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 발상" 제주 백호기 응원 학생 인권침해 논란
수십 년간 이어져온 제주 백호기 청소년 축구대회 고교 응원. 수백 명의 학생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응원 문구와 상징 동물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난 3월 도내 한 고교 응원 연습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색색의 옷과 우렁찬 함성…제주 대표 축구대회
1971년부터 매해 열리고 있는 제주 백호기 청소년 축구대회. 도내 초중고교 축구부 선수들이 한 해 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뽐내는 제주의 대표적인 대회다. 특히 대기고, 서귀포고, 오현고, 일고, 중앙고 5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펼치는 단체 응원은 백호기 대회의 '백미'다.
학교마다 색색의 옷을 입은 수백 명의 학생이 오와 열을 맞춰 각 학교의 상징동물이 내달리는 모습을 표현하거나 학교 이름과 응원 문구를 드러낸다. 우렁찬 함성과 응원가는 덤이다.
이러한 장관 때문에 제주도민과 관광객이 대회를 찾아가 축구경기보다는 응원 모습을 구경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응원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게시돼 화제를 끌기도 했다. 지금도 영상 댓글 창에는 '멋지다' '열정적인 학생들' 등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일부 재학생과 졸업생에게는 전통과 자부심으로 여겨진다. 도내 고교 학생들이 한데 모여 응원전을 펼치다보니 경쟁이 치열해져 각 학교마다 결속되는 것이다. 특히 학생회 주도로 연습과 응원이 이뤄지고 응원 방식도 졸업생들이 했던 것을 그대로 이어서 하기 때문에 응집력이 생긴다.
17년 전 백호기 고교 응원전에 참여했다는 박모(35)씨는 "학생회 선배들한테 맞기도 하고 폭언도 들어가며 수일간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고생해서 응원을 하고 나면 학교에 대한 소속감도 생기고 뿌듯했었다. 하지만 지금 학생들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연습 과정서 학생회 강압적 태도 주장
코로나19 시기 집합 금지 때문에 잠시 볼 수 없었던 백호기 청소년 축구대회 응원전은 올해부터 다시 본격화됐다. 지난 3월 21일 대회 개최를 앞두고 각 학교마다 3~5일 동안 방과후 시간 등을 이용해 하루 1~2시간 정도 연습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인권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백호기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제주 청소년들'에 따르면 도내 한 고교 응원 연습 당시 학생회장 지시에 따라 학생회 간부들이 동원된 학생들을 향해 "배운 게 맞느냐" "웃음이 나오지" 등 강압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아울러 학생회 지시에 따른 대답은 군대식으로 "악"이라고 해야 했다.
응원전은 과거와 다르게 학부모 동의서를 받는 등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겉만 '자율'이지 속은 '강제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도내 한 고등학교 재학생은 "응원연습을 거부할 수 있다고는 하는데, 실질적으로 응원에 참여하지 않으면 주변에서 부당 처우와 인신공격, 협박을 당한다. 결국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응원에서 도망친 학생을 따돌리거나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한다"고 주장했다.
대회 당일인 지난 3월 21일 제주학생인권조례TF와 청소년인권모임 '내다' 등 도내 19개 단체는 연대 성명을 통해 "백호기 인권침해 사안들은 단순히 일부 학생회의 일탈이 아닌 고질적인 폐습이다. 학교들이 인권침해를 묵인하는 것은 학생인권 보장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 학생 인권침해 여부 조사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출장소는 현재 백호기 고교 응원전과 관련해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지난 4월 한 학생의 진정으로 시작됐다. 조사 대상은 제주도교육청과 도내 한 고교다.
현재 국가인권위는 조사 기관에 사실관계 자료 등을 요청한 상태다. 자료가 들어오는 대로 검토한 뒤 현장조사와 진술 등 추가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현재 백호기 응원전에 참여하는 도내 5개 고등학교 중 1곳만 조사를 하고 있지만, 추후에 다른 학교를 대상으로도 조사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 제주출장소 관계자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조사가 끝나면 국가인권위 아동권리위원회에서 조사 내용을 인용할지, 기각할지, 의견 표명할지 결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인권위 조사와 별도로 도내 학생 인권단체는 제주도교육청에 백호기 인권침해 전수조사, 피해자 보호와 회복 지원, 응원전 참여 선택권 보장, 민관협동 협의체 구성, 인권교육 강화 등 5개 사항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도교육청은 인권위 조사 결과를 기다려본 뒤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학내에서 백호기 응원 인권침해를 주장하다 따돌림을 당해 자퇴 결정을 한 정근효(18)군은 "응원전은 애교심이라는 명목 하에 학교에 대한 충성심과 전체주의적인 감정을 깃들게 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학생을 인간이 아닌 수단으로 응원 도구로 보는 인식이 드러난다"고 했다.
"학생회 주도로 응원이 이뤄지고 있다고 하지만, 도교육청은 학생 안전과 인권을 신경써야 할 책임이 있다. 인권위 조사와 별도로 대책 수립에 나서주길 간곡히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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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CBS 고상현 기자 kossang@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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