5억5000만원이 오른 것이다. 4년 전과 비교해도 대표적 부촌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나, 서울 집값의 마지노선으로 인식되는 이른바 ‘노도강(노원·도봉·강북)’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셋값이 급등했다. 강남구 대치동 대치아이파크 84㎡ 전셋값은 최근 15억원으로 4년 전(12억6500만원) 대비 2억3500만원 올랐다. 도봉구 창동 동아청솔 84㎡는 현재 5억원으로 4년 전(1억9000만)보다 3억1000만원 올랐다.

내년 전국 신규 입주 물량 최저 전망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84㎡(10억원→12억원), 강북구 미아동 래미안트리베라1차 84㎡(3억5000만원→5억3000만원) 등도 4년간 전셋값이 가파르게 올랐다. 서울뿐만이 아니다. 수도권과 지방 주요 도시도 경기 수원시 영통동 영통e편한세상 84㎡(3억원→4억원), 대전 유성구 도룡동 스마트시티2단지 134㎡(6억5000만원→9억8000만원), 부산 해운대구 우동 해운대아이파크 111㎡(4억2500만→6억7000만) 등으로 비슷한 상황이다. 부산의 한 아파트에 사는 세입자 이우정(40)씨는 “전세살이 안 해본 지인들이 눈높이를 낮추라면서 내 예산과 시장 상황에 맞게 평수를 낮춰 집을 옮기라는 말을 한다”며 “하지만 자녀 학교 문제도 있고 직장도 마음대로 옮길 수 없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가”라고 반문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최근 전셋값이 상승하는 가장 큰 요인은 2+2년의 임대차계약이 처음 만료되면서 임대인이 지난 4년간 오른 전셋값을 한꺼번에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2년을 추가로 살았기 때문에 임대인은 현재 세입자와 재계약을 하든, 새로운 세입자와 계약을 하든 시세만큼 전셋값을 올릴 수 있다. 전셋값 자체도 많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코로나19 엔데믹 직후 고금리로 주택시장이 침체하면서 주택 매매 수요가 전세로 눌러앉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셋째 주 서울의 전세수급지수는 101.4포인트로 3주 연속 100을 넘겼다. 100보다 높으면 전세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는 뜻인데, 100을 돌파한 것은 2021년 11월 넷째 주(100.5) 이후 2년 5개월 만이었다.

실제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지난달 27일 기준 2만8482건으로, 1년 전인 지난해 5월(3만7801건)보다 24.7% 감소했다. 경기도 동탄신도시의 한 공인중개사는 “집값 폭등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뒤로 미룬 세입자 수요는 꾸준한 반면, 전세 물건은 적어 전셋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세 수요가 꾸준히 매매로 돌아서야 전세시장이 안정될 수 있는데, 이런 구조가 깨지면서 상승세가 가팔라진 것이다. 이 같은 상승세가 2+2년 임대차법에 가려 보이지 보이지 않다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 감소가 기름을 붓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은 지난해 36만5963가구였다. 그런데 올해 입주 물량은 33만1729가구로 전년 대비 9% 감소가 예상된다. 심지어 내년엔 24만1785가구로 2013년(19만9633가구)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서울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올해 2만3786가구로 지난해(3만2759가구)보다 27%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엔 2만3000가구, 2026년엔 3200가구로 더 줄어든다. 제한된 땅덩이에서 아파트 신규 공급의 최대 해법인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공사비 급등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어서다.

주거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전국 도시정비사업 평균 공사비는 2020년 3.3㎡당 480만3000원에서 지난해 687만5000원으로 급등했다. 3년 사이 43% 오른 것이다. 팬데믹 이후 폭등한 원자잿값과 인건비가 공사비 급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게 공사비 부담이 급증하면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급증하는 등 채산성이 낮아져 재건축·재개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겸임교수는 “전세 물건은 기본적으로 주택 공급이 꾸준히 이뤄져야 늘어나는 건데 공사비 급등, 주택시장 침체 등으로 수년간 그게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진단했다.

전국 평균 공사비 3년새 43% 폭등

문제는 전셋값 상승세가 더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2021년 고점을 기준으로 봤을 때 전셋값 상승 여력이 여전히 많이 남아 보인다”며 “2026년까지 주택 공급량이 부족한 것까지 고려하면 2~3년간 전셋값 상승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전세 시장 안정화 대책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임대주택 공급 확대로 전세 수요를 분산시키는 등 정부가 아파트 전세 수급 불균형 완화에 초점을 맞춘 대책을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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