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중현]‘1조3800억’ 이혼으로 29년 만에 소환된 ‘노태우 비자금’

박중현 논설위원 2024. 5. 31.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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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부친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부친 고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 측에 상당한 규모의 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2심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1조3800억 원 재산 분할'의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이 판결로 29년 전 한국 사회와 재계를 뒤흔들었던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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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부친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부친 고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 측에 상당한 규모의 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2심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1조3800억 원 재산 분할’의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이 판결로 29년 전 한국 사회와 재계를 뒤흔들었던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재판부가 ‘상당한 규모의 자금 유입’ 근거로 본 건 노 관장의 어머니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온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 명의 50억 원짜리 약속어음 실물 4장과 사진 2장이다. 김 여사는 1998, 1999년에 지인들에게 맡겨둔 비자금 내역도 따로 메모해 뒀다고 한다. 메모에는 ‘선경 300억 원’뿐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의 동생 노재우 씨 등의 이름과 액수, ‘맡긴 돈 667억+90억’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노 관장 측은 300억 원어치 어음이 돈을 맡기고 받은 일종의 ‘차용증’이라고 설명한다. 또 ‘친정’에서 유입된 300억 원이 SK그룹의 성장에 기여한 만큼 재산 분할에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 회장 측은 “비자금을 받은 바 없고, 어음은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활동비를 지원하기 위해 건넨 것”이라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과거 비자금 사건 재판 때 밝혀진 내용과 김 여사 메모에 들어 있는 300억 원 외의 기록들이 여럿 일치한다는 점을 들어 노 관장 측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1988∼1993년) 중 대기업 회장들로부터 돈을 걷어 비밀자금을 조성한 사건이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10월 박계동 당시 민주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에 예치된 128억2700만 원 계좌의 예금 조회표를 공개하며 ‘4000억 원 비자금설’을 폭로했다. 노 전 대통령은 구속됐고, 12·12쿠데타 가담에 대한 수사까지 이어져 징역 17년,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99년 특별사면을 받아 풀려났고, 일가는 이후 추징금을 완납했다.

▷이번 소송을 통해 300억 원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숨겨진 비자금이 더 있었는지 의혹이 제기된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해 불법 자금이란 점을 입증하기 어렵고, 수뢰죄 공소시효도 끝나 처벌, 환수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고 해도 불법 비자금에서 파생된 재산을 이혼소송으로 분할하는 게 타당한지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오래전 사돈 간에 오간 ‘부정한 돈’까지 들춰낸 대기업 총수 부부의 이혼 소송은 지켜보는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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