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의 밀레니얼 시각] 글쓰는 변호사이자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
더 좋은 경험·시간 만들려면
늘 생각하고 깨어 있어야
요즘 나는 개업 변호사이자 문화평론가 그리고 곧 초등학교 입학 예정인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 살아가고 있다. 그 모든 일들은 내 생활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데, 나에게는 어떠한 현실이 펼쳐지든 계속 이어지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글쓰기'이다.
수험 생활에서부터 신혼과 육아, 직장과 개업 생활에 이르기까지 내게 글쓰기는 언제나 중요했다. 흔히 공부하는 수험생이 글 쓰는 건 딴짓하는 일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직장 인사팀도 글 쓰는 직원이 딱히 업무 효율이 좋을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아이랑 놀아줄 시간에 글 쓰는 것도 훌륭한 육아인의 태도라고 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생각은, 내 경험은 완전히 다르다.
나에게 글쓰기란 늘 '깨어 있게' 되는 일이었다. 나는 글을 쓸 때면, 비로소 가장 깨어 있는 상태가 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수험 생활 중 공부를 할 때 그냥 교과서만 읽는 건 가장 '자는' 상태에 가까웠다. 그나마 문제를 풀거나 필기를 하면 조금 깨어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다가 내가 직접 내 머릿속으로 정리한 것을 글로 '쓰기' 시작하면, 내가 가장 깨어 있는 상태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글쓰기는 나를 그런 상태로 만들었다.
그래서 수험 생활 틈틈이, 가령 쉬는 시간이나 밤 시간에 글을 한 편씩 쓰는 건, 나를 지속적으로 깨어 있게 만들었다. 정신이 명료해지고 뇌가 깨어나면, 공부의 효율은 몇 배 나아졌다. 직장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출퇴근 시간에는 거의 자는 상태였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거의 자는 상태일 때가 있었는데, 그러면 효율은 극도로 떨어졌다. 반면 내가 나를 '깨울' 수만 있다면, 평소보다 일처리를 대여섯 배 빠르게 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럴 때 글쓰기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오전 내내 거의 자는 상태로 일을 하다가도, 혼자 점심 시간에 브런치 카페에 가서 글을 한 편 쓰고 나면, 정신은 고도로 깨어나서 식곤증도 없이 일의 효율이 좋아지곤 했다. 무슨 글을 썼느냐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글쓰기이기만 하면 되었다. 지난 주말의 육아든, 사회문제에 대한 비평이든, 어제 본 드라마의 리뷰든 쓰고 나면 나는 깨어났다. 그래서 지금도 내게는 글쓰기가 무척 중요하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개업하고, 삶을 이끌어 나가는 입장에서, 매일 깨어 있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 반쯤 잠든 채로 일어나 반쯤 잠든 채로 하루를 보내고, 일주일을 보내면, 이 '개업 상태'에서의 삶이란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그 대신 매일 깨어나서 할 일을 찾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해치운 다음,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려면, 야생에서처럼 깨어 있어야 한다. 글쓰기는 나를 매일 그렇게 깨어 있는 상태로 만든다.
이런 깨어 있음은 단순히 공부나 일, 사업과 관련되어서만 중요한 건 아니다. 나는 삶 전체에 '깨어 있음'이 무척 중요하다고 느낀다. 아이랑 보내는 주말도 자면서 보낼 수 있다. 같이 있지만, 제대로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있기만 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낼 수도 있다. 반면 창의적인 놀이를 만들고, 함께 떠날 새로운 경험을 찾아보고, 또 신선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 확실히 더 좋은 시간을, 시절을, 삶을 산다.
그렇게 깨어 있고자 애쓴 순간들은 몇 권의 책으로 남기도 했다. 수험 생활 때부터 틈틈이 쓴 글들이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그럼에도 육아' 같은 책들로 남았다. 이런 책들은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게 한다. 나는 늘 깨어 있고 싶은데, 그 깨어 있음을 위해 글을 쓴다.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은, 더 명료하게 깨어 있고 싶어서 쓴다. 계속 쓰는 사람이 잠들 방법은 없다. 어쨌든 계속 쓰면, 나아간다. 그래서 글쓰기는 걸음이고, 잠들지 않음이고,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이며, 나아감이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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