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연대와 저항의 깃발을 들 때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의 행사에 가면 나를 곤란하게 하는 일이 많이 생긴다. 형식적이고 관료적인 무엇보다 감시와 통제의 절차가 많아서다. 특히 국민의례는 나를 불편하게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일어나서 손을 가슴에 얹으며 경례한다. 심지어 어떤 행사에서는 국가(國歌)도 나오거나 국기에 대한 맹세가 나오기도 한다.
나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기 때문에 좌석에 그대로 앉아 있는다. 그러면 눈에 띄어서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가 심하게 느껴진다. 신념이니 꿋꿋이 1분에서 3분을 버틴다. 예전에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하는 활동가들도 많았는데, 요즘은 별로 없어 아쉽다. 2007년 7월 17일 국회의사당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기법’ 철폐와 ‘국기에 대한 맹세문’ 폐지를 주장하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는데…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 행사에서도 국기에 대한 경례라는 순서가 있으니, 씁쓸하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전체주의 시대의 산물이자,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은 지 오래다. 사람들은 왜 내가 앉아 있는지, 그게 왜 거부 행동인지 알까. 초중고 교과 과정 중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학교에 다닌 이는 왜 문제인지조차 생각조차 못한 채 수용하게 된다. 무비판적 수용이다. 시민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것은 헌법 제1조에도 반한다. 권력은 국민에게 나온다고 명시돼 있지만 국가는 충성과 헌신을 강요하니 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충성의 강요는 양심의 자유도 침해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국가와 민족이 절대적이고 그보다 우월한 것인 양 잘못된 가치관과 국가주의를 내면화하도록 한다. 국제인권 담론에서도 국가는 사람의 인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자일 뿐이다. 인권의 행사 주체는 사람이지 국가가 아니다.
광장에 펄럭일 국가주의
인권 보장이 국가의 성원권(국민 여부)에 따라 제한되는 현실에서,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인권 감수성을 흐리게 한다. 인권의 보편성과 공존의 가치를 흐리게 해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배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또한 국가폭력을 어쩔 수 없는 통치의 일환으로 변명하는 것을 쉽게 수용하게 한다.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주의는 비국민, 즉 난민이나 이주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하고 배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특히 과거에는 한국은 단일민족이 세운 국가라며 인종주의적인 민족주의 교육을 기본으로 했다. 지금은 단일민족이라는 거짓말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다른 피부와 출신 국가와 역사가 있는 사람들은 불순물로 여기거나 비난하는 극우적 성향의 단체들과 정치인이 있다. 국가란 다양한 부족과 인종이 국가를 구성하는 것인데도 그들은 그렇지 않은 것인양 거짓선동을 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국익이 절대선인 양 강조되면 국가주의는 인종주의적 성향까지 띄게 된다.
보수정권은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고 국가주의를 확산시키는 정책을 펼치곤 한다. 그들이 국가주의를 확산시키는 이유는 손쉽게 차별하고 통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주의는 사람들이 인간 존엄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행사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역량을 높이기보다 지배계급의 통치를 손쉽게 하는 ‘국민’으로서의 감각을 더 익히도록 한다. 그 결과 스스로를 국민으로만 정체화하며, 국민과 비국민의 분리, 분류, 경계를 자연스럽게 익힌다.
서울시의회는 국가주의를 더 확산시키는 조례를 만들었다. 지난 5월 3일 서울시의회는 국민의힘 김형재 서울시의원이 발의한 <서울시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의결했다. ‘시민들의 애국심 함양과 자긍심 고취를 위해 광화문광장에 게양대를 설치하고 국기를 연중 게양한다’는 내용이다. 비용추계서에 따르면 대형 국기게양대를 설치에 1억6300만원을 쓰고, 매년 300만원을 사용하겠다고 한다. 2015년 국가보훈처에서 광화문광장에 국기게양대를 설치하려다 무산된 정책이 서울시 지방정부에 의해 실행될 상황이다.
비용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대형 국기를 만들어 애국심을 강요하는 정치는 전체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이다. 광장은 다양한 국적과 출신 국가의 사람들이 모이고 오가는 장소다. 그런 광화문광장에 국기를 365일 건다면, 어떤 효과가 나겠는가. 광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신념을 나누고 경합하는 ‘틈’이 사라진다. 사람들에게 국가주의적 신념을 은연중에 사람들에게 심어주겠다는 것이다. 빅브라더의 욕망처럼 서울시는 시민들의 일상에서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
연대와 저항의 깃발을 들자!
국가주의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국경을 넘는 존엄과 연대의 감각’일 것이다. 국경을 넘어 서로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우리는 모두 똑같은 평등하고 존엄한 인간이라는 감각이다. 세계 곳곳이 전쟁과 학살로 물들어가고 있는 현재에 더욱더 필요한 가치이자 감각이다. 그러나 국가주의는 인권의 상호의존성을 무너뜨린다. 내가 속한 나라만 잘살면 된다는 저열한 속삭임은 누군가를 억압한 결과로 생기는 이득을 취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 윤리다. 국가주의는 인권의 보편성을 무너뜨린다. 최근에는 팔레스타인을 집단학살하고 있는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하면서 돈을 벌고, 국익이 커졌으니 잘됐다고 자화자찬하는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게 만든다.
다행히 국가주의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의 행동이 보인다. 지난 5월 29일 이스라엘 대사관이 보이는 서울 청계광장에서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깃발’을 들고 학살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이스라엘이 국제사법재판소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피난민들이 모여 있는 라파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긴급액션이라 반나절만 홍보했는데도 여러 사람들이 모였다. 한국 국적의 사람만이 아니라 대만, 코소보 국적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깃발을 들고 참여했다. 팔레스타인 깃발은 저항의 상징이자, 연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학살당하는 팔레스타인의 편에 서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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