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영상에 교차하는 SF와 판타지…영화 '원더랜드'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커리어 우먼인 펀드매니저 바이리(탕웨이 분)는 죽음을 앞두고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어린 딸 지아(여가원)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이다. 바이리는 고민 끝에 원더랜드라는 이름의 서비스를 신청하고 세상을 떠난다.
할머니(니나 파우)와 둘이 살게 된 지아는 원더랜드에 접속만 하면 엄마와 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 원더랜드에서 새 삶을 사는 바이리는 고고학자가 돼 있다.
항공사 승무원 정인(수지)은 남자친구 태주(박보검)가 사고로 의식을 잃은 상태가 길어지자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한다. 정인이 원더랜드에 접속하면 우주비행사가 된 건강한 모습의 태주와 언제든지 즐겁게 대화할 수 있다.
김태용 감독의 신작 '원더랜드'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는 요즘 관객이 보기엔 그렇게 먼 미래로 느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데이터를 모두 학습한 AI라면 그가 죽은 뒤에도 마치 살아 있는 듯 영상으로 재현해낼 수 있지 않겠는가.
'원더랜드'는 바이리와 정인 외에도 원더랜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이들의 구심점에 있는 건 원더랜드 서비스를 운영하는 플래너 해리(정유미)와 현수(최우식)다. 해리도 돌아가신 엄마, 아빠와 영상통화를 하곤 한다.
원더랜드 서비스는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주면서 별 탈 없이 운영되는 듯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면서 문제를 노출하기 시작한다.
'원더랜드'는 과학기술이 발전한 미래를 상상으로 그려내면서 우리의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공상과학(SF) 영화의 문법에 충실하다.
이는 정인의 이야기에서 두드러진다. 정인은 원더랜드 서비스를 받으면서 우주비행사 태주에게 익숙해지지만, 병실에 누워 있던 태주가 기적적으로 깨어나면서 새로운 현실에 직면한다.
원더랜드 속 태주는 정인의 로망을 그대로 실현한 듯한 존재지만, 현실의 태주는 정인에게 거슬리는 말과 행동을 자꾸 한다.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정인의 모습을 보다 보면 사랑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가상이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지 묻는 듯한 장면들도 있다. 혼자 사는 해리는 밤이면 원더랜드에 접속해 엄마, 아빠와 대화하지만, 로그 아웃을 하는 순간 두 사람의 영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해리는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다.
바이리의 이야기는 정인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현실에서 원더랜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죽어서 원더랜드로 간 사람의 시점을 따르기 때문이다.
바이리의 이야기가 SF보다는 사자(死者)의 세계를 그린 판타지로 다가오는 이유다. 저승사자처럼 원더랜드에서 바이리의 인도자 역할을 하는 성준(공유)도 여기에 등장한다.
딸에게 잘해주지 못한 걸 죽어서도 못 잊어 현실로 돌아가려고 하는 바이리의 모습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의 근원적인 슬픔을 자극한다.
차가운 느낌의 SF와 따뜻한 감성의 판타지를 교차하면서 펼쳐내는 이야기 구조를 두고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듯하다.
김 감독의 장기인 영상미는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뮤지컬 영화처럼 정인과 태주가 듀엣으로 노래하는 장면과 원더랜드에서 바이리가 음악에 맞춰 춤추는 장면도 아름답다.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다. 김 감독의 아내이기도 한 탕웨이는 흡인력 있는 연기로 관객을 이야기로 끌어들이고, 연인으로 나온 수지와 박보검의 호흡도 잘 맞는다.
'원더랜드'는 김 감독이 탕웨이와 현빈 주연의 '만추'(2011) 이후 13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그는 영상통화를 하다가 화면 속 상대방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의문을 품은 걸 계기로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6월 5일 개봉. 113분. 12세 관람가.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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