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보다 당첨이 빠를판" 복권방 출근하는 中청년
복권 구매 80%가 18~34세
즉석복권 없어서 못팔 정도
고시원 같은 '청년 양로원'엔
부모 눈치 피해 '백수' 몰려
예단 7천만원·금붙이 7개
억소리 혼수에 결혼도 포기
"취업은 포기, 주식은 쪽박, 가상화폐는 금지. 이번 생, 복권 당첨 외엔 방법이 없다."
중국 베이징 시내에 위치한 유명 라마교 사원 '융허궁'은 취업 성공이나 결혼을 비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최근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곳에서 즉석복권을 긁으며 기도하는 사진과 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청년들의 소원 목록에 '복권 당첨'이 오른 것이다.
지난 25~26일 취재를 위해 융허궁 인근 복권방을 둘러봤더니, 모든 가게에서 즉석복권이 매진된 상태였다. 복권이 인기를 끄는 것은 한국이나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국 청년들의 경우 취업은 요원하고 중국 증시는 지지부진한 데다 가상화폐 거래까지 금지된 터라 더욱 복권으로 몰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중국 복권 판매액은 2020년 3340억위안(약 62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5797억위안(약 108조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복권 구매자의 약 80%는 18~34세 청년이다.
같은 날 방문한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쇼핑몰에서도 이 같은 복권 열풍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한쪽 구석에 위치한 복권방에는 중국 MZ세대인 '주링허우(1990년대생)·링링허우(2000년대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복권방에서 일하는 20대 A씨는 "가게를 찾는 손님 대부분이 20·30대"라며 "유독 즉석복권의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중국 MZ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복권은 '과과러(刮刮樂)'라고 불리는 즉석복권이다. 당첨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근 또 다른 복권방 주인 50대 B씨는 "즉석복권은 요새 없어서 못 팔 정도"라며 "당국에서 물량을 배분하다 보니 입고되는 날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어쩌다 입고되면 하루나 이틀 만에 동이 난다. 요새는 중국판 로또인 다러토우 등 다른 복권을 찾는 손님도 늘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중국의 극심한 취업난과 연관이 깊다고 보고 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부족함 없이 자라온 중국 MZ세대들이 취업난을 겪으면서 불안한 미래를 맞닥뜨리게 됐다"며 "복권 열풍은 이러한 불안과 혼란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6월 청년(16~24세) 실업률이 21.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자 그해 7월부터 통계 발표를 중단했다. 이후 지난 1월 중·고교, 대학생을 제외한 실제 구직자만을 집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통계 기준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14~15% 수준의 높은 청년 실업률은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청년 전용 '양로원'까지 생겼다. 집에만 있기 눈치가 보이는 청년들이 저렴한 비용을 내고 생활하는 시설이다. 한국의 고시원과 비슷하지만, 카페나 노래방 등 다양한 시설을 구비하고 공동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월 이용료는 1500위안(약 28만원)가량이다.
'불혼주의'도 최근 중국 MZ세대를 대표하는 주요 키워드다. '결혼을 기피한다'는 의미의 신조어인데, 가장 큰 걸림돌은 '고액 예단·예물'이다. 중국에서는 결혼할 때 신랑이 신부에게 예단 성격으로 지참금을 주는데, 여성 인구가 적다 보니 신부 측에서 큰 액수를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 지참금은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푸젠성이 30만~39만위안(약 5600만~7300만원)으로 가장 높다. 여기에 '3금(三金)·5금(五金)·7금(七金)' 등 예물을 요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3금은 금반지, 금귀걸이, 금목걸이를 뜻한다. 5금은 3금에 금팔찌와 금펜던트, 7금은 5금에 금주판과 금발찌가 추가된 것이다. 5금만 해도 10만위안(약 1900만원)을 훌쩍 넘는다.
SNS에는 '억소리' 나는 결혼 비용 때문에 파혼을 결정했다는 경험담이 속출하고 있다. 지참금 문화를 비판하는 남성 네티즌까지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베이징 송광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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