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침공시 中전함 가둬라” 美해병대, 필리핀 섬 지형 열공 중

이철민 기자 2024. 5. 31. 15: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월25일 미군과 필리핀군은 필리핀 루손 섬의 샌 앤토니오 인근 남중국해에서 가상의 적(敵)전함을 파괴하는 훈련을 했다. 2주 간 전개된 두 나라 연합훈련 발리카탄(Balikatanㆍ’어깨를 나란히’)의 일환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장(戰場)에서 러시아군을 강타해 유명세를 날린 차륜형 트럭 기반의 다연장 로켓 ‘하이마스(HIMARS)’가 19㎞ 떨어진 해상의 필리핀군 폐(廢)전함을 겨냥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지켜보는 자리였다.

그러나 하이마스는 6발을 모두 소진하고도 명중에 실패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육상에 비해 해상 타깃이 얼마나 맞추기 힘든지를 보여줬다. 결국 F-35 전투기가 유도탄을 떨어뜨려 파괴했다.

2014년부터 시작한 발리카탄 훈련은 전통적으로 재난 구호가 목적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 안보의 최대 위협국이 되고 필리핀ㆍ중국 간 남중국해 분쟁이 계속 되면서, 양국 훈련도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격퇴하는 쪽으로 초점이 바뀌었다.

발리카탄 훈련에 참여한 미 해병대원들이 지난달 6일 필리핀 루손 섬 북단의 라오그 해안에서 가상의 적을 상대로 한 실탄 사격 훈련 후에 모래둔덕을 걷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날 폐전함 타격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사시 중국 전함들을 남중국해에서 파괴하는 임무를 맡은 미 해병대 제3 연안해병연대(하와이 소재)가 발리카탄 훈련 기간과 그 이후 필리핀의 최북단 섬들에서 벌인 활동을 최근 보도했다.

◇제1열도선에 중국 전함 가둬 놓는 역할

발리카탄 훈련엔 미 제3 해병연대 병력 2500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필리핀 최북단의 잇바얏(Itbayat) 섬에서 3일 간 머물며 지형을 관찰했다. 타이완 최남단에서 156㎞ 떨어진 곳이다.

미 해병대는 그동안 전세계 분쟁 지역에 가장 먼저 투입되는 ‘119′ 같은 부대로, 이라크ㆍ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최근 20여 년 간 전력을 쌓았다. 그러나 주적(主敵)과 전장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미 해병대의 주(主)임무는 타이완 침공 초기에 미사일로 중국 전함을 공격해 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으로 이어지는 남국해의 제1 열도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최대한 발목을 잡아, 멀리 떨어진 미군 전력이 이 해역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을 버는 것이다. 또 센서와 소형 드론으로 최전선에서 전장의 정확한 상황과 타깃 정보를 후방으로 보낸다.

1980년대 중국이 해군의 작전 반경을 위해 그은 가상의 선인 제1열도선(島鏈線)과 제2열도선. 미국은 유사시 중국 해군력을 제1열도선 안에 최대한 가둬 놓으려고 한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그러기 위해선 미 해병대 병력은 제1 열도선에 속한 섬들 사이를 레이더 시스템과 미사일 발사장비를 갖추고 신속하게 오르내리며 중국의 감시망을 헷갈리게 해야 한다. 제3 해병연안연대 병력의 잇바얏 섬 훈련도 이런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주변 섬들 지형에 익숙해지기 위한 것이다.

◇최대한 가볍게, 적에겐 최대한 치명적이게

그러나 이곳은 중국의 ‘뒷마당’이다. 중국은 막대한 미사일과 온갖 종류의 정찰 드론을 갖췄고, 인근엔 중국 해군 함대와 군 기지들이 있다. 미 해병대가 어디서 뭘 하는지 파악할 막대한 자원을 보유했다. 또 필리핀 최북단의 섬들은 해안 지역이 다 도로로 연결되지도 않고, 레이더 시스템이나 미사일 포대가 이동할 만큼 도로가 넓지도 않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제3해병 연안연대의 존 리헤인 대령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적의 의사결정 과정을 헷갈리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벤저민 젠슨 미 전략국제문제센터(CSIS)의 선임 연구원은 “해병연안연대는 21세기판 연안기병(騎兵)처럼 민첩하게 섬들을 오르내리며 중국이 계속 이 병력을 주시하게 해야 한다”며 “그만큼 중국의 정보 네트워크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 해병대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야 한다. 적에겐 치명적인 존재이면서, 매우 가볍게 이동해야 한다. 자신의 존재는 최대한 감추면서, 적의 움직임을 최대한 파악해야 한다. 무선이나 레이더를 켜는 순간 타깃이 되는 중국의 코앞에서 이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지난 2년 간 미 제3해병연대는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에서 가상 전투를 했다. 전자 스펙트럼에 소음을 발생시켜 적을 헷갈리게 하며 교신을 하고, 발각돼도 큰 의미가 없는 대형(隊形)에 주의가 쏠리도록 위장하는 연습을 되풀이했다.

