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단체 사유화 막겠다더니…연임제한 폐지에 '내로남불' 비판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 대한체육회가 정관에 명시된 체육회장의 연임 제한 규정을 폐지하기로 해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마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체육회는 31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이사회를 열어 정관에서 체육회장 연임을 제한한 규정을 삭제하기로 의결했다.
체육회는 8월 대의원총회의 추인을 받은 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 정관 개정 인가를 요청할 예정이다.
체육회 정관이 바뀌면 이를 준용하는 지방 체육회, 회원종목단체의 임원 정관도 똑같이 바뀌어 지방체육회장, 회원종목단체 회장의 연임 제한도 풀린다.
체육회는 연임 제한으로 지방체육회와 지방종목단체의 임원 구성이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아 이를 해소하고자 정관 개정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정인이 체육단체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사유화를 막겠다며 개정한 정관 조항을 불과 6년 만에 손바닥 뒤집듯 바꾼 체육회의 행보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겉으로는 지방체육단체 임원난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속내는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의 3선 도전을 제도로 뒷받침하려는 움직임 아니냐는 의혹이 쏟아진다.
이기흥 회장은 2016년 초대 통합 체육회장 선거에서 당선되고 2021년 재선해 올해까지 연임으로 임기 8년을 채운다. 다음 체육회장 선거는 2025년 1월에 열린다.
2018년 4월 2일 개정된 체육회 정관 29조 임원의 임기 1항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사무총장과 선수 대표를 제외한 이사의 임기는 4년으로 하고, 감사의 임기는 2년으로 하되 각각 1회에 한하여 연임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체육회 임원은 이사와 3명의 감사를 의미하며, 이사는 체육회장, 9명 이하의 부회장, 사무총장, 선수대표를 포함해 50명 이하로 구성된다.
정리하면 체육회장은 한 차례 연임을 합쳐 8년간 재직할 수 있다.
IOC 위원인 이기흥 체육회장은 정관에 따라 지금은 임기 제한에 걸리지 않지만, IOC 위원 정년인 70세에 도달하는 내년 이후로는 체육회장 선거에서 IOC 위원 예외 조항 특례를 누릴 수 없다.
임원 임기를 제한하면서도 국제 스포츠기구 임원 진출 시 임원 경력이 필요한 경우와 재정기여, 주요 국제대회 성적, 단체평가 등 지표를 계량화해 평가한 결과 그 기여가 명확한 경우에는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회장이 세 번째 임기에 도전할 수 있도록 조건을 단 게 현 정관의 내용이다.
하지만, 체육회는 이번 이사회에서 연임 제한 조항은 물론 단서를 붙인 3선을 위한 예외 조항도 동시에 폐기해 연임 제한의 걸림돌을 완전히 없앴다.
정관을 현재 내용으로 바꾼 시점은 이기흥 현 회장이 초대 통합 체육회장으로 선출된 지 2년이 지난 때로 이 회장은 이 규정을 내세워 유준상 대한요트협회장이 3회 연속 회장직에 도전했다며 인준을 거부하다가 2018년 12월 소송에서 패소하기도 했다.
이기흥 회장은 3선 도전 의사를 천명한 적은 없지만, 올해 2월 이사회에서 "3선을 하든, 5선을 하든 내 선택에 달렸다"며 연임 제한 정관을 무력화하는 듯한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고, 결국 이사회의 연임 제한 규정 폐지 의결로 3선 도전의 승부수를 던졌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이 회장의 행보를 두고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비판이 쇄도한다.
당장 체육시민연대 등 시민 단체는 이날 이사회장 밖에서 '이기흥 체육회장의 영구집권 시도를 규탄한다'며 피켓을 들고 반대 행동에 나섰다.
연임 제한 규정 폐지로 득을 볼 인사는 이 회장과 협회 운영 책임론에 휩싸였는데도 4선 도전을 고려 중인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두 인사는 체육단체 사유화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체육 정책을 두고 이 회장을 비롯한 체육회, 체육계와 첨예하게 대립해 온 문체부는 사태를 우려하며 대책 수립에 착수했다.
문체부 당국자는 "대의원총회를 거쳐 체육회가 정관 개정 인가를 요청하더라도 체육회에 반려할 수밖에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문체부가 정관 개정을 인가하지 않는다면, 체육계가 또다시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cany99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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