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미술래잡기] 거짓말의 예술
그의 인생성공 울림 사라져
獨 유명 미술가 요제프 보이스
과장된 경험 거짓 드러났지만
예술적 특별함은 여전해
예술가의 과장과 거짓말은
긍정적 방향에만 사용돼야
지난 몇 주간 가수 김호중의 음주 후 뺑소니 사건이 화제였다. 면밀한 수사가 이루어지고 응당한 벌을 받겠지만, 사고 이후 그가 보인 행적은 이미 우리를 너무 실망시켰다. 그는 어두운 과거를 딛고 성악을 공부했다가 트로트 경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트바로티'라 불리며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이다. 실력도 실력이었겠지만,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그의 드라마 같은 인생사가 인기에 한몫을 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불미스러운 사고를 친 것도 모자라 거짓에 거짓을 계속한 그의 모습으로 인해, 희망을 주었던 그의 멋진 인생 이야기가 이제는 더 이상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
미술계에도 인생이 극적인 작가들이 차고 넘친다. 실제로 평생 굴곡진 삶을 산 이들도 있고, 일부 경험을 과장해 자신의 '페르소나'를 만들어내어 스스로를 신화화하는 작가도 적지 않다. 조각, 드로잉, 퍼포먼스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기 삶과 경험을 작품으로 만들어낸 독일의 개념 미술가 요제프 보이스가 그 대표적인 예다.
1921년생인 그는 어린 시절 나치 청소년단에 들어갔고, 독일 공군에서도 복무하였다. 1986년에 타계한 보이스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치에 가담했는지는 아직까지도 논의 중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부터 그가 펼친 예술 세계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인류애에 관한 것이었고, 작가와 관람자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치유해주는 데 그 목적을 갖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흥미로운 방법으로 삶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 요제프 보이스는 젊은 시절 겪은 매우 극적인 경험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자신이 하는 모든 예술 행위의 근간으로 삼았다.
1944년 크림 반도에서 나치 공군으로 근무하던 요제프 보이스는 어느 날 폭격기를 타고 임무에 나섰다가 격추를 당했다. 추락 후 독일군은 폭설 속에서 수색 작업을 펼쳤지만 결국 보이스와 동료들은 모두 죽거나 실종된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튕겨 나와 머리를 크게 다치고 추위에 정신을 잃은 보이스는 다행히도 우연히 주위를 지나던 타타르 유목민들에게 발견되어 생명을 잃지 않았다. 유목민들은 동물의 비곗덩어리로 환자의 다친 몸을 감싸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했고, 펠트로 만들어진 천을 한 번 더 둘러 덮어 온기를 유지시켜, 결국 보이스는 건강을 되찾아 기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1983년 요제프 보이스가 만들어 전시한 '무제(유리 진열장)'는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진열장 안에는 작은 조각 작품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예술로 간주하기 힘든 일상적인 물질들이 들어 있다. 왼쪽에는 밀랍 덩어리가 놓여 있고, 가운데 유리병 안에는 돼지 기름이 들어 있다. 아연 상자 속에는 양(羊)의 수지(獸脂)가 들어 있고 아예 굳어버린 돼지 기름 덩어리가 오른쪽 구석에 놓여 있다. 모든 것들은 지방(脂肪)과 관련이 있다. 지방은 우리 몸에서, 특히 체온을 조절하는 데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보이스에게는 생명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작품을 포함한 관련 작품들을 제시할 때마다 크림 반도에서 겪은 사건을 소환했고, 관람객은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닌 물건에서 생명력을 느끼며 매우 따뜻해지고 뭉클해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미 생전부터 요제프 보이스의 타타르족 이야기는 그 진위 공방이 치열했다. 그리고 결국 오늘날에는 보이스가 탄 비행기가 추락했지만 그가 곧 구조되었고, 당시 사고가 난 곳 주위에는 타타르족이 전혀 없었다고 사실관계가 정리되었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뿜어내는 생명력이 사그라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돼지 기름을 보며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물질이라고 특별하게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예술의 위력을 더 강렬하게 보여줄 뿐이다. 보이스의 거짓말은 결국 감동적인 서사가 마법처럼 이 세상의 모든 상처를 치유해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예술의 역할을 증명해 주었다. 예술가의 거짓말은 이처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우리 생각을 움직이는 데에만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지현 OCI미술관장(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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