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의 데이트 살인... 헤어지자는 말에 母女 찔렀다

박정훈 기자 2024. 5. 3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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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서 모녀를 흉기로 찌르고 달아난 뒤 하루 만에 검거된 60대 남성 용의자가 31일 오전 서울 수서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뉴스1

서울 강남 모녀(母女) 살인 사건의 60대 피의자가 31일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박씨가 교제 중인 60대 여성의 ‘이별 통보’에 격분해 범행했을 가능성을 수사 중이다. 강남역에서 20대 의대생이 연인을 흉기로 살해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5060 세대에서 교제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노년층도 데이트 폭력 같은 범죄에서 예외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별 통보에 보복, 흉기 휘두른 듯

수서서는 이날 오전 7시 45분쯤 서울 서초구 남태령역 인근에서 박모(64)씨를 긴급 체포했다. 박씨는 지난 30일 강남구 선릉역 인근 한 오피스텔에서 60대 여성 A씨와 그의 30대 딸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박씨는 피해자 A씨와 6개월 정도 사귄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A씨가 이별을 통보하려고 딸과 함께 일하는 사무실 근처에서 박씨를 만났다고 한다. 조사 과정에서 경찰은 “A씨가 박씨에게 ‘오늘부로 정말 이제 그만 만나자’고 말하려고 했다” “최근 피해자에 대한 집착과 위협이 심각했다” 같은 주변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별 통보에 ‘보복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소방 당국은 이날 오후 6시 52분쯤 “아내가 칼에 맞았다”는 A씨 사위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으나 모녀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A씨 사위는 장시간 아내의 연락이 없자 직접 사건이 일어난 오피스텔로 갔다가 참변을 발견한 뒤 바로 신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씨와 A씨는 6시 10분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올라갔다고 한다. 경찰은 박씨의 살인이 오후 6시 16분쯤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4층 계단, 딸은 6층 계단에서 각각 발견됐다.

본지가 31일 오전 찾은 사건 현장엔 피해자들이 흘린 핏자국이 선연했다. A씨의 사무실은 6층이었지만 4층과 3층 비상 계단 벽과 바닥에도 핏자국이 수십 개 남아 있었다. 4층 엘리베이터 옆 벽면엔 핏자국이 10여 개 튀어 있었고, 3층 비상 계단에도 성인 손바닥만 한 크기 핏자국 여러 개와 가로 50㎝가량 대형 혈흔도 남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모녀가 흉기를 휘두르는 박씨에게서 필사적으로 달아나다가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박씨가 먼저 A씨를 공격했고 이를 만류하는 딸까지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범죄 전문가들은 “시신의 훼손이 심하다면 치정·원한에 의한 전형적인 감정 분출 사례”라고 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여성 2명이 구급대원들에게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더라”라며 “겉으로 보기엔 핏자국도 없고 멀쩡해 살인 사건인 줄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다만 모녀 피살 사실이 알려지고, 혈흔이 낭자한 현장에 붕대 등 자취가 남은 모습에 입주민들은 “무서워서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픽=박상훈

◇13시간 동안 주도면밀하게 경찰 따돌려

박씨는 범행 직후 서울 강남에서 택시를 타고 도주, 13시간 동안 강북과 경기 지역 일대에서 수차례 택시를 갈아타며 경찰 추적을 따돌렸다. 박씨는 피가 묻은 옷을 그대로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대담함을 보이면서도 택시·버스를 수차례 갈아타거나 중간중간 도보로 이동하며 주도면밀하게 도피했다. 특히 경찰은 박씨가 추적이 용이한 휴대전화를 끄거나 실시간으로 결제 흔적이 남는 신용카드 역시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현금으로만 이동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박씨는 도주 과정에서 피가 묻은 겉옷을 버리기도 했다. 검거 과정에선 자해하기도 했다.

지능적인 수법으로 감시 카메라가 즐비한 서울 도심에서 경찰 추적을 13시간 동안이나 피했던 박씨는 모녀 살해가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오전 수서서로 압송되면서 “범행은 왜 저질렀느냐” “피해자와 무슨 관계냐”는 취재진 질문에 “죄송하다”고 했다.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냐”는 물음엔 “아니다”라고 했다. 우발적 범행이냐는 질문엔 “맞다”고, 흉기를 준비했느냐는 질문엔 “아니다. (원래) 거기 있던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모녀 시신을 부검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는 한편, 박씨에게 살인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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