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지만 글이 아니다 [청소년의 달 특집: 그들의 목소리➋]
문학을 읽을 수 없는 학교
정답 밖에 없는 글읽기 환경
활자를 통해 다른 세계로 갈 기회
쌓인 책들의 무게 알 수 있길
# 기성세대든 학교든 중고등학생에게 독서를 강요합니다. 하지만 정작 '써봐야 한다'는 논의는 이뤄진 적 없습니다. '창작의 길'을 걸으려는 청소년들을 위한 논의도 지금껏 없었습니다. 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문해력 부족 문제'가 어쩌면 여기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 더스쿠프 Lab. 리터러시가 '청소년의 달' 5월을 맞아 창작을 꿈꾸는 중고등학생들이 느끼는 '문예창작환경'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약간 거친 글이지만, 학생들의 생각을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 윤문 과정을 최소화했습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어머니는 어린 내가 책을 많이 읽어 눈이 나빠질까 걱정했다. 늦은 밤까지 여러 권의 책을 침대 위에 쌓아놓고 읽는 것이 어린 나의 습관 중 하나였다. 여러 동화와 그리스로마신화, 제인 오스틴과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들. 내 침대 위에 쌓인 책들은 수많은 세계를 담고 있었다. 어렸던 내가 그때 읽었던 모든 이야기를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 시절의 나에게 책이란 여행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며 처음으로 교복을 샀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땐 조금 더 예쁜 교복을 받을 수 있었다. 학교에 입고 갈 옷이 한가지 내외로 줄어든 만큼 침대 위에 쌓이는 책의 수도 줄어들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오고부터는 책을 단 한권도 읽지 않았다. 내가 읽는 이야기들은 모의고사 지문과 교과서의 짧은 수록본, 수행평가를 위한 책들로 국한되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책이 담는 수많은 세계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입시와 수업에 나는 책을 읽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소비하지 않는 시대다. 그렇기에 수많은 활자가 이끄는 새로운 세계로 갈 능력을 상실한 시대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물론 학교에 있는 많은 아이는 글을 읽는다. 하지만 그것은 책이 아니다. 수업을 위한 교재는 다양한 해석과 주제가 아닌, 획일적인 정답을 가지고 있다. 책을 읽고 자율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기를 기회를 박탈당했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잠시의 시간을 낼 수 있는 휴대전화, 이야기보다는 짧은 영상뿐이다. 지금 우리의 시대는 전 세계와 연결됐지만 바로 옆에 있는 친구와는 연결할 기회를 상실한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특별 강사로 초청된 한 소설가를 만났다. 사인을 받기 위해 50여명의 아이들이 강당에 모였다. 이곳에서 좋아하는 시집이 있는 친구를 만났다.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새벽, 소설을 써서 내게 보내주는 친구가 다시 생겼다.
그날 문제집에 박혀있던 고개를 돌려 책장에 꽂힌 소설들을 봤다. 아무 생각 없이 한참이나 형형색색의 표지들을 바라봤다. 문제집과 성적표만 봐도 속이 울렁거려 학교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날 새벽 나는 다시 문학이 전하는 수많은 세계에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다시 글쓰기를 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아 촘촘한 활자들을 몇시간 동안 집중해서 읽어내는 연습이 필요했다. 몇달 전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처음으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이상문학상과 젊은작가상의 겉표지는 누구도 열지 않아 완전한 새 책이었다. 학교에서 책을 읽고 필사하는 나를 선생님 몇분이 신기한 듯 가만히 지켜보고 가셨다.
이제 다시 문학과 문예창작은 학교의 한 과목을 벗어나 나의 세계를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가 됐다. 수많은 소설과 시, 에세이가 두꺼운 문제집을 벗어난 나의 세계를 다른 세계와 연결하고 융합하기 시작했다.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지 몇 달 만에야 책을 읽는 것에 익숙해졌다. 수많은 책이 침대 한구석을 무겁게 누르던 어린 시절처럼 그것이 당연한 습관으로 내 일상에 자리 잡았다.
나와 같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을 아이들이 침대를 지그시 누르는 그 책들의 무게를 알았으면 한다. 시를 외우고, 좋아하는 소설가의 사인을 받고, 취향에 맞는 시집을 구매하고, 짧게나마 소설을 써보는 경험이 생겼으면 한다. 그런 일들이 너무도 당연한 시대여야 한다.
손성은 청소년 작가지망생
sson37701@gmail.com
이민우 문학전문기자
문학플랫폼 뉴스페이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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