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대화’ 사라진 통일백서, 존재이유 스스로 부정하는 통일부
통일부가 31일 ‘2024 통일백서’를 내놨다. ‘통일백서’라고 하기에 무색할 만큼 악화된 남북관계의 현실만 드러냈다. ‘대화·협력’은 백서에서 사라지고, ‘북한의 변화’ ‘원칙 있는 대북정책’ 등 공허한 구호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통일부가 남북대화라는 본연의 책무를 저버리고 ‘대북압박부’를 자처해온 지난 1년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남북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진 상황인데도 긴장완화를 위한 대화 노력을 외면하는 통일부의 직무유기에 개탄을 금하기 어렵다.
백서는 지난해에 비해 대화의 비중은 대거 축소·삭제하고 대북 정책의 ‘원칙’을 강조했다. 1장부터 ‘원칙 있는 대북 정책으로 남북 관계 정상화’라고 자찬했다. 하위 목록 ‘원칙 있는 남북 관계 추진’에서는 북한의 9·19 군사 합의 위반에 대한 정부의 일부 효력 정지 대응을 기술했다. 남북 간 ‘대화’는 제목·소제목 등에서 모두 지웠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발간사에서 “원칙 있는 대북정책 기조를 견지하면서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단호하게 대응해 북한이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하도록 노력했다”고 했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한 결과’가 남북 연락채널 전면 붕괴와 북한의 ‘남북은 적대적 두 국가’ 규정, 반복되는 무력시위인가. 헌법상 ‘평화통일’ 책무를 위해 통일부가 대체 어떤 정책을 펴왔던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냉전적 사고에 사로잡힌 윤석열 정부 들어 통일부는 남북화해·교류·협력을 담당하는 4개 조직을 통폐합하는 등 역주행을 거듭했다. ‘김정은 정권 타도’를 주장해온 대북 강경파 김영호 장관의 취임 이후 그 정도는 심해졌다. 남과 북이 교역을 시작한 이래 지난해 처음으로 교역액이 전무했다. 통일부가 대화 노력을 방기하는 사이 남북관계는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최근에도 북한은 군사정찰위성 발사(27일), 오물 풍선 대남전단 살포(28~29일), 대형 방사포 시위 사격(30일)을 잇달아 하는 등 복합도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날도 사흘째 서해상에서 위성항법장치(GPS)에 대한 전파 교란을 이어갔다. “한반도는 현재 간신히 물리적 충돌을 피하고 있는 상황”(송민순 전 외교장관)이라는 우려를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남북관계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지 않도록 능동적인 관리에 나서야 한다. 북한 역시 대남강경 태도를 보이고 있는 만큼 대화 노력이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대화는 할 수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다. 통일부가 지금이라도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본연의 역할에 책임있게 나설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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