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평한 남자’ 어빙, 지구 2옵션으로 거듭나다

김종수 2024. 5. 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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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스포츠 선수는 팬들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산다. 기본적으로 실력이 좋아야 하겠지만 거기에 더해 확실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상품성까지 갖추고있다면 가치는 더욱 높을 수밖에 없다. 커리어와 인기는 꼭 비례하지만은 않는다. 꾸준하게 높은 기록을 쌓아가고 있음에도 인기는 그저 그런 선수가 있는 반면 그보다 성적은 못하지만 늘 뜨거운 시선을 몰고다니는 선수도 있다.


카이리 어빙(32‧187.2cm)은 후자다. ‘아니, 아직 저 정도 커리어 밖에 쌓지못했어?’ 어빙의 수상 기록을 보고 의외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도 적지않을 것이다. 그는 2011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지명을 받으며 NBA에 입성했다. 부상 때문에 11경기만을 뛴 1학년생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잠재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르브론 제임스의 디시전 쇼로 인해 전력의 치명타를 맞은 클리블랜드는 어빙이 팀 재건의 주축이 될 것으로 믿어의심치 않았다. 비록 클리블랜드에서 뛴 시기는 길지 않았지만 순위에 걸맞는 기량으로 신인상을 수상하고 이후 돌아온 르브론과 함께 우승도 이끌며 나쁘지않은 결과물을 남겼다.


신인상을 탈때만해도 어빙의 커리어는 지금보다 훨씬 화려해질 것으로 예상됐다. 한창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량적으로 안정되어 있었던 이유가 크다. 하지만 이후 특별한 개인 타이틀은 없었고 세컨드팀 1회 정도가 전부였다. 2014 FIBA 스페인 농구 월드컵,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을 견인하며 국제대회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엄밀히 말해 리그 커리어와는 별개의 커리어다. 현재의 루카 돈치치처럼.


하지만 이름값은 어떤 슈퍼스타 못지않게 높다. 올스타 8회 선정이 이를 입증한다. 일단 플레이 스타일이 화려하다. 엄청난 운동신경으로 공중을 날아다니며 덩크슛을 펑펑 찍는 괴수과는 아니지만 현역을 넘어 역대급으로 평가받는 드리블 실력을 바탕으로 매경기 무수한 하이라이트 샷을 만들어낸다.


농구를 잘 모르는 일반 팬이 봐도 ‘저 선수 정말 화려하구나’라고 느낄 정도로 보는 재미가 높다. 매경기 많은 득점과 어시스트를 책임지지는 않지만 낮고 빠르면서도 안정적인 드리블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라 한골이 필요할 때 믿고 맡길 수 있는 유형이다. 때문에 클러치에 강하다는 이미지가 있으며 실제로 빅샷 혹은 빅어시스트를 꽤 많이 만들어냈다.


하지만 감정기복이 심해 경기외적인 부분으로 사고를 많이쳐온 유명한 악동이기도 하다. 여러팀을 오가면서 매번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켰는데 특히 브루클린 네츠 시절 케빈 듀란트, 제임스 하든 등과 슈퍼팀을 구축했음에도 변변한 힘도 써보지못하고 와해된 악재의 제 1원흉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같이 좋은 쪽으로든 안좋은 쪽으로든 본인만의 색깔이 확실한지라 여러 가지 별명으로 불리는 모습이다. 현지에서의 별명은 ‘엉클 드류’지만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어빙신’이 훨씬 많이 언급된다. 경기력이 좋을 때는 그만큼 잘한다는 의미에서 이름 뒤에 신자가 붙는 것이지만 그렇지않은 경우에는 욕설이나 조롱을 떠올릴 수 있는 반대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지평이’가 유명하다. 이른바 ‘지구 평면설’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쉬지않고 언급되는 대표적 괴짜 이미지다. 2017년 현지 언론을 통해 몇차례 자신의 소신을 밝힌바있는데 그로인해 미국내 현직교사들이 적지않은 고생을 하게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농담 혹은 별 가치없는 발언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스포츠 스타를 영웅처럼 생각하는 학생들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드레이먼드 그린 등 일부 선수들도 어빙의 말에 동의하며 혼란을 주기도 했다. 물론 국내에서는 별다른 후폭풍은 없었다. 오히려 어빙의 독특한 캐릭터에 불을 지피면서 지금도 많은 팬들은 이를 유머코드처럼 쓰고 있는 분위기다.


현재 어빙은 루카 돈치치(25‧201cm)를 도와 소속팀 댈러스 매버릭스를 올시즌 파이널까지 올려놓은 상태다. 동부 컨퍼런스를 정리하고 기다리고있던 보스턴 셀틱스와 대망의 우승을 놓고 한판 승부를 겨루게 됐다. 그 과정에서 어빙은 최강 2옵션으로서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단순한 조력자를 넘어 중하위권팀 에이스급 기량을 갖추고 있는지라 돈치치에게 쏠린 수비를 분산시키며 상대팀을 어렵게 했다. 현재 리그 최고의 원투펀치는 단연 ‘돈빙듀오’다.


당초 우려와 달리 댈러스에서 성실한 모습을 보이며 좋은 성적을 이끌고있는 어빙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매우 높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플레이오프 매경기가 끝나면 각종 커뮤니티에는 돈치치 못지않게 어빙에 관한 글들도 많이 올라오는 모습이다. 그중 지구 평면설에 빗댄 유머섞인 의견도 적지않다.


댈러스가 승리한 날은 ‘둥근 지구에서는 케빈 듀란트가 1옵션, 평평한 지구에서는 어빙이 1옵션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당신이 틀렸습니다’ 등으로, 패배한 날은 ‘평평 지구에서의 패스 궤적은 둥근 지구랑은 맞지않았다’는 등 센스가 넘쳐흐르는 글 일색이다. 평평한 남자 어빙이 파이널에서도 지구평면설을 증명(?) 할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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