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광화문·뷰] 황석영의 조용한 귀국과 K문학
현장 중심 글쓰는 작가들이 한국 문학 돌파구 열어주길
수상 불발로 큰 화제가 되지는 못했지만, 지난주 문화예술 뉴스 중 하나는 영국 부커상이었다. 작가 황석영(81)은 ‘철도원 삼대’로 최종 후보에 올랐지만, 상은 받지 못했다. 런던으로 떠나기 한 달 전에 그는 예외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차기작 계획 등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많은 매체가 주목한 발언은 이런 것이었다. “두근두근하다, 이번에는 꼭 받을 것 같다, 다음에는 노벨상....”
원로 작가도 욕망에 서슴지 않을 수 있다. 왜소해진 문학의 시대, 이런 사자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학상을 소망했던 그의 야심과 상대적으로 쓸쓸한 귀국은, 한국 문학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원래 문학상은 시대정신과 운이 작용하는 법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상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주최 측의 의지도 크다. 뮤지션 밥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을 줬던 스웨덴 한림원과, 힌디어·불가리아어 등 한 번도 인연 없던 언어의 작품에 월계관을 씌운 최근 2년의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기억하라. 이런 차원에서는 K문학의 수상 기대도 무리는 아니다. 순수예술 지상주의자들은 민망할 수도 있겠지만, ‘기생충’ ‘방탄소년단’ ‘오징어게임’ 등 대중문화 트리오의 대활약 덕에 한국 문화에 대한 영미권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지 않은가.
문제는 외부에서 바라보는 한국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평가하는 현주소다. 지금 우리가 자부심을 느끼며 추천하는 당대의 한국 문학은 무엇인가. 소름 끼치는 순발력과 상상력으로 다른 문화예술이 의식하지 못하는 지점을 선취(先取)하던 과거의 영광은 제쳐두고라도, 평범한 한국인들이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한국 문학은 어느 정도나 생산되고 있나. 문인이 지식인과 동의어였던 일제강점기나 자발적 문청(文靑) 쏟아지던 1980·90년대까지와의 비교는 언감생심이더라도, 지금·이곳의 먹고사는 문제를 OTT 드라마나 웹툰보다 한국 문학이 제대로 다룬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2000년대 들어 한국 문학은 성소수자, 젠더 문제, 내면의 자의식 탐구, 판타지·SF 장르 소설 등 특정 분야에서는 적지 않은 성취를 보였다. 문제는 이런 유가 지배종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 장르가 열등하거나 의미 없다는 게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평범한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 당대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문학이 희귀해졌다는게 문제다. 어쩌면 현대사회를 경고하는 잠수함의 토끼나 탄광의 카나리아 역할에서도, K문학은 이미 다른 장르에 추월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인구 대비 문예창작과가 가장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많은 졸업생들이 급변하는 현대를 입체적으로 경험하는지는 의문이다. 문과 전체가 ‘문송합니다’라고 자조하는 현실에서 그들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당연히 악순환이다. 직업 최전선의 체험이 없으니 내면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평범한 독자는 떠나고 소수 열혈 독자만 남는 반복 말이다.
문체를 감탄하며 읽는 문학도 존중받아야 하지만, 현장과 이야기 중심의 작품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글 잘 쓰는 전문 직업인들의 문학 진출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소설 쓰는 의사, 소설 쓰는 용접공, 소설 쓰는 건축가, 소설 쓰는 과학자.... 최근 소설가 장강명이 소위 ‘월급사실주의’를 표방하며 여러 작가들과 함께 엮은 단편집 ‘인성에 비해 잘풀린 사람’과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를 흥미롭게 읽었다. 실린 모든 작품이 그런 건 아니지만, 자신의 직업과 현장이 녹아있는 현대의 한국 사회가 거기 있었다.
인터넷 시대, 책을 읽지 않는 세태를 원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라면 읽을 만한 작품을 썼으니 이래도 안 읽을래 하는 패기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이 죽었다고 우는 소리 하기 전에. 한국 작가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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