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살인 … 인류는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미래에 재앙 닥칠거라지만
저자는 이미 직면했다 진단
한해 폭염 사망 50만명 달해
계급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질병의 알고리즘 다시 쓰고
폭염의 이면까지 들추어내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책은 한 해에만 수십 권씩 쏟아진다. '이산화탄소가 온난화를 부르고, 이 때문에 극지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오르며, 이 때문에 삶은 무참하게 파괴될 것'이란 비극과 불행의 시나리오.
대개 기후위기에 경고음을 내는 책들이 언급하는 위기의 시점은 명백하게도 '미래'다. 큰 위기에 당면하리라는 저주의 시간은 근미래의 예측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신간 '폭염 살인'의 저자 제프 구델은 좀 다른 시선을 유지한다. 미쳐 돌아가는 더위가 현재의 호모사피엔스를 이미 '살인'하고 있음을 실증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류의 담장 너머 내일을 내다보지 않고, 오직 현재의 시점에서 극단적 더위가 자행 중인 살인극에 대해 쓴다. 책의 내부로 함께 들어가보자.
저자가 경고하는 기후위기의 시점은 이 책의 원서가 출간됐던 2023년이다.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를 관람하던 한 여성이 폭염 속에서 졸도했다. 어떤 응급 조치도 그녀의 열사병을 막지 못했고 그녀는 결국 사망했다. 미국 텍사스주에선 기온이 40.5도를 넘은 날이 '연간 40일'을 넘겼다. 이를 전후로 미국 한복판에서 뜬금없이 말라리아가 발병해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플로리다에선 수온이 3.6도 상승해 물고기가 수중에서 익어버릴 지경이었다.
그렇다. 인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를 보내는 중이다. 그 결과는 어떤가. 저자는 쓴다. "폭염 사망자는 이미 한 해 50만명에 달한다."
그사이 실내 기온은 계급을 가르는 하나의 기준으로 고착화되는 중이다. 에어컨으로 오싹한 한기를 느끼며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순간 누군가는 섭씨 46도의 아스팔트, 콘크리트, 강철 곁에서 한낮의 맹더위를 전신으로 빨아들인다. 에어컨 냉기 때문에 추워서 옷깃을 여미는 사람과 땡볕에서 열기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구워지는' 사람은 이미 같은 계층이 아니다.
한낮의 열기를 감내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저소득층은 어떤가.
하위 계층에겐 일단 에어컨을 설치할 비용부터 부담이지만, 기껏 설치한 에어컨의 전원을 켰다간 집세보다 전기료가 더 든다. 매리코파카운티란 도시에서 더위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2022년 기준으로 386명. 재산과 계층에 따라 더위의 체감 기온은 달라지고 이미 '폭염 살인'이 시작됐다는 게 저자 주장의 골자다.
그뿐인가. 미친 더위는 행성 지구의 '질병 알고리즘'까지 다시 쓰는 중이다. 가장 강력한 사례로 저자는 플로리다에 출몰한 이집트숲모기를 들여다본다. 이집트숲모기는 가히 '날아다니는 공중의 살인 기계'라고 비유될 정도로 공포스러운 동물이다. 뎅기열, 지카바이러스, 황열을 여기저기 옮겨서다. 사람 맨살에 주둥이를 박고 피를 빨아내 생존하는 이 작은 동물은 인간의 정맥 안에 타액을 뱉어내고 떠난다.
문제는 모기의 대탈출이 시작됐다는 것. 왜 그런가. 모기도 너무 뜨거운 지역에선 못 산다. 모기 스스로도 생존해야 하니 아프리카를 떠나 좀 더 서늘한 곳으로 거주지를 옮긴다는 것. 이 끔찍한 동물이 전에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최초의 여행을 떠나면서 전에 조우한 적 없던 인간을 만난다. 이 때문에 인간은 바이러스에 노출되고, 바이러스의 종간 전파가 이뤄진다.
저자는 코로나19가 '팬데믹의 예고편'일 수 있다고 본다.
온난화로 북극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이산화탄소보다 25배 막강한 메탄이 방출된다. 이로 인해 수만 년을 잠들어 있던 극지의 얼음은 더 빨리 녹고, 고대 바이러스가 현생 인류의 호흡기에 노출된다. 저 최악의 시나리오는 그냥 시나리오만이 아니다. 이미 현실이다.
에어컨은 기후위기의 악순환을 촉진하는 사물이다.
한때 에어컨은 '미국식 안락함'의 상징이었다. '값이 싼 냉기'의 상업적 판매는 더위 문제를 해결하는 위대한 발명이었다. 그러나 에어컨 가동은 에너지를 엄청나게 잡아먹고, 건물에서 사용하는 전체 전기 사용량 중 에어컨 가동에 쓰이는 전기는 20%가 넘는다.
실내 열기를 길거리로 내뿜으면서 열기의 위치를 바꾸는 에어컨 기술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인류는 알지 못했다. 폭염 때문에 에어컨을 틀고, 그 때문에 지구는 더 더워지고, 더 더워진 인간은 에어컨 온도를 18도로 맞춘다. '시원함과 더워짐의 악순환' 사이에 에어컨이란 요물이 자리한다.
저자는 경고한다. "온난화로 인한 현생 인류의 죽음은 이미 시작됐다." 오히려 이 책이 쓰인 시점인 2023년이 '21세기 중 가장 추웠던 해'로 기록될 가능성까지 내다본다. 2024년이라고 다를 리 없다. 저자는 가난한 지역에 나무를 더 심어야 하고, 도시 리모델링이 빨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익숙한 답인 듯하지만 그 익숙한 주장이 반복된다는 건, 그 간단한 해결책만이 '정답'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오븐'이 되고 있는 지구 위에서 우리가 '구워질 건지, 행동할 건지'를 책은 깊게 묻는다.
화창한 봄날, 그러나 이제 곧 살인적인 더위가 시작된다. 날씨라는 살인자가 우리를 죽이러 오고 있다.
인류는 저 소리 없는 살인의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이코노미스트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책이다. 원제 'The Heat Will Kill You First'.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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