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여당 과반 실패... 30년 만에 무너진 ‘만델라의 꿈’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아버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배출한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지난 29일(현지 시각) 치러진 총선에서 집권 30년 만에 처음으로 과반 확보에 실패할 것으로 전망된다. ANC는 만델라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아파르트헤이트(인종 차별 정책)가 종식된 1994년 이후 단독 집권당 자리를 지켰지만 실업률·빈부 격차 등 현안 해결에 실패하면서 민심의 심판을 받게 됐다.
AP·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개표가 63.7% 정도 진행된 31일 현재 ANC는 41.9%를 득표한 것으로 집계됐다. 친(親)기업 성향 제1야당 민주동맹(DA)이 22.9%로 2위를 기록 중이고 제이컵 주마 전 대통령의 신생 정당 움콘토 위시즈웨(MK)가 11.8%로 뒤를 이었다. 원내 제2야당인 경제자유전사(EFF)는 9.5%로 MK에 밀리고 있다. ANC는 1994년 총선에서 62.7%의 득표율로 처음 집권한 이래 2014년까지 60% 넘는 득표율을 지켰다. 그러나 직전 2019년 총선에서 57.5%로 떨어졌다. 아직 개표가 진행중이지만 현지 매체들은 이번엔 ANC가 과반 확보에 실패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100% 비례대표제인 남아공에서는 유권자가 정당에 투표하고,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가 배분되는 의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한다. 통상 다수당 대표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때문에 총선이 사실상 대선을 겸하는 셈이다. ANC가 단독으로 과반을 얻지 못하면 당대표인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연정을 구성해 400석의 과반(201석 이상)을 확보해야 연임할 수 있다.
1994년 이후 ANC가 줄곧 단독 집권했기 때문에 연정은 전례 없는 일이다. 따라서 ANC가 파트너로 어느 당을 선택할지도 미지수다. 그웨데 만타셰 ANC 의장은 개표 시작 이후 인터뷰에서 “우리는 여전히 50% 선을 돌파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연정 가능성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피했다. 남아공 비트바테르스란트대 데이비드 에버랏 교수는 가디언에 “ANC는 패배했지만 여전히 가장 큰 정당”이라며 “ANC가 45% 이상 득표하면 약 1%를 확보한 군소 정당들과 연정을 모색할 수 있지만, 43% 정도에 머물면 대형 파트너 한 곳을 찾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압도적 지지를 받던 ANC의 추락은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높은 실업률과 만연한 범죄, 부패, 빈부 격차, 물·전력 부족 등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지지율 하락세가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유일의 G20(20국) 회원국인 남아공은 석탄, 금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다. 2010년 월드컵을 아프리카 최초로 개최했고, 러시아·중국·인도·브라질로 구성된 신흥 경제국 모임 브릭스(BRICS)의 일원으로 합류하며 높아진 위상을 과시했다.
그러나 정권의 무능과 부패가 이어지면서 경제는 힘을 잃고 내리막으로 치달았다. 만델라의 후임자들은 잇단 비위와 실정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만델라의 이름에 먹칠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올해 들어 ANC의 지지율은 40% 정도에 그쳤다. 한 유권자는 AP에 “ANC는 30년간 우리를 실망시켰다”며 “그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 주지 못했다”고 했다.
민심 이반이 뚜렷해지자 유권자의 실망감을 파고드는 신생 정당들도 우후죽순 등장했다. 이번 총선에 참여한 정당은 50곳 이상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으며, 이들 중 상당 수가 신생 정당이라고 AP는 전했다. 특히 부패 혐의 때문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퇴진한 제이컵 주마 전 대통령이 창당한 MK는 ‘정권 심판론’을 내세워 득표율 3위를 기록 중이다. 요하네스버그대 아프리카 외교·리더십센터 오스카 반 히어든 선임연구원은 “ANC가 50% 이하로 득표하고 있는 이유는 MK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인구 6200만명 중 18세 이상 유권자 2767만여 명이 등록한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2019년의 66%를 웃돌 전망이라고 남아공 선관위는 전했다. 최종 개표 결과는 2일 전후 발표될 예정이다. 이후 14일 안에 새 의회가 소집되고 여기서 곧바로 대통령이 선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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