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허정]26조 반도체 보조금 정책에서 빠진 것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2024. 5. 3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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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자금 70%를 중소·중견기업에 투입
대규모 생산 가능한 큰 기업도 지원해야
규모의 경제로 비용 절감→경쟁력 제고
대기업 직접 보조금 빠져 향후 보완 필요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드디어, 우리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26조 원 규모의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여러 칼럼에서 반도체 산업에 초거대 규모의 보조금 지원 정책이 필요함을 주장해 왔던 필자로서, 이번 정부의 결정을 크게 환영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미국, 일본, 대만, 유럽, 중국과 나란히 본격적인 글로벌 반도체 산업 보조금 전쟁에 참전하게 된 것이다.

보조금이라는 정책 수단으로 지원하는 것을 결정하였기에, 본 정책의 성공을 위해 보조금의 경제학적 원리에 대해 몇 가지 언급해 보고자 한다.

우선, 이번 보조금 정책의 주요 내용을 짚어보자. 총 26조 원 중 우선적으로 올해부터 반도체 금융 프로그램에 18조1000억 원이 투입된다. 공장 신축 및 생산 라인 등 큰 투자가 필요한 기업들에 유동성을 제공할 것이다. 둘째, 글로벌 경쟁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인프라 조성에 2조5000억 원이 투입된다. 용수, 팹 부지, 전력, 국도 확장 등 다소 시간이 드는 사업에 빠르게 자금이 투입될 수 있도록 범정부가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셋째, 반도체 기업의 세제 지원에 자금이 투입된다.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기간을 연장하고 연구개발(R&D) 세액공제 범위를 확장하여 기술개발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이다. 넷째, 반도체 생태계 펀드를 만들어 유망 반도체 설계기업과 소부장 중소기업의 성장을 지원한다.

이번 정책의 특징은 자금의 70%를 중소·중견기업에 지원하고,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세액공제 및 유동성 제공을 통해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정책의 수혜자들은 기업이지만, 사실상 ‘산업’ 정책이다. 아쉬움이 남는 점은 오히려 ‘기업’에 좀 더 초점이 맞추어졌더라면 하는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보조금이 시장 효율성을 높이려면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생산자 혹은 소비자들의 활동이 긍정적 외부 효과를 발생시킴을 전제로 해야 한다. 당연히 반도체 산업은 그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듯이 거의 모든 산업에서 활용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반도체 산업의 성장은, 제조업과 서비스 산업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생산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보조금 지급 정책이 그 이론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반도체 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인데, 이 규모의 경제가 기업 내부에서 발생하는지 아니면 기업을 둘러싼 산업 전체에서 발생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해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산업 전체에서 규모의 경제가 발생할 경우, 자연적인 지역 클러스터가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산업, 할리우드의 영화 산업 등이 그 예다. 지역에 많은 기업이 모이면 모일수록 산업생산 총량이 확대되면서 동시에 산업 평균 비용도 절감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즉, 기업 간 기술과 지식의 파급 효과가 빨라서 기술 개발 비용이 절약되고, 생산에 필요한 특수한 생산 장비, 부품 등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지역의 고학력, 전문지식을 갖춘 고숙련자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고용 비용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산업생산 비용 감소 요인이 발생하는 지역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은 산업 전체 규모의 경제 혜택을 더욱 크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규모의 경제가 기업 내부에서 발생하는 경우는 이와 매우 다르다. 개별 기업별로 초기 자본투자가 많이 들어가지만 이후 생산이 확대됨에 따라 평균 생산비용이 줄어든다. 이때, 기업은 생산을 다품종으로 확대하기보다는, 일부 소수 품종에 집중하여야 생산비용을 더 많이 줄일 수 있고, 시장에서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또 기업 간 경쟁이 발생할 경우, 작은 기업보다 큰 기업들이 시장을 점유하게 되고, 이 기업들의 대규모 생산으로 인해 비용 절감이 더욱 가속화해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 상품이라는 혜택을 얻게 된다. 이 경우 보조금은 대규모 생산이 가능한 큰 기업들에 직접 지원되어야만, 효과를 볼 수 있게 된다.

요컨대, 클러스터 중심의 소규모 기업 간 경쟁 유발을 통한 기술 혁신과 비용 절감으로 가려고 하는지, 아니면 대규모 기업들의 전략품목 특성화를 통한 기술 혁신과 글로벌 시장 지배력 확장으로 가려고 하는지, 이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다. 직접 보조금 방안이 빠진 이번 정부의 보조금 정책은 향후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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