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하지만, 영원한 이야기"…'원더랜드', 따뜻한 SF의 탄생
[Dispatch=정태윤기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핸드폰 화면 너머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그 관계는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는 김태용 감독의 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유한한 세계를 영원하게 잇는다면, 슬픔 없이 이별하지 않을까. 실제로 영화 속 장례식장 분위기는 암울하지 않다.
우는 사람도, 어두운 분위기도 없다. 죽은 사람과 영상 통화 서비스로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까. 영화는 점점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진다.
AI로 다시 탄생한 사람은 기계인가 사람인가. 실제로 배우들이 연기할 때도 고민했던 부분이다. 바이리(탕웨이 분)와 태주(박보검 분)는 AI로 복원된 인물.
김 감독은 "배우들과 AI라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며 "로봇처럼 부자연스럽게 우는 연기를 시켜보기도 했었다"고 털어놨다.
해답은 일상에서 얻었다. "어머니에게 로봇 청소기를 사드렸는데, 말을 걸더라"며 "'거기 들어가면 못 나와', '청소하느라 힘들겠다' 등 기계와 대화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떠올렸다.
"기계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기계가 아닌 사람처럼 답해주길 바랐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상상보다 더 사람처럼 연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죠." (김태용)
영화 '원더랜드' 측이 31일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탕웨이, 배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 감독 김태용 등이 자리했다.
흥미로운 소재를 바탕으로 김태용 감독 특유의 따뜻한 감성을 전한다. 배우들도 제 몫을 확실히 했다. SF장르물이 현실에 발을 붙일 수 있게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탕웨이다. 바이리는 딸에게 자신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한다. 영상통화를 통해 딸과 엄마를 만난다.
탕웨이는 "영화의 80%는 한 자리에서 연기를 했다. 어머니나 딸에게 휴대폰으로 내 사랑이 얼마나 충분한지 보여줘야 했다. 그 감정을 표현하려 노력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AI 바이리는 일반 사람과는 다르다. 긍정적이고 울지 않는다. 분명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묵묵히 가슴 절절한 모성애를 표현했다.
김 감독은 "바이리는 어린 딸의 느낌도 있고, 엄마로서 책임감도 있다"면서 "탕웨이가 바이리의 극과 극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정인(배수지 분)과 태주의 짠내 나는 사랑은 안타깝다. 정인은 의식불명 상태의 태주를 그리워하며 원더랜드 서비스를 의뢰한다. 영상통화로 매일 아침을 함께 맞고, 저녁도 같이한다.
둘의 균열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태주가 나타나면서 벌어진다. 태주가 기적적으로 깨어난 것. 처음엔 눈물 나게 반가웠다. 그러나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수지는 영상통화를 하면서도, AI 태주와 묘한 거리감을 드러냈다. 현실 태주를 향한 그리움을 군데군데 표현했다. 태주가 돌아왔을 땐, 살을 비비며 애틋한 마음을 마음껏 뿜어낸다.
그러나 태주는 내 입맛대로 움직이던 AI와는 달랐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어긋나고, 삐걱댄다. 박보검은 실제 1인 2역처럼 AI와 태주를 다르게 연기했다.
박보검은 "AI 태주는 정인이가 바라는 모습이 추가된 버전이라고 생각했다"며 "AI 태주는 밝고 긍정적이라면, 아픈 태주는 불안하고 적응 못 하고 이상해 보이기도 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현실성 있는 상상력으로 긍정적인 질문을 던진다. 부정적인 이면도 언뜻언뜻 내비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의 관점에서 AI의 시선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는 과정도 재미있다.
'원더랜드'는 촬영한 지 4년 만에 세상 밖에 나왔다. 코로나 19로 개봉이 밀린 것. 그러나 오히려 잘됐다. 그간 AI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며 적절한 시의성까지 갖췄다.
AI와 인간성의 대립. 오랫동안 회자된 논쟁거리 중 하나다. 김태용 감독은 '원더랜드'라는 세계를 구축해 의미 있는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그러나 113분 안에 너무 많은 걸 담으려 한 건 아닐까. 바이린의 서사로 인해 정인과 태주, '원더랜드' 플래너 해리(정유미 분)와 현수(최우식 분)의 이야기가 명확한 매듭을 짓지 못하고 마무리되는 건 아쉽다.
김 감독은 "어려운 숙제를 굉장히 오랫동안 갖고 있었다. 기계를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움, 혹은 허망함을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인공지능이라는 기계까지 포함된 이 세상에서 우린 어떻게 감정을 서로 나눌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그 마음이 관객에게 잘 전달되길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원더랜드'는 다음 달 5일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사진=송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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