대형 서버는 랩톱 컴퓨터로 대체되고, 3D 프린터로 필요 부품을 임시변통한다. 리헤인 대령은 “이동 물자를 최대한 경량화하면서도 상대에게 의미 있는 타격을 최대한 가할 수 있는 균형을 찾아, 계속 여러 실험을 한다”고 WSJ에 말했다.

◇지형을 숙지해야, 동원 가능한 물자 파악

미 해병대는 이곳에서 섬의 활주로, 해안선이 어떤 운송수단을 감당할 수 있는지 모두 평가했다. 또 병력 이동 중의 연료 소진 상태를 점검하고, 시냇물을 직접 정화해 보고, 임시 헬기 착륙장도 확인했다. 마을 도로와 교량의 폭과 강도(强度)를 따져 이동 가능한 군 차량도 확인했다.

제3 해병연안연대의 일부 병력은 잇바얏 섬에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는 2개의 바위 섬인 마불리스(Mavulis)로 이동했다. 타이완 최남단에선 140㎞ 떨어졌다. 이곳은 V-22 오스피리 수직 이착륙기도 내릴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위성사진으로는 도보 이동이 가능한 듯했던 산악 통로도 현실은 달랐다. 이 부대의 지휘관은 “직접 가서 보고 사진 찍고 이해하는 ‘물리적 정찰’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두 가지 장애물

한편 미 해병대 대령 출신인 전략국제문제센터(CSIS)의 선임 고문 마크 칸시안은 WSJ에 미 해병연안연대의 이곳 작전에는 두 가지 장애물이 있다고 말했다.

우선 ‘중국 방어선’ 안에 있는 이 해병대 병력에 대함(對艦) 미사일을 어떻게 공급하느냐는 것이다. 그는 작년에 이곳에서 치른 워게임에선 미 해병대가 몇 차례 유효한 공격을 했지만, 곧 미사일이 소진됐다고 말했다.

또 ‘접근성’도 불투명하다. 필리핀 정부가 자국과 중국 간 남중국해 분쟁에 미 해병대가 개입하는 것은 반기겠지만, 중국의 타이완 공격을 격퇴하려고 이곳에 접근하는 것을 환영할지는 불확실하다.

미 해병대는 현재 각각 2000명 안팎인 3개의 연안연대를 보유하고 있다. 해병대의 가치는 무력 분쟁 현장에 가까울 때 가장 유효하다. 오키나와에 위치한 제12 해병연안연대는 류큐 열도를 따라 타이완으로 북쪽에서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남쪽에서 타이완으로 접근하는 제3 해병연안연대는 우선 하와이에서 이곳까지 중국의 포화(砲火)를 뚫고 도달해야 한다.

중국은 미국의 남중국해ㆍ타이완 접근을 막는, 이른 바 ‘반(反)접근ㆍ지역 거부(A2/ADㆍAnti-Access/Area Denial) 전략을 편다. 미 해병연안연대의 역할은 그 ‘문’이 닫히지 않게 늘 한 발을 껴 놓고 있다가 유사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탱크 없애고, 전투기 줄이고…미 해병대의 대변신

미 해병대는 2020년 3월, 중국을 주적으로 한 10년짜리 대변신 프로그램인 ‘병력 디자인(Force Design) 2030′을 발표했다.

주(主)임무가 ‘제1열도선 내 중국 봉쇄’로 바뀌다 보니, 보유한 탱크도 없애고 F-35 전투기와 헬리콥터의 수도 줄였다. 이렇게 줄인 160억 달러로 중국 전함을 공격하는 미사일 포대를 구축하고, 무기 장착이 가능한 정찰 드론 등의 능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예멘 후티 반군의 상선 공격 이후 미 해병대의 신속배치군이 상시 홍해에 배치돼 있는 것과 같이, 예측 불허의 무질서 속에서 미 해병대 수요는 늘 존재한다. 그래서 많은 미 해병대 예비역 장군들은 “태평양 위협에 초점을 맞춘 현대화 노력은 지지하지만, 이게 해병대의 글로벌 대응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한다”는 입장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