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세계, 카프카스러운 세계

홍지유 2024. 6. 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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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알려진 혹은 비밀스러운, 케임브리지 카프카 입문, 프란츠 카프카의 그림들(왼쪽부터 순서대로)
카프카, 카프카
이기호 외 지음
나남

프란츠 카프카: 알려진 혹은 비밀스러운
라데크 말리 지음
김성환 옮김
소전서가

케임브리지 카프카 입문
캐롤린 두틀링어 지음
이하늘 옮김
그린비

프란츠 카프카의 그림들
안드레아스 킬허 편저
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 한 마리의 커다란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단편 소설 『변신』은 난데없이 벌레로 변한 남자를 묘사하며 시작된다. 대부분의 비극이 그러하듯 이 끔찍한 변신에는 어떤 설명도 논리도 없다. 이미 벌어져 버린, 속수무책의 현실이 있을 뿐. 한 남자가 벌레로 변한다는 초현실적 상상에서 시작된 이 소설은 리얼리즘이 주류였던 당대의 문학 사조에 작별을 고하며 훗날 ‘현대 문학의 시작’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카프카(오른쪽)와 약혼·파혼을 거듭한 펠리체 바우어. [사진 나남]
오는 3일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카프카 타계 100주년. 때맞춰 카프카의 문학 세계와 삶을 들여다보는 다양한 책이 나왔다.

『카프카, 카프카』(나남)는 시인 김혜순·최승호, 소설가 김행숙·이기호, 평론가 신형철 등 국내 문인들이 카프카를 기리며 쓴 글을 묶은 책이다. 카프카의 스타일을 오마주한 시와 짧은 소설에 더해 ‘혼돈’이라는 키워드로 카프카 작품 세계를 풀어내는 김태환의 비평, 카프카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연극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을 분석한 기자 박돈규의 글도 볼 수 있다.

책은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됐다. 첫 장 ‘카프카 월드’에는 “세상은 그 안으로 도피하는 것 외에는 즐길 방법이 있는가” “어떤 지점부터는 되돌아가는 길은 없다. 이 지점은 우리가 이르러야 할 곳이다” 같은 카프카의 유명 잠언과 해설이 담겼다. 카프카의 소설·일기·편지와 문학 연구자들의 분석을 활용해 박해현 나남출판 주필이 해설을 썼다.

두 번째 장 ‘카프카에스크’(kafkaesque)는 한국 작가들이 카프카를 기리며 쓴 시와 소설을 모았다. 김혜순 시인이 카프카를 오마주하면 쓴 시 ‘출근’ ‘이름’도 있다.

‘너는 이제 저 여자와 살아가는 불행을 견디지 않기로 한다.// 너는 이제 저 여자를 향한 노스탤지어 따위는 없어라고 외쳐 본다.// 그래도 너는 저 여자의 생시의 눈빛을 희번득 한번 해보다가/ 네 직장으로 향하던 길을 간다. 몸 없이 간다.’ (김혜순의 ‘출근’ 중)

‘카프카에스크’는 카프카의 이름에서 유래한 형용사로,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재된 단어다. 이 단어의 뜻을 이해하고 싶다면 하룻밤 사이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에 스스로를 대입해보자. 그 혼돈과 절망, 불가사의함이 바로 ‘카프카에스크’다.

어린 시절의 카프카. [사진 나남]
『프란츠 카프카: 알려진 혹은 비밀스러운』(김성환 옮김, 소전서가)은 ‘인간 카프카’를 탐구한 책.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이 그의 작품에 끼친 영향부터 한 명의 여자와 두 번의 약혼과 두 번의 파혼을 거친 이야기까지 비밀스럽고 사적인 내용이 담겼다. 저자인 체코 작가 라데크 말리는 카프카 소설 전반에 깔린 억압적 분위기와 등장인물의 나약한 성품은 가부장적인 아버지 슬하에서 엄격하게 통제받는 생활을 했던 카프카 자신의 삶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케임브리지 카프카 입문』(이하늘 옮김, 그린비)은 옥스퍼드 카프카 연구소 소장인 캐롤린 두틀링어가 쓴 카프카 가이드. 카프카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그의 소설과 함께 읽어봄 직한 전기이자 해설서다. 영어로 번역되지 않은 작품 등까지 폭넓게 해석하며 카프카가 살았던 당대의 문화적·사회적 맥락도 담았다.

『프란츠 카프카의 그림들』(안드레아스 킬허 편저, 민은영 옮김, 문학동네)은 ‘화가’ 카프카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캔버스가 아닌 노트에 스케치한 카프카의 그림은 추상적이고 거친 느낌을 준다. 그가 그리는 인체는 비정형적인 동작과 비율로 왜곡돼있으며 인물의 윤곽은 완전히 묘사된 경우가 거의 없다. 그림에서 나타나는 비정형성이 그의 소설에서는 어떻게 드러나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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