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완전정복] 자연을 사랑한 화가, 찬란한 추상 그리다
◆ 미술시장 완전정복 ◆
서구 남성 중심으로 쓰인 미술사 속에서 여성 미술의 영토는 넓지 않습니다. 팬데믹 이후에 여성 미술이 전례 없는 각광을 받고 있지만 시장가치는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여성 작가는 누굴까요. 역사상 300억원 이상의 경매 기록을 가진 작가는 단 4명에 불과합니다. 조지아 오키프, 프리다 칼로, 루이즈 부르주아, 조앤 미첼이죠. 오키프가 4440만달러, 칼로가 3488만달러, 부르주아가 3205만달러의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미첼은 꾸준히 기록을 경신하며 무섭게 선배들을 추격하고 있습니다.
조앤 미첼(1925~1992)은 2020년대 미술 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는 대세 작가가 됐습니다. 작년 11월 크리스티 뉴욕에서는 '무제'가 무려 2916만달러(약 397억원)에 팔리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2000만달러를 넘긴 기록이 모두 지난 1년 사이 세워졌으니 최근 가격 상승세가 놀랍습니다.
5월 소더비 뉴욕에서는 '조앤 미첼의 40년'이라는 특별 전시와 경매를 열었습니다. 시대별 대표작 4점이 경매에 나와 모두 팔렸죠. 특히 1969년작 '정오(Noon)'는 2261만달러(약 307억원)에 낙찰되며 환호를 받았습니다.
미첼은 폭풍처럼 거칠고 거대한 그림만큼이나 자유분방한 삶을 산 예술가였습니다. 1925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미첼은 고교 시절 피겨 선수였고, 시카고 미술학교에 다녔습니다. 1947년 졸업과 동시에 그는 프랑스로 1년 동안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인상파 화가들에게 매료됩니다. 유럽에서 만난 반 고흐와 세잔, 모네의 영향은 그의 전 생애에 걸쳐 묻어납니다.
하지만 1949년 미국으로 돌아온 미첼은 뉴욕에 정착해 잭슨 폴록, 한스 호프만, 빌럼 더코닝 등과 함께 '뉴욕 스쿨' 일원이 되죠. 당시 그는 폴록처럼 액션 페인팅 기법을 사용했고 1951년 유명한 9번가 아트쇼에서 전시하며 대표적인 2세대 추상 표현주의자로 명성을 얻게 됩니다. 재미있는 건 1952년 훗날 세계 경제대통령이 되는 앨런 그린스펀과 결혼했다 이듬해 결별을 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그린스펀은 줄리아드음대에서 공부한 음악도 출신 시장 분석가였습니다. 가장 미국적인 그림을 그리던 그는 1955년 프랑스와 뉴욕을 오가며 작업을 하다 결국 대륙을 건너가기로 마음먹게 됩니다. 1959년에는 프랑스에 영구적으로 이주했고, 1967년에는 만년의 걸작들을 만들어 낸 파리 북서쪽 베테유의 센강이 보이는 집에 정착했습니다 .
맹렬하게 작업에 몰두해 다작을 한 미첼의 예술을 정의하는 두 단어는 자연과 추상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가 그림 속에 섞여들었습니다. 그는 1958년 휘트니미술관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내가 가지고 다니는 풍경을 기억하며 그림을 그린다. 그 풍경이 나에게 남긴 것을 더 그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음악, 시, 풍경, 개들은 내가 그림을 그리고 싶게 만든다. 그리고 그림은 나를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죠.
한때 모네가 그랬던 것처럼 풍경에 매료돼 캔버스에 '기억의 풍경'을 담았지만, 그의 그림은 자유로운 추상이었습니다. 격렬한 감정과 자연의 미학을 밀도 높은 두터운 물감덩어리와 확장적인 스케일로 캔버스에 접목했죠. 그의 화폭에 긴장과 평화가 공존하는 이유입니다.
25년을 함께한 장 폴 리오펠과 결별한 뒤엔 불행한 생각을 극복하기 위해 몰두했던 대표작 '장밋빛 인생'(1979)을 남겼습니다. 구강암 진담으로 수술을 받은 뒤 말년에는 반 고흐의 영향을 받은 해바라기 시리즈에 몰두하기도 했습니다. 괴팍한 성격으로 알려졌지만 조앤 미첼 재단을 설립해 신진 작가의 그림을 구입하는 등 후배들을 돕는 데도 애를 쓴 화가였습니다. 1992년 첫 미술관 드로잉 전시를 휘트니미술관에서 선보인 뒤, 같은 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팬데믹 이후 여성 미술의 시대가 열리면서 미술관이 먼저 지난 세기의 거장을 주목했습니다. 2020년 볼티모어미술관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이듬해 뉴욕 구겐하임에서 대형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지 30년 만에 존경했던 모네의 옆에 나란히 섰습니다. 2022년 아트바젤이 파리에 진출한 첫해에 세계의 컬렉터들을 감탄시킨 전시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루이비통 재단에서 모네와 함께 2인전을 연 겁니다. 지베르니의 수련과 어우러진 미첼의 자연을 품은 추상은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미첼의 동료였던 빌럼 더쿠닝과 마크 로스코는 한 세기를 풍미하고 지난 세기의 거장으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21세기가 되어서야 미첼의 시대가 열린 것은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여성 미술의 시대가 마침내 찾아왔고 추상 미술의 대모를 역사가 재평가하기 시작한거죠. 최근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20·30대 여성 추상작가들은 미첼에게 받은 절대적인 영향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미첼이 남자 동료들보다 더 높고, 멀리 날아간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을 것입니다. [김슬기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호중이 잡혀갔는데, 지금 공연해야돼?”…임영웅까지 건드린 어긋난 팬심 - 매일경제
- “1억 10년만 묻어두면 이자 4300만원”…내달 13~17일 청약, 개미 맞춤 ‘이것’ 뭐길래 - 매일경제
- “수천억 물량 미리 팔아버리자”...7월 앞두고 주가폭락 주의보 - 매일경제
- 입냄새 얼마나 끔찍했으면…16년만에 붙잡힌 성폭행범의 ‘황당별명’ - 매일경제
- [속보] 美언론 “바이든, 우크라에 美무기 사용한 러 영토공격 일부허용” - 매일경제
- 똑같은 다이아몬드인데 10분의 1 가격…“외국인도 이것 사러 한국 온다” - 매일경제
- 무주택인줄 알았는데 취득세 중과 '날벼락' - 매일경제
- “이미 당 대표 출마 결심 굳혔나”...한동훈 ‘지구당 부활이 개혁’ 발언, 속내는? - 매일경제
- “영물이라는 생각에”…바다에서 잡힌 1m 훌쩍 넘는 물고기의 정체 - 매일경제
- ‘캡틴 쏘니’ 손흥민, 토트넘과 2026년까지 동행…장기 계약 아닌 연장 옵션 발동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