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연구하라더니 연구비 깎기 바쁜 ‘글로벌 TOP전략연구단’
연구비 상한 없다더니 검토 단계서 연구비 삭감
연구자들 “용두사미 과제 되는 것 아니냐” 우려
정부가 연구비 제한 없이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를 지원하겠다며 ‘글로벌 TOP전략연구단’ 사업을 시작했지만, 정작 연구단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연구자들이 제출한 연구비 예산을 대폭 삭감해 논란이 되고 있다.
31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글로벌 TOP전략연구단 사업의 제안서에 대한 연구비 조정을 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연구비 상한 없이 도전적인 연구를 지원한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평가 과정에서 연구비를 깎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구비 삭감 규모는 평균 25% 정도지만, 최대 40%까지 깎인 과제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TOP전략연구단은 지난해 8월 과기정통부가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하며 공개한 신규 사업이다. 정부는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하는 와중에도 1000억원을 배정해 융합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여러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함께 연구 사업을 기획하고 대학과 민간 연구기관, 해외 기관까지 참여해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를 지원한다는 계획으로 주목받았다.
연구비도 최소 50억원 제한만 뒀을 뿐 상한선을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출연연이 그간 연구비 한계로 하지 못했던 대형 연구를 기획할 수 있는 기회였다. 지난 3월 과제 51개가 제안됐고 1차 평가 이후 과제 10개가 결선에 진출했다.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최종 후보를 추린 이후 일부 연구단에 대해 사업 취지와 달리 연구비를 조정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글로벌 TOP전략연구단 최종 후보에 들어간 연구단의 한 연구자는 “1차 평가 이후 사업 제안서를 다시 작성했다”며 “연구비는 기존 계획보다 수십억원가량 삭감됐다”고 말했다.
연구비 제약 없이 도전적인 연구를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약속과 달리 일부 내용을 삭제하라는 지침까지 내려왔다. 연구자들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를 위해 장비 개발, 공동 연구 계획을 모두 세웠으나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반발했다. 한 연구자는 “심사 과정에서 연구비를 조정하라고 하면 사업을 따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에 따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무 부처인 과기정통부는 심사위원들의 의견에 따라 연구 내용이 조정되면서 연구비도 그에 맞게 다시 산정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컨설팅 과정에서 연구 과제의 규모가 적정한지 검토가 이뤄졌다”며 “불필요하거나 다른 사업에서 추진하는 중복 연구는 걷어내는 절차”라고 말했다.
글로벌 TOP전략연구단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한 관계자도 “처음에는 연구비를 전혀 고려하지 말고 내용만 평가하라는 지침이 있었지만, 제안서에 너무 많은 연구가 포함돼 연구단에서 실제 모두 하기는 무리라고 판단해 계획 조정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이런 해명에 공감하기 어렵다고 했다. 글로벌 TOP전략연구단 사업 자체가 기존에 없던 도전적인 연구를 하라는 취지로 만들어졌는데, 평가 단계에서 연구 내용과 연구비까지 조정하면 그동안 해왔던 정부 R&D 사업과 다를 게 없다는 이야기다.
최종 후보에 들어간 연구단 소속 한 연구자는 “불필요하거나 중복된 연구를 걷어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검토 과정에서 핵심적인 연구 계획이 실패 가능성이 크다며 빠졌다”며 “실질적으로는 다른 연구 사업과 다른 내용이지만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 이유로 연구가 제외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른 연구자는 “사업의 취지에 맞게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심사 과정에서 빠졌다”며 “도전적인 연구를 할 수 있게 해준다더니 평범한 연구 사업과 다를 바 없어 용두사미가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지원하겠다는 정부 계획과 달리 실제로는 실패 가능성이 있는 연구에 아직 투자를 주저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